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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그리스도 안의 쉼 5. “내게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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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21-07-27 06:11 조회1,4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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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범위 11:20~30, 5:5, 18:15, 5:1, 18:13~22, 6:2

 

기억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핵심 참된 쉼은 주님께 나아가 그분의 온유와 겸손을 배움으로 경험할 수 있다.

*핵심어 : 오라, 배우라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 내가 감당하기 너무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면?

 

.1.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은 어떤 사람에게 주신 약속인가?

2. 참된 쉼을 경험하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1. 참된 쉼으로 우리를 초청하신 주님이 나의 멍에를 메라고 하신 이유는?

2. 어떻게 하면 주님의 뜻을 즐겁게 따를 수 있을까?

 

.1. 참된 쉼을 얻기 위해 그분의 멍에를 메고 또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2. 어떻게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나타낼 수 있을까?

 

..1. 그분의 멍에가 쉽고 짐이 가벼우므로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

2. 나는 지금 누구의 짐을 함께 나누어져야 할까?

 

적용, 결심

 

이번 주 교과를 통해서 결심한 것이 있다면?

 

답을 위한 도움

 

.1. 쉼의 필요를 느끼는 자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했기에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배척함으로 그분이 주시는 쉼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리와 창녀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식하고 주님의 자비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악한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나아가 용서를 받고 마음의 쉼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우리의 짐들을 내려놓기 전에 우리 스스로는 그것들을 감당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참된 형편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예수님께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의 초청은 필요를 느끼는 자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은 풍요와 편리함으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무거운 짐이나 힘든 일을 모르기에 예수님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죄의식의 빈곤으로 인하여 주님께 나아가지 않음으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쉼을 느끼지 못한다.

 

.1. 멍에가 안전을 보장함

 

멍에는 소나 말을 사고로부터 지켜준다. 멍에가 없는 인생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에 빠지게 된다.

멍에는 율법,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의미한다. 예수님도 율법의 멍에를 메시고 그것을 완전하게 성취하셨다. 우리는 스스로 율법을 지킬 수 없다. 즉 죄인은 율법의 멍에를 메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주님이 메신 멍에를 함께 매는 것은 쉽고 즐거운 길이다.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을 때 율법은 짐이 아니라 죄로부터 자유케 하는(1:25, 119:45) 도가 된다. 그것은 기차가 철로 위에서만 자유로운 것과 같은 이치다.

유대교에서 멍에는 율법을 설명하기 위한 일반적인 비유였다. 15:10에서는 같은 단어를 할례법을 언급할 때 사용한다. 5:1에서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자유와 구원의 수단으로써의 율법을 나타내는 종의 멍에를 대조한다. 예수님께 매인다는 것은 그분의 발자국을 따르며 그분의 사명에 참여하는 순종과 헌신을 강조한다...

예수께서는 무거운 짐에 짓눌린 굳은 마음을 들어내고, 새로운 동기와 생명으로 살아 숨 쉬는 새 마음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의 멍에는 쉽고, 그분의 짐은 가볍기 때문이다(11:30).

 

.1. 온유와 겸손

 

예수님은 겸손하심으로 스스로 아들의 위치에 서셨고 죄인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으며, 온유하심으로 아버지의 계명에 순종하시며 멸시와 고통의 십자가를 견디셨다. 그것은 억지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열망에 기쁨으로 걸어간 길이었다.

모세는 온유함이 다른 모든 사람을 능가했으나,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함은 분명 모세를 능가한다.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모세가 그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을 바치겠다고 했지만(32:32), 그의 죽음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었다. 왜냐하면, 모세 자신도 죄인이었으므로 그 또한 자신의 죄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구원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법적 책임을 해결하고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대속자가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훌륭한 모본이 되신다고 할지라도 십자가와 부활 없이는 다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온유와 겸손의 극치를 이룬 십자가를 바라볼 때 쉼이 시작된다.

 

..1. 항상 그분을 의지할 수 있음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즐거움이 되고 인생의 짐, 죄의 짐은 가벼워진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짐도 나눠질 수 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항상 좋은 일이며 옳은 일이다. 흔들릴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일어서서 언제나 우리 옆에 계시는 그분과 함께 걸을 수 있다.

서로의 짐을 진다는 것은 누군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그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회복시켜서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누군가 고난을 겪고 있을 때 서로 돕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서로 짐을 나누어 지라고 명령하셨다. 온유함으로 그 일을 행하면 참된 사랑을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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