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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의 키 2020년 2기 제9과 창조 : 성경의 토대를 이루는 창세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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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진현 작성일20-05-25 17:45 조회1,6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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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의 키 2020년 2기 제9과 창조 : 성경의 토대를 이루는 창세기 2

성경의 과학성

-성경은 어떻게 지구가 둥글다거나 우주에 떠 있다고 암시합니까?(욥 26:7~10, 사 40:21~22)

욥 26:7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욥 26:8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욥 26:9 그는 자기의 보좌 앞을 가리우시고 자기 구름으로 그 위에 펴시며

욥 26:10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

사 40: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사 40: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 같이 베푸셨고

(128.5) 욥 26:7~10과 사 40:21~22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지구의 특성은 무엇인가? 욥 26:7을 보면 지구는 공간에 달려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하나님은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신다. 지구는 원 또는 구이다(욥 26:10 참고). 사 40:22을 보면 하나님은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같이 치셨”다.

(129.영감의 교훈) 하나님의 능력이 지구를 유지함 - “땅이 해마다 풍성한 소출을 내고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것은 천연계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무한한 능력의 손이 이 지구를 인도하면서 깊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공전 궤도에서 지구를 유지하는 것은 순간순간 작용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증언보감 3권, 259).

성경창조기사와 고대창조설화의 차이점

(130.2)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발췌문

“인간 대신 신들이/일을 하고 짐을 졌을 때/신들의 짐이 너무 무겁고/그 노역이 너무 심하며 고통이 너무 많아/… ‘자궁여신에게 자손을 생산하게 하여/인간에게 신들의 짐을 짊어지게 하자!’… 지능을 가진 신 게쉬투에를/그들이 모임 중에 살해했다/닌투가 진흙을 섞었다/그의 살과 피에….”—Stephanie Dalley, Myths From Mesopotamia: Creation, the Flood, Gilgamesh, and Other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pp. 9, 14, 15.

(130.3)고대의 창조 설화들과 성경의 창조 기사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들이 있습니까?

² 1.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서는 인간이 신들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신들은 휴식할 수 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지구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시고 창조의 정점에 이르러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다음 그들과 함께 휴식하셨다. 창세기에서 인간은 한 동산에 배치되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돌보며 하나님과 교통하도록 초대되었다. 이는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는 없는 개념이다.

² 2. 아트라하시스 서사시를 보면 한 작은 신이 살해되고 그의 피와 진흙을 섞어 일곱 명의 남자와 여자를 빚는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손수 사람을 빚으시고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셨으며, 나중에 그의 돕는 배필로 여자가 만들어졌다. 하나님은 어떤 살해당한 신의 피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지 않으셨다.

² 3.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와 달리 창세기에는 어떤 갈등이나 폭력의 징후가 없다. 성경의 기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완전한 세상 속에서 인류에게 고결한 목적을 부여하시는 모습을 숭고한 방식으로 기술한다. 이런 극명한 차이점은 학자들로 하여금 그 둘이 전혀 다른 창조 기사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132.5) 고대 근동 지역의 신화들은 예외 없이 신의 노역을 경감시키려다가 사후 계획의 결과로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런 신화적 관념은 인간이 하나님의 공동통치자로서 지구를 다스려야 한다는 성경의 사상과 상충된다. 인간의 창조는 결코 사후 계획이 아니었다. 오히려 창세기의 본문은 인간의 창조가 창조 기사의 정점에 있음을 가리키며, 이교 설화와 성경의 기사가 얼마나 다른지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창조와 구원

-무엇을 보면 창조가 신약 성경이 전개하는 구원론의 전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132.3) ‘해’와 ‘달’이라는 단어는 의도적으로 회피되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로 그 말이 고대 근동과 이집트의 태양신, 월신의 이름이었기(또는 그것들의 이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큰 광명체”와 “작은 광명체”라는 용어의 사용은 그것들이 특정한 역할 곧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창 1:14)고 “땅을 비추라 하”(창 1:15)기 위해 창조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이 본문은 해와 달이 신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듯이 특정한 기능을 가진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136.3) 예수님과 신약 성경의 모든 기자는 창세기 1~11장을 신뢰할 수 있는 역사로 언급한다. 예수님은 모세의 기록과 남자와 여자의 창조에 대해 언급하신다(마 19:4).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강조하는 신학적인 요점을 입증하기 위해서 자주 창조 기사를 사용했다. 그는 아테네의 학식 있는 자들에게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행 17:24)신다고 선포했다. 이렇게 신약 성경의 기자들은 창세기의 근본적인 특성을 기반으로 현대의 저자들에게 창조라는 문자적인 사건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137.이어서) 로마서 5장을 읽어보라. 바울은 여섯 번 이상 예수님을 아담과 연결시킨다(롬 5:12, 14~19 참고). 즉 그는 역사적인 아담의 문자적인 실존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은 진화론적인 사고가 창세기의 문자적인 이해를 대신하면서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다.

적용해 봅시다.

(131.적용) 성경의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된 개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창조주의 아름다운 성품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결론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정사실로 여기며 그것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식합니다.

고대의 이방 설화와 달리 성경의 창조 기사는 창조주의 성품과 창조의 목적을 고상한 언어로 묘사하며 천체를 숭배하는 다신교적 요소들을 정교하게 교정할 정도로 우리에게 세상의 기원에 대한 올바른 통찰을 제공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정사정없는 무서운 주인으로서 세상위에 군림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인격적인 교제를 하셨습니다. 죄때문에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모습, 창조의 원래 목적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인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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