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육 4. 여호와의 눈 : 성경의 세계관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기독교 교육 4. 여호와의 눈 : 성경의 세계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광진 작성일20-10-19 17:16 조회1,951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연구 범위 15:3, 12:7~10, 6:12, 20:5~6, 1:1~14, 12:29~31 

 

기억절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15:3).

 

핵심 성경은 창조론과 구원론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으로 예수님을 높이며 삶의 진리를 제시한다.

 

*핵심어 : 세계관, 성경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 여기 코끼리 한 마리가 있다고 하자.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어떻게 달라보일 수 있는가?

보는 사람의 위치, 관점, 혹은 세계관에 따라 세상과 인생이 달라보인다. 인간은 전체가 아닌 일부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눈으로 전체를 볼 수 있게 하므로 모든 것을 바르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정밀한 기준이다. 성경은 어떠한 세계관을 보여주는가?

 

.1.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게 되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53:1)

2. 하나님이 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1. 자연(천연계)은 세상이 어떻게 존재했음을 보여주는가?(12:7~9)

2. 창조주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해 어떻게 하겠는가?

 

.1. 성경의 관점은 무지개라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는가?(9:13~16)

2.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1. 1:1~14에서 창조교리와 함께 언급한 교리는?

2. 구원의 교리를 체험적으로 더 깊이 알기 위해 어떻게 하겠는가?

 

.1. 성경의 법이 아니라면 옳고그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12:8; 17:6, 12:15 참고).

2. 사람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어떻게 하겠는가?

 

적용, 결심

 

이번 주 교과를 통해서 결심한 것이 있다면?

 

답을 위한 도움

 

.1. 죄를 짓기 쉬움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창조론을 주장하는 반면, 세상의 많은 과학자들은 세상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하여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진화론을 주장한다. 절대자인 하나님이나 신이 존재하며 그 하나님이 인간을 내려다보고 있는 생각은 바른 삶에 대한 동기가 된다. 그러나 신을 부정하게 되면 내 맘대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어 악으로 기울기가 쉽다.

이 광대하고 복잡한 우주와 삼라만상이 일정한 법칙과 질서에 따라 운행된다는 사실은 절대적인 지혜와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그런데 성경의 하나님은 단지 존재만 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에게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시는 인격적인 존재로서 나타난다.(53:1, 15:3, 3:16, 45:21, 1:26~35)

기독교 교육의 핵심은 단순한 하나님의 실존이라기보다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와 교제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실존이다.

그분은 자연의 법칙을 사용하여 기적을 행하시는 신이시되 그러한 법칙에 얽매이지 않고 그분이 뜻할 때면 그런 법칙마저 초월하실 수 있는 분이다. 특히 이런 관점의 교육이 오늘날 시의적절한 이유는 과학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계가 노골적으로, 그리고 무턱대고 무신론적이며 자연주의적인 세계관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이 창조하심

 

천연계를 관찰하면 그 모든 것이 놀랍고 신비로와서 그것들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할 수 없고, 누군가의 지혜로 창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의 첫마디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왜 다른 교리보다 창조론이 맨처음에 나올까?

창조의 교리는 모든 기독교 교육의 토대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믿는 모든 것은 세상이 6일 동안 창조되었다는 교리에 기초한다. 성경은 속죄, 율법, 십자가, 부활 또는 재림에 관한 진술로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관한 진술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 밖의 다른 교훈들이 모두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실재 없이는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의 약속의 보증

 

무신론이나 진화론에서는 무지개가 그저 물과 빛의 작용에 의한 자연현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세상을 다시는 노아홍수와 같이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증하는 표시로 보여준다.

사람들과 맺으신 언약의 징표로써 아름다운 무지개를 구름 속에 이렇게 두심으로 나타내신, 그릇 행하는 당신의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겸손과 동정은 얼마나 큰가! ... 후대의 자손들이 하늘에 걸쳐 있는 영광스러운 아치(arch)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을 때에, 그들의 부모들이 홍수의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다시는 세상을 물로써 멸망시키시지 않겠다는 보증으로,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둥근 무지개를 만드셔서 구름 속에 두셨다는 것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바였다”(부조와 선지자, 106).

고통, 재난, 죽음, 사후세계, 불공평, 영적인 현상 등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현상들에 대해 성경은 명확한 답을 제시해주고 있다.(6:12, 13:7, 5:8, 8:28, 9:5, 20:5~6)

우리가 그것의 일부를 이루며 살고 있는, 때로는 그로 말미암아 혼란스러워하며 갈피를 못 잡는 이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은 우리에게 관점의 틀을 제공한다.

 

.1. 성육신과 구원의 교리

 

말씀이신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며,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구속주이시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이 타락하기 전이라도 무한한 굴욕이었으나, 죄인을 너무나 사랑하심으로 타락한 이후에 죄인의 형상으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희생하셨다.

솔직히 말해서 타락하여 죄와 사망으로 가득한 세상에 창조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태어나서 살려고 버둥거리며 고생하다가 죽는다. 그렇게 우리는 길가에 버려진 동물의 사체와 다를 것이 없는 결말을 맞이한다.

얼마나 허무한 인생인가?

그래서 우리의 세계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원론이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의 중심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는 의미이다.

세상의 심판이 있기 전에 큰소리로 선포되는 첫째천사의 기별(14:6~7)에도 창조론과 구원론이 동시에 등장한다.

여기서 영원한 복음이 창조주 하나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하라.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우리의 죄 때문에 죽음의 형벌을 당하신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분께 경배를 드리라는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은 우리가 가르치는 모든 것의 중심과 전면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가르침에는 재림도 포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이 초림만으로는 수많은 복이 온전하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은 구원의 계획이라는 한 사건을 구성하는 두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1. 선악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없음

 

하나님도 그분의 율법도 알지 못한 사람들은 각기 소견대로행하여 중구난방이었다. 성경을 알지 못하는 원시부족들은 일부다처를 당연시하며 자녀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취급하여 돈을 받고 팔기도 한다. 문화인이라고 하는 이들 중에도 동성애를 주장하거나 돈이 최고라는 사상에 빠져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는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까닭이다.

법이 있어야 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으니, 이는 법이 바른 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구원이라는 것도 결국 죄라는 그릇된 길에서 율법이 말하는 의의 길로 이끄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은 율법을 무시하거나 폐했다는 주장과는 공존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구원을 기독교 세계관의 중심으로 삼고자 한다면 지난주에 보았듯이 하나님의 율법과 십계명 역시 중심이 되어야 한다. 죄란 율법을 범하는 것인데 그런 죄가 아니라면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속량을 받겠는가?(3:20) 하나님의 율법을 떠나서는 복음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므로, 인간에게 가장 좋은 길이 무엇임을 아시며, 따라서 그분이 주신 법이야말로 가장 도덕적이고 선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