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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역사로서의 성경(질문, 대답, 설명) 0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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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0-05-30 02:26 조회1,0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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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역사로서의 성경

 

6월 6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51분

 

● 연구 범위 : 삼상 17장, 사 36:1~3, 37:14~38, 단 1, 5장, 마 26:57~67, 히 11:1~40

 

● 기억절 :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

 

성경은 역사로 구성되어 있다.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던 태초로부터 그분이 지구를 회복시키실 재림의 날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기까지 직선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성경에 나타나는 역사적인 속성은 성경을 다른 종교의 경전과 구분 짓는 특징 중 하나이다. 성경은 역사 속에서 인격적으로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지상의 생명이 창조되었다(창 1:1~31). 그분은 갈대아인들로부터 아브람을 불러내셨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건지셨다. 그분은 친히 자신의 손가락으로 돌비에 십계명을 기록하셨다(출 31:18). 그분은 선지자를 보내시고, 심판을 내리신다. 그분은 자신의 백성을 불러 거룩한 율법과 구원의 계획에 따라 살며 그것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영원한 역사의 이정표를 남기셨다. 

이번 주에 우리는 성경이 설명하고 있는 몇 가지 역사의 주요 쟁점들과 성경의 역사를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고고학적인 증거들을 일부 살펴보려고 한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고고학과 역사를 통해서 성경이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배운다.

느끼기 : 일반 역사와 일치하는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그 기별의 진실성을 더 분명하게 확신한다.

행하기 : 구원의 역사를 이어간 성경의 인물들처럼 어떤 순간에도 믿음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➋ 때로 세속 역사나 고고학은 성경 속 사건이나 인물의 역사적인 실체를 어떻게 증명해 줍니까?

※ 옛 기록들의 발굴로 성경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➌ 반대로 성경에서 일반 역사가 언급하는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다루었던 예를 들어봅시다.

※ 가장 드러난 것으로 느부갓네살 왕과 바벨론 역사, 페르시아와 고레스 등등 많다.

➍ 우리가 성경의 진실성을 역사나 고고학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성경은 역사나 고고학과 관계없이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➎ 히브리서 11장에 따르면 성경의 역사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➏ 성경이 전하는 믿음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 언제나 성경 말씀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결론 : 성경은 통째로 하나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진술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며 때로 우리는 일반 역사나 고고학을 통해 그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5월 31일(일) 다윗과 솔로몬 왕조

 

다윗과 솔로몬 왕조는 이스라엘 역사의 황금기를 대변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주장처럼 만약 다윗과 솔로몬이 실존 인물들이 아니라면 어땠을까? 또한 누군가의 주장처럼 그들의 왕궁이 성경의 설명과 달리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다윗 없이는 그 나라의 수도인 예루살렘도 없었을 것이다(삼하 5:6~10). 다윗이 없었다면 그의 아들 솔로몬이 지은 성전도 없었을 것이다(왕상 8:17~20). 결국 다윗이 없다면 훗날 오실 메시아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리라고 약속되었기 때문이다(렘 23:5~6, 계 22:16). 만약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통째로 다시 쓰여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역사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과 교회에 독특한 역할과 사명을 부여한 그 역사이다. 

 

1. 사무엘상 17장을 읽어보라. 어떻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안기시는가? 이런 승리에 익숙한 사람은 누구인가? 어디에서 그런 승리가 생기는가?

  삼상17장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사건이다. 

 

답: 17세 소년 다윗이 전적으로 여호와를 신뢰하고 의지했을 때 승리를 안기셨다. 그는 다윗이다. 그는 역사에 실존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아를 잊어버렸을 때이다. 

 

삼상 17:1~3에서 설명하는 정확한 지리적 묘사에 주목하라. ‘키르벳 케이야파(Khirbet Qeiyafa)’는 이 장의 설명대로 이스라엘 진영이 있었던 구릉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최근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철저하게 요새화되어 있는 사울과 다윗 시대의 군사 도성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동시대에 속하는 두 개의 성문도 발굴되었다. 일반적으로 고대 이스라엘의 도성에 성문이 하나밖에 없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특징은 히브리어로 ‘두 개의 문’을 의미하는 “사아라임”(삼상 17:52)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 일조한다.

이것이 맞다면 우리는 고대 성경의 한 도시를 최초로 확인하는 셈이다. 2008년과 2013년에 지금까지 발견한 히브리 문서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간주되는 두 개의 명각(銘刻 : inscription)이 발견되었다. 둘째 명각에는 사울의 아들의 이름과 같은 “에스바알”(대상 9:39)이 언급되어 있다.

1993년, ‘텔단’이라는 북부 도시에서 진행된 발굴 조사에서 다메섹 왕 하사엘이 ‘이스라엘 왕’과 ‘다윗의 집’에 대한 자신의 승리를 기록한 기념비문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성경이 다윗 왕조를 묘사하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을 따르며 성경의 증언대로 다윗이 역사 속에 실존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를 더하고 있다.

 

<부가설명> 저자가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실지 역사라는 것이다. 다윗은 역사적으로 실재한 사람이다. 그가 전적으로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했기 때문에 승리했고, 그가 실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으로 이 승리가 기록되었으며 마침내 고고학적 증명까지 발굴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경계해야 할 것은 고고학 때문에 이 사건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면 이것을 발굴한 고고학이 무슨 소리를 외칠 것인가? 많은 고고학의 발굴물은 그런 역사가 실지로 있었기 때문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고고학으로 발굴 되지 않았다고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순간이라도 생각에 머물지 않게 해야 한다. 이런 확실한 인식을 가진 사람에게 고고학은 좋은 참고가 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가능한 참고자료들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참고가 없을 때도 성경은 언제나 사실이요 진리인 것을 아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교훈 : 성경을 신화로 보면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역사적인 실존을 의심하게 되지만 여러 고고학의 증거는 오히려 그것의 역사성을 더 확고하게 입증해준다.

 

 

6월 1일(월) 이사야, 히스기야, 산헤립

 

“히스기야 왕 십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부터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되 대군을 거느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매…”(사 36:1~2).

 

1. 사 36:1~3, 37:14~38을 읽어보라. 하나님은 유다에 대한 아시리아(앗수르)의 대규모 군사 행동으로부터 자신의 백성을 어떻게 건지셨는가?

[사36:1~3] 히스기야 왕 십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2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부터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되 대군을 거느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매 그가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 큰 길에 서매 3 힐기야의 아들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아가니라.

[사37:14~38]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16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7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뜨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람을 보내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 18 여호와여 앗수르 왕들이 과연 열국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고 19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그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 20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 2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사람을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하시고 22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3 네가 훼방하며 능욕한 것은 누구에게냐 네가 소리를 높이며 눈을 높이 들어 향한 것은 누구에게냐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에게니라 24 네가 네 종을 통해서 주를 훼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나의 허다한 병거를 거느리고 산들의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의 깊은 곳에 이르렀으니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향나무를 베고 또 그 제일 높은 곳에 들어가 살진 땅의 수풀에 이를 것이며 25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으니 내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말리리라 하였도다 26 네가 어찌하여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네가 견고한 성읍들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27 그러므로 그 주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 같이, 푸른 나물 같이, 지붕의 풀 같이, 자라지 못한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28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을 내가 아노라 29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과 네 오만함이 내 귀에 들렸으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를 꿰며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30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 올해는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둘째 해에는 또 거기에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셋째 해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니이다 31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32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3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화살 하나도 이리로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흉벽을 쌓고 치지도 못할 것이요 34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35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6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37 이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8 자기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으므로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

 

답: 왕의 기도와 선지자의 말의 신뢰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물리쳤다.

 

기원전 701년, 산헤립(센나케리브)은 유다 정벌에 나섰다. 이 사건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산헤립에 의해서도 여러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서 발견된 그의 연대기를 보면 그는 “튼튼한 성벽을 가진 46개의 소도시와 그 인근의 무수히 많은 작은 마을들을 포위하여 정복하였다.”라고 자랑한다. 그는 유다 도시 라기스 정복을 기념하여 그 도시를 포위하고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니느웨에 있는 자신의 궁전 중앙홀의 벽에 양각으로 새겨놓았다. 

최근 라기스 발굴 조사에서 산헤립에 의해 불탄 그 도시의 거대한 잔해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래서 산헤립의 자랑은 이 정도에서 끝났다. “유다 사람 히스기야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그를 새장 속의 새처럼 그 도시에 가두었다.” 예루살렘의 파괴에 대한 묘사도, 포로를 노예로 삼았다는 기사도 없다.

예루살렘이 포위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여호와의 천사가 예루살렘을 구원함으로써 그 포위는 하루만에 끝났다.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화살 하나도 이리로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흉벽을 쌓고 치지도 못할 것이요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사 37:33~35).

흥미롭게도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는 유독 라기스만이 묘사되어 있다. 예루살렘은 왕궁 벽에 보이지 않는다. 산헤립은 라기스 정복만을 자랑할 수 있었다. 하늘의 하나님과 아시리아 신들 사이의 결전은 그분의 백성들이 받은 구원을 통해 나타났다. 하나님은 아시리아의 침공 행위를 보셨고 히스기야의 기도 소리를 들으셨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행동하신다. 

 

<부가설명> 세상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역사적 사건들이 성경에는 꽤 기록되어 있다. 세상 역사책의 기록을 믿는 세속적 학자들은 역사책에 없는 성경의 역사적 사건 기록을 신화나 소설로 여기며 공격한다. 그런 사건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고고학은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 실제 역사라는 것을 자주 증명했다. 성경의 기록이 역사책의 기록보다 더 정확하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가르쳐주셨으니 확실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기사 중에 이사야 20:1의 사르곤에 대한 기록도 하나다. 사르곤에 대한 기록은 아수르 역사책에 전혀 없다. 다른 역사에도 그 이름이 없다. 그래서 이 구절을 성경 기록이 정확무오하다는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공격의 자료가 되었다. 그러나 “보타(Botta)가 1843년에서 1845까지 코르사바드(Khorsabad)에서 실시한 발굴 과정에서 사르곤의 왕궁을 발견하였고, 더욱이 그 유력한 왕의 역사를 다룬 유명한 명각들을 찾게 되었다.” 성경은 살아계시고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기록이 틀림없다. 

 

교훈 : 아시리아 왕 산헤립의 유다 침공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니느웨에서 발견된 유적에 따르면 그는 성경의 기록처럼 라기스 정복만을 자랑했다. 

 

 

6월 2일(화) 다니엘, 느부갓네살, 바벨론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단 4:37). 

 

2007년 7월, 비엔나대학에서 온 한 학자는 대영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연구에 참여하여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 시대의 서판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서판에서 렘 39:3에 언급되어 있는 바벨론 관원의 이름과 같은 ‘네부사르세킴(성경에는 살스김)’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다니엘과 느부갓네살 시대에는 왕족과 관원 중에 네부사르세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1. 다니엘 1장과 5장을 읽어보라. 다니엘의 결정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과 선지자로 삼으셔서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신 그분의 조치에 어떻게 들어맞았는가?

[1장 5장을 직접 읽어보라.]

 

답: 다니엘을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하였고 하나님께 계시를 받고 그것을 해석하는 은혜를 입게 했으며 그가 세상 역사의 계시를 보고 기록하게 하여 역사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도록 했다. 

 

다니엘은 식사와 기도의 문제에 관하여 하나님께 충성하기로 뜻을 정했다(단 1:8). 초기에 형성된 이런 좋은 습관은 평생 그에게 능력을 제공하는 삶의 틀이 되었다. 그것의 결과는 맑은 정신과 지혜 그리고 위로부터 오는 판단력이었다. 느부갓네살과 벨사살도 이를 알고 그를 왕국의 가장 높은 직책에 앉혔다. 그러나 그것보다 다니엘의 삶이 느부갓네살 왕의 회심을 이끌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단 4:34~37).

느부갓네살은 나보폴라사르의 아들이다. 그 둘은 함께 고대 세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찬란한 도성을 건설했다(단 4:30). 바벨론은 300개 이상의 사원과 수려한 왕궁을 갖추고 약 4~7미터 두께의 이중 성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도성이었다. 그 성벽 중간에는 8개의 성문이 있었고 각 성문은 바벨론 신의 이름을 따라 불렸다. 가장 유명한 성문은 독일인들에 의해 발굴된 이슈타르 문이며 베를린에 있는 페르가몬 미술관에 복원되어 있다.

단 7:4을 보면 바벨론은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사자로 묘사되어 있다. 이슈타르 문을 통과하는 길에는 120개의 사자 형상이 줄지어 있다. 또한 한 사람을 덮치고 있는 거대한 사자 형상이 발굴 과정에서 출토되었고 오늘날에도 도시 밖에 세워져 있다. 이 모든 것이 사자가 바벨론에 적합한 상징물이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렇게 성경의 역사와 그것의 예언적인 기별은 확증되었다.

 

<부가설명> 교과 저자는 전에 많은 의문이 제기 되었으나 고고학으로 확인된 많은 내용은 아마도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벨사살 왕의 존재에 대하여 바벨론 역사책에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가공의 인물로 다니엘 저자가 만든 가짜 왕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바벨론 역사의 마지막 왕으로 기록된 나보니두스의 기도문이 적힌 원통에 벨사살이 자기의 맏아들이라고 기록한 것이 확인 되었다. 성경은 종말을 처음부터 보시는 하나님의 계시와 영감의 말씀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에 관하여 오류가 없다. 성경을 공격하는 학자들이 성경의 역사사건의 정확성을 흠잡을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된 것이다.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욥12:8). 진화론자들의 주장이야말로 가설일 뿐이다. 그들이 화석을 늘어놓지만 그것도 다 추측일 뿐이다. 만물을 창조하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지혜로운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교훈 : 고고학의 발굴에 따르면 다니엘 시대의 바벨론 관원의 이름은 실제로 존재했었고, 바벨론은 다니엘의 예언처럼 여러 면에서 사자로 상징할 만한 도시였다.

 

 

6월 3일(수) 역사적인 예수

 

1. 마 26:57~67, 요 11:45~53, 요 18:29~31을 읽어보라. 가야바는 누구이며,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 본디오 빌라도는 누구이며, 그의 결정은 산헤드린이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얼마나 중요했는가?

[마26:57~67]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1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62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66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요11:45~53]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요18:29~31]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답: 가야바는 예수님 재판할 때 대제사장이었고 빌라도는 로마가 파견한 유대 총독이었다. 가야바는 예수님을 사형선고 했고, 빌라도는 그것을 인준했다. 

 

가야바는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도록 조장했다. 그의 삶은 로마인들을 위해 유대의 역사를 쓴 요셉푸스에 의해서도 기록되었다. “이것 외에도 그는 카이파스라고도 불리는 요셉을 대제사장직에서 파면하고 전임 대제사장 아나누스의 아들 요나단을 임명하여 그를 계승하게 했다.”—Josephus Complete Works (Grand Rapids, Mich.: Kregel Publications, 1969), book 18, chapter 4, p. 381.

1990년, 예루살렘 남쪽에서 12개의 유골 단지가 있는 가족묘 하나가 발견됐다. 무덤에서 출토된 동전과 토기들을 근거로 그 무덤은 기원후 1세기 중반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일련의 뼛조각을 담고 있는 가장 화려한 유골 단지에는 “카이아파스의 아들 요셉”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많은 학자들은 이것이 예수님의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묘와 유골 상자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1961년, 카에사레아 마리티마 극장의 한 돌 위에서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 유대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의 이름이 적힌 명각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죽음을 둘러싼 핵심 인물들이 역사에 의해 입증되었다.

1~2세기의 세속 역사가들도 나사렛 예수에 대해 언급한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티베리우스 재위 시절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된 그리스도와 로마 내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기록했다. 로마의 행정가였던 작은 플리니우스는 서기 112~113년에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물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특정한 날 동이 트기 전에 모여서 신에게 찬미를 부른다고 묘사했다.

이러한 고고학적인 발견과 역사적인 자료들은 사후 50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숭배를 받고 계셨던 예수님의 실존에 대해서 성경 밖의 추가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복음서들도 예수님에 대하여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따라서 예수님과 그분의 생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면 우리는 복음서를 진지하게 연구해야 한다.

 

<부가설명> 초대교회 시대에 많은 철학자가 예수님을 신의 가현(假現)으로 주장했다. 특히 영지주의자들이 이런 주장에 앞장섰다. 초대교회의 이단이었다. 이런 주장은 역사가 흐르면서도 영향을 끼쳤다. 마니교도 이런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3세기에 발생한 교묘한 종교가 되었다. 성경은 아주 철저히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몸을 가진 사람 예수를 계시한다. 근대에 와서 신학자들 사이에 많이 논란이 된 역사적 예수 문제는 그분이 참으로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과 연결된 것이었다. 그분은 참으로 사람이셨다. 동시에 그분은 참으로 하나님이셨다. 예수가 성경에 기록된 그 시대에 유대나라 사회에 사람 중에 사람으로 활동했느냐? 당연히 그랬고, 당시 예수님에게 고난을 끼친 사람들도 역사적으로 그 시대에 살았던 분명한 사람들이다. 그것이 고고학의 발굴로 증명되었다. 가야바와 빌라도가 대표적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 역시에 살다가 죽고 부활해서 승천하신 신인(神人)이시다. 아멘.

 

교훈 : 성경뿐 아니라 고고학과 역사는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본디오 빌라도와 가야바뿐 아니라 예수님의 역사적인 실존까지 확인해준다.

 

 

6월 4일(목) 믿음과 역사

 

우리는 혼자 동떨어져 살지 않는다. 우리의 선택은 우리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옛 백성들의 삶도 그들 자신뿐 아니라 미래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믿음의 장이라고 일컬어지는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옛날 수많은 믿음의 영웅이 끼친 감화가 요약되어 있다.

 

1. 히 11:1~40을 읽어보라. 이 고대 영웅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에녹 -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음

노아 - 방주를 준비함으로써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됨

아브라함 -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감

사라 - 단산하였으나 믿음으로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음

요셉 - 믿음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탁함

모세 -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함

라합 -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여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않음

삼손 -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침

 

답: 믿음은 생활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은 드러나지 않으면 믿음이 아니다. 

 

신앙이란 단지 어떤 것, 어떤 누구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그런 믿음에 대한 반응으로써 행동하는 것이다.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나며, 그런 믿음은 의롭게 간주된다. 그동안 그와 같은 믿음의 행동들이 역사를 바꿔왔다. 이 모든 행동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함에서 비롯된다.

노아는 자신의 경험과 이성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기 때문에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다. 비가 내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경험과 논리대로라면 홍수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순종하였고 그래서 인류는 생존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은 당대에 가장 수준 높은 도시였던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우르 땅을 떠나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실지도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모세는 당시의 가장 강성한 나라인 애굽의 왕이 되기보다 하나님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되기로 선택했다. 그는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부르시는 전능자의 음성을 신뢰하였다. 라합은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신뢰하고 정탐꾼을 숨겨줌으로써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다. 우리의 선택이 이 세대의 사람들과 앞으로 올 무수한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우리가 얼마나 알 수 있겠는가?

 

<부가설명> 만일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그의 후손들은 죽음이 없는 낙원에서 영생하며 산 자의 하나님과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다. 구원계획도 구원사업도 나타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그냥 여호와의 이름 안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영생, 곧 하나님의 생명을 잃어버렸으므로 여호와 이름 안에 숨겨져 있던 구원계획이 발표되고 구원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지구의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므로 지구 인류의 상태에 합당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아담 부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으니 그 생육이 이루어지는 세월이 필요하다. 그것은 역사로 이어지게 되어 있고, 구주가 세상에 오시는 것도 역사적 때가 필요하다. 그래서 구원사업은 역사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사업을 역사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지구의 사람들은 시간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때가 차면 사람들은 생명을 잃게 되고 형체도 없어진다. 이런 것이 다 시간의 경과와 관련이 있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역사가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과 역사의 지배를 받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서는 구원사업이 역사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처지에 맞추어서 구원사업이 가장 합당하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진행하시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는 바로 이런 사실의 증명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역사적 사건의 기록은 진실로 역사일 수밖에 없다. 역사에서 이루어지고 진행되는 구원의 복음을 믿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이다. 구원의 역사적 사건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전혀 성경의 믿음이 아니다. 

 

교훈 : 과거의 믿음의 영웅들이 그랬듯이 믿음의 선택은 현재와 미래의 세대뿐 아니라 역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6월 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조와 선지자>, 643~648 ‘다윗과 골리앗’, <선지자와 왕>, 331~339 ‘히스기야’, 349~366 ‘앗수르에게서 구원 받음’을 읽어보라.

“성경은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되고 포괄적인 역사이다. 그것은 영원한 진리의 원천으로부터 흘러나온 신선한 역사의 물줄기로서,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손은 그 순결성을 보존하였다. 성경은 사람이 아무리 꿰뚫어보려 해도 알 수 없는 먼 과거를 비추어 준다. 땅에 기초를 놓고 하늘을 펴신 능력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볼 수 있다. 여기에서만 우리는 국가들의 기원에 대하여 믿을 만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자부심이나 편견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인류 역사의 기록은 성경에만 있다”(교육, 173).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는 자는 성경의 신성을 믿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다. 그는 과학에 속한 인간적인 사상에 의하여 성경을 시험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적인 사상들을 오류가 없는 표준으로 시험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진리는 결코 모순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과학의 가르침 중, 하나님이 계시하신 진리에 모순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인간의 추측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현명하고 과학적인 탐구에는 사상과 정보의 넓은 분야들이 열린다”(교회증언 8권, 32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물론 고고학적인 증거를 가지고 성경의 역사를 확인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만약 고고학의 증거가 성경과 상충되는 방식으로 해석되면 어떡합니까? 고고학과 다른 학문의 주장이 어떠하든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신뢰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할까요?

※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성경이 옳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고고학이 성경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고고학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성경은 창조주이시며 전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언제나 성경이 옳다.

 

➋ 과거에 이미 성취된 성경의 모든 예언들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다니엘 2장과 7장에 등장하는 나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미 성취된 예언들을 통해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수 있을까요?

※ 성취된 예언처럼 미래의 예언도 역사적으로 반드시 성취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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