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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창조 : 성경의 토대를 이루는 창세기 1(질문, 대답, 설명) 05/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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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0-05-16 02:38 조회3,5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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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창조 : 성경의 토대를 이루는 창세기 1

 

5월 23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41분

 

● 연구 범위 : 요 1:1~3, 창 1:3~5, 출 20:8~11, 계 14:7, 마 19:3~6, 롬 5:12

 

● 기억절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1~4).

 

창세기의 첫 몇 장들은 성경의 중요한 토대를 제공한다. 성경의 주요한 가르침과 교리의 기원이 그 장들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마침내 사람을 지으시기 위해(창 1:26~28) 아버지와 아들(요 1:1~3, 히 1:1~2) 그리고 성령(창 1:2)께서 협력하시는 모습 곧 삼위일체의 본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창세기는 우리에게 안식일(창 2:1~3), 죄의 기원(창 3장), 메시아와 구속의 경륜(창 3:15), 세계적인 홍수(창 6~9장), 언약(창 1:28, 2:2~3, 15~17, 9:9~17, 15장), 언어와 백성들의 분산(창 10~11장),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성경 연대기의 틀을 제공하는 족보들(창 5, 11장)을 소개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능력(창 1:3, 딤후 3:16, 요 17:17), 인간의 본질(창 1:26~28), 하나님의 성품(마 10:29~30), 일부일처제(창 1:27~28, 창 2:18, 21~25), 지구와 그 자원에 대한 청지기 직분(창 1:26, 2:15, 19), 새 땅에 대한 약속과 소망(사 65:17, 66:22, 계 21:1)이 모두 이 부분에 기초해 있다. 우리는 이번 주와 다음 주에 이 사실에 대해 공부하려고 한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창세기 특히 창조 기사가 성경 전체의 중요한 토대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유신론적인 진화론의 허점을 알고 창조론에 대한 확신을 강화한다.

행하기 : 타락 이전에 주어진 안식일 제도와 결혼 제도의 신성성을 옹호하기로 결심한다.

 

➋ 창세기는 어떻게 성경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 역할을 합니까?

※ 창조를 믿지 않으면 구속도 믿을 수 없게 된다. 성경의 하나님을 바르게 하는 지침이다. 

➌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말하는 ‘날’이 24시간을 뜻하는 ‘하루’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명시적 기록으로 알 수 있다. 

➍ 성경과 진화론을 조화시키려는 시도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진화론은 성경의 계시를 배제하고 나타난 이론이기 때문이다. 

➎ 왜 창조의 실재성을 이해하는 것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일까요?

※ 창조와 타락에 대한 기록을 부인하면 예수님의 구원사업도 근거가 없게 된다. 

➏ 창조와 함께 시작한 안식일 제도와 결혼 제도의 신성성을 옹호하기 위해서 우리가 고수해야 하는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것을 제정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그것을 설명해야 한다. 

 

결론 : 창세기는 시작의 책으로서 이후의 성경 내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무엇보다 창조와 타락 그리고 십자가는 구속의 역사를 구성하는 필연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창조의 실재성을 부인할 때 성경의 근간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5월 17일(일) 태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창 1:1을 읽어보라. 여기에 어떤 심오한 진리가 계시되었는가?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답: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진리.

 

성경은 가장 장엄하고 심오한 말들로 시작된다. 그 말들은 단순하지만 동시에 매우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정체성, 존재의 목적, 삶의 방법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들의 해답이 바로 성경의 이 첫 구절에 있다.

우리는 과거의 어떤 시점에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존재한다. 우리는 세상의 기원에 대한 현대의 과학적인 모델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어떤 궁극적인 목적이나 의도된 방향 없이 물질로부터 진화했거나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모든 면에서 성경과 배치(背馳)된다. 게다가 진화론과 성경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리석어 보이게 할 뿐이다.

우리는 태초라는 시간의 어느 시점에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이는 태초 이전에 하나님이 존재하셨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은 시간이 창조되기 전, 그것이 연, 월, 일, 곧 지구와 태양, 달 사이의 관계로 특징지워진 주기로 표현되기 이전에 존재하셨다. 성경의 다른 구절들도 이러한 시작을 옹호하며 하나님이 이루신 창조 사역의 특징과 방편들을 지속적으로 재확언한다(요 1:1~3).

 

2. 요 1:1~3과 히 1:1~2을 읽어보라. 창조를 행하신 분은 누구신가?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라.

[요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히1:1,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답: 말씀 하나님이시며,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타락한 지구를 재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신 것을 나타낸다. 

 

성경은 예수님이 창조를 행하신 분이라고 가르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요 1:3)다. 하나님은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히 1:2)다. 태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이 시작하신 일을 마치시리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계 1:8) 곧 “처음과 마지막”(계 22:13)이시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삼위일체 여호와께서 함께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셨다(행17:24). 성경은 여호와와 함께 한 자 없이 여호와 홀로 창조하셨다고 기록하였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사44:24), 이 말씀은 분명히 여호와와 함께 한 자 없이 여호와 홀로 하늘을 펴고 땅을 베풀었다고 했다. 여기 ‘홀로’라는 말은 히브리어 ‘바드’를 번역한 것인데, ‘만이’라는 뜻이다. 즉 여호와만이 하늘을 펴고 땅을 베풀었다는 말이다. 이 말씀에 의하면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만이 창조주라는 뜻이다. 이제 교과에 있는 것처럼 말씀 하니님이신 예수님도 창조하셨고, 시104:30에는 성령께서도 창조에 함께 하셨다. 그러므로 창조에 함께하신 분은 다 여호와라는 뜻이다. 여호와 외에는 어느 존재도 창조에 함께 한 존재가 없다는 뜻이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다. 그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존재하시는 여호와이시다. 그분은 생명 자체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 생명력으로 창조하신다. 무생물을 생물이 살아갈 환경이 되게 하고 거기에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창조하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없다. 없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여호와 하나님이 계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셨으니 감사할 뿐이다. 이 창조가 없었다면 성경은 아무것도 아니고 세계도 사람도 문명도 없다.

 

교훈 : 창조는 성경 전체의 주요한 토대이며, 성경은 이 세상을 만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사실과 그분을 통해 모든 것이 회복되고 완성되리라는 소망을 알려준다.

 

 

5월 18일(월) 창조의 하루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

 

최근에 창조주간을 문자적인 의미가 아닌 은유, 비유 심지어 신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견해는 지구상에 생명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긴 세월이 필요하다고 가정하는 진화론을 추종하여 생겨났다.

 

1.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뭐라고 가르치는가?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날’들을 비유적인 날이 아니라 문자적인 날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창 1:3~5과 출 20:8~11을 읽어보라. 여기서 ‘날’이라는 말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창1:1~5]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출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답: 성경은 지구 한바퀴도는 자전을 하루라고 계시하였다. 제4계명에 의하면 ‘날’은 지구의 한 번 자전을 나타낸다. 

 

‘날’을 뜻하는 히브리어 ‘욤’은 창조 기사 전체에서 일관성 있게 문자적인 하루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창세기의 창조 기사 중에서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하루’와 같이 문자적인 한 날 이외의 다른 것을 암시하는 ‘날’은 없다. 그래서 실제로 그 날들이 문자적이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학자들도 기자가 문자적인 날들을 설명하려고 의도했다는 것만큼은 인정한다.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시간의 첫 번째 단위를 친히 이 이름으로 지칭하셨다(창 1:5). ‘욤’ 곧 날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창 1:5, 8)라는 구절에서 정의되었다. 그 말은 복수 형태가 아닌 단수 형태로 기술되었고 하루를 의미했다.

따라서 창조의 첫째 날은 ‘하나’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기수인 ‘에하드’로 설명되었고 그 이후로는 서수(둘째, 셋째, 넷째 등)로 설명되었다. 이러한 양식은 앞뒤로 이어지다가 제7일에 절정에 이르는 날들의 연속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 단어의 용례 또는 그 기술 형태 자체를 볼 때, 이 날들 사이에 어떤 빈틈이 있다는 암시는 없다. 즉 창조의 7일은 오늘날 우리가 묘사하는 것과 같은 7일을 의미한다.

‘날’의 문자적인 본질은 하나님이 넷째 계명을 기록하셨을 때에도 당연시되었다. 즉 제칠일 안식일의 토대도 문자적으로 7일간의 창조 순서에 놓여 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창조에서 천체 운행의 법칙을 제정하셨다. 일자를 정했다는 것은 지구의 자전 법칙에 대한 말씀이고 연한을 정했다는 것은 지구의 공전 법칙에 대한 말씀이다. 징조가 되게 했다는 것은 천체 운행이 창조주가 계시는 것과 그분이 천체를 규례대로 운행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을 뜻한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이 징조이다. “땅 끝에 거하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시65:8) 이것 외에도 징조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또 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천체가 규칙적으로 운행되는 것이 창조주가 계신다는 징조가 된다는 것이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시119:89~91). 천체 운행을 통하여 창조주가 계시고 친히 운행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하셨다.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1:2,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 사람들은 이 천체 운행의 법칙을 알아내고 그것을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창조 때부터 세세토록 천체는 창조의 규칙대로 운행할 것이고 지구는 한번 자전하는 것이 하루가 되는 것도 영원할 것이다. 이 규례에 의하여 오늘도 지구 자전에 의하여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 안식일을 지킨다. 그 계명에 나 여호와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창조했기 때문에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으면 이 계명을 주시기 전부터 일곱째 날 안식일을 지켰다. 이날은 여호와의 안식일이다. 여호와께서 지구 자전 한 번인 하루씩 엿새 동안 창조하셨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제7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은 엿새 동안 창조하신 사실을 확신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대로 깨닫는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창조 기사에 사용된 ‘날’이라는 말은 일관성 있게 문자적인 하루를 뜻하며 하나님은 그 의미를 기초로 우리에게 안식일 계명을 제시하셨다.

 

 

5월 19일(화) 안식일과 창조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창 2:2~3).

 

오늘날 제7일 안식일은 세속 사회와 종교 단체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이런 사실은 세계적인 기업들의 업무 일정표에도 나타난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달력을 바꿔서 월요일을 첫째 날로, 일요일을 제7일로 배치하려고 시도하며, 기후 변화에 대한 최근의 교황 회칙을 보면 제7일 안식일을 ‘유대인들의 안식일’이라고 부르고 온난화를 경감시키기 위해 전 세계에 휴식의 날을 준수하라고 격려한다.―교황 프란체스코, Laudato Si’ [Vatican City: Vatican Press, 2015], pp. 172, 173.

 

1. 창 2:1~3, 출 20:8~11, 막 2:27, 계 14:7을 읽어보라. 창조 주간에 대한 이해와 넷째 계명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이는 또 세 천사의 기별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창2:1~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출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막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계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답: 엿새 동안 창조하신 사실에 근거하여 제7일을 여호와의 안식일로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창 2:2, 개역)쳤다.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그날을 안식의 날로 성별하셨다”(부조와 선지자, 47).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막 2:27)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이렇게 권위 있는 진술을 내놓으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이 안식일을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영원한 언약의 징표로 제정하시고 인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식일은 히브리 백성만이 아닌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안식일을 제정하신 이후에 하신 세 가지 조치들을 지목한다. 첫째, 그분은 우리가 휴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쉬셨다(창 2:2). 둘째, 그분은 제7일을 복되게 하셨다(창 2:3). 창조 기사를 보면 동물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복을 받았다(창 1:22, 28). 그리고 유일하게 복을 받은 날은 제7일이었다. 셋째, 하나님은 그날을 거룩하게 또는 성결하게 하셨다(창 2:3).

성경에서 그 어떤 날도 이렇듯 세 개의 의미가 부여된 날은 없다. 하나님의 이런 세 개의 조치는 넷째 계명에서도 반복된다. 하나님은 친히 손가락으로 계명을 기록하시며 창조가 안식일의 기초임을 가리키셨다(출 20:11).

 

<부가설명> 제7일 안식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안식하셨으므로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하셨다. 그 안식일을 사람들에게 주셨다(출16:29). 그래서 안식일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안식일이며 그분이 사람들에게 주셨기 때문에 사람들의 안식일도 되었다. 이 날에 피조물인 사람과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만나서 즐겁게 친교 하는 날이다. 동시에 사람은 여호와의 창조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감사하며 경배하는 날이다. 사람들이 한 주간을 7일 주기로 생활하는 것은 의식하지 않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다는 것을 생활로 인정하는 것이다. 일주 7일 제도가 있는 한, 여호와께서 엿새 동안 창조하셨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래서 사탄은 일주 7일 제도를 없애려고 발버둥쳤지만 창조주께서 간섭하시기 때문에 성취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일요일 주일설을 더욱 강력하게 할 것이다. 창조주를 잊어버리게 하는 강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두 가지 무기, 곧 일요일 성수와 영혼불멸설을 가지고 온 세상을 미혹하고 속이고 있다. 교회까지도 이것을 받아들이고 믿고 교리를 만들었으니 엄청나게 성공한 셈이지만 그의 결말도 머지않았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넘어가지 말고 믿음으로 충성하자.

 

교훈 : 창조 기사에서 제7일은 유일하게 복을 받은 날이며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날로서 하나님은 그날의 중요성을 십계명의 넷째 계명으로 기록하셨다.

 

 

5월 20일(수) 창조와 결혼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최근 몇 십 년 동안, 사회와 정부가 결혼을 정의하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동성간의 결혼을 허용하고, 한 남자와 한 여자 중심의 가족 형태를 방어해 왔던 이전의 법률들을 뒤집고 있다. 이는 여러 면에서 전에 없었던 변화이며, 결혼의 구성 요건과 교회와 정부의 관계 그리고 결혼의 신성성 및 가족에 대한 성경의 정의에 대하여 새로운 질문들을 제기한다.

 

1. 창 1:26~28과 2:18, 21~24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들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을 우리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창1:26~28]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2:18, 21~24]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답: 일부일처제도이다. 

 

여섯째 날,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심으로 창조의 절정에 이르셨다. 흥미롭게도 창 1:26을 보면 하나님에 대하여 복수형이 사용되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서로 사랑의 관계로 맺어져 있는 삼위일체께서는 지상에 결혼이라는 신성한 관계를 제정하셨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창 1:27)셨다. 아담은 여자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고 선언하며 그녀를 ‘여자’라고 불렀다. 결혼이 성립하려면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창 2:24)뤄야 한다.

성경은 결혼이 부모에게서 태어난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성립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들의 부모 역시 한 남자와 한 여자였다. 이러한 개념은 인류 최초의 부모에게 주어진 명령에 더욱 분명하게 제시되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 1:28). 다섯째 계명을 보면, 자녀(후손)들은 그의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출 20:12). 이런 상호 연관성은 이성 간의 관계 이외의 그 어떤 것으로도 성취될 수 없다.

 

<부가설명> 창조를 마치면서 사람에게 제정해주신 제도가 제7일 안식일을 거룩하고 복되게 하신 것과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결혼제도를 제정하셔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 것이다. 사람이 타락하여 사망의 존재가 되고 이 세상이 사망의 세상이 되자, 번성하는 사람들이 썩어져가는 구습에 빠져서 일부다처제를 불러들이고 제7일 안식일을 무시하는 문화가 일어났다. 나가서는 동성애도 불러들였다. 소돔 고모라는 동성애로 멸망 받았다. 예수께서는 재림 전에 있을 사회적 상태에 대하여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셨다. 노아의 때의 사회상은 폭력(강포)이 난무했고, 롯의 때는 동성애가 사회상이었다. 이 두 가지 사회문화 현상이 재림 전에 이 세상에 있을 사회적 징조가 된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가 되었다. 재림교회에서 일요일 휴업령, 즉 제7일 안식일을 법적으로 지킬 수 없도록 하는 것에 관하여 많은 말을 하고 동성애에 관하여는 별로 말하지 않는 동안 미국은 용의 첫소리를 동성애를 합법화시키는 것으로 창조질서를 공격하였다. 그 다음은 무엇을 할 것인지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가? 이 일들은 다 진화론과 무신론이 사회를 주도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배격하게 하는 조치들이다. 교회가 이것을 용납함으로 사탄은 대단히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망할 때를 재촉하는 것일 뿐이다. 성도들은 정신을 차리고 진리에 굳게서 서야할 것이다.

 

교훈 : 창세기를 보면 결혼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신령한 제도로서 부모로부터 태어난 남자와 여자가 각각 그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한 몸을 이룸으로 성립된다. 

 

 

5월 21일(목) 창조와 타락과 십자가

 

성경은 완전한 창조, 타락, 약속의 메시아 그리고 최종적인 구원 사이에 끊어지지 않는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이런 주요 사건들은 인류를 위한 구속사의 기초가 된다.

 

1. 창 1:31, 2:15~17, 3:1~7을 읽어보라. 완전했던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2: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3:1~7]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답: 창조주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상이 뱀이 와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도록 유혹했고 시조가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고 벌거벗을 상태가 되었다.

 

하나님은 그분이 만드신 창조 세계를 보시고 “심히 좋았”(창 1:31)다고 하셨다. “창조는 이제 완성되었다.… 에덴은 지상에서 빛났다.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에 자유롭게 접근하였다. 어떠한 죄의 흔적이나 죽음의 그늘도 이 아름다운 창조를 훼손하지 않았다”(부조와 선지자, 47).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금지된 나무의 과실을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경고하셨다(창 2:15~17). 그러나 뱀은 질문을 제기하며 하와에게 말을 걸어왔고, 하나님의 말씀과는 완전히 다르게 말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사탄은 하와에게 놀라운 지식을 약속하며 그녀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속였다. 어리석게도 그녀는 그를 믿었다.

 

2. 바울은 창 2:15~17에 있는 하나님의 진술을 어떻게 확증하는가? 롬 5:12과 6:23을 읽어보라. 이러한 가르침은 유신론적인 진화론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창2: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답: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그의 모든 후손이 죄인이 되었다고 가르치며, 이것이 역사적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동시에 예수님의 희생과 부활로 영생에 이르게 되는 성경의 계시를 무너뜨린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바울의 진술과 정반대 주장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후기의 기자들이 이전의 진술들을 확증하며 추가적인 통찰을 제공하는 경우들을 본다. 로마서 5~8장을 보면, 바울은 죄와 창조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그러나 진화론적인 관점은 인류가 출현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사망이 존재했다고 여긴다. 이러한 사상은 죄의 기원과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 그리고 구원의 계획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만약 죽음이 죄와 관련되어 있지 않다면, 죽음은 죄의 값이 아니고(롬 6:23),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실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창조, 타락, 십자가 사이의 필연적인 관련성이 사라진다. 첫째 아담은 마지막 아담과 연결되어 있다(고전 15:45, 47).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비록 그 안에 유신론적인 개념을 포함한다고 할지라도 기독교의 근간을 파괴하고 만다.

 

<부가설명> 아담은 오실 자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의 표상이다(롬5:14).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서 그의 모든 후손이 죄인이 되었다고 성경은 분명히 가르친다. 아담을 알지 못하는 우리가 왜 아담의 죄 때문에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어떤 학자들은 아담의 인류 대표론으로 이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은 덜 성경적이다. 이럴 때 죄에 대한 바른 정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할 때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죄의 정의를 바르게 아는 것이 아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께서 계명들을 지키라고 했을 때 어릴 때부터 다 지켰다고 했다. 예수께서는 네가 영생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시지 않았다. 다 팔아 구제하고 예수를 따르라고 말했다. 계명 지킨 것과 영생은 관계가 없다는 표현이 아닌가? 바울은 자기의 상태를 이렇게 고백한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3:6),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4:4).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고 스스로 자책할 것이 아무것도 없이 살았다. 그러나 그것이 의가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해로운 것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빌3:7,8), 이것이 의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해가 되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바울은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고전15:22 상반), 아담 한 사람으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는 뜻이 아담의 모든 후손은 아담 안에서 죽었다는 뜻이라고 분명히 설명했다. 인간의 죄는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를 뜻한다. 죽은 자가 도덕적으로 율법적으로 아무리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도록 살아도 그것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의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해로운 것이다. 바울이 이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복음을 바르게 깨닫게 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2).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왜 한 사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모든 인류의 구원을 이루는지도 깨닫게 된다. 진화론은 이런 복음을 절대로 깨달을 수 없고, 죄를 인간의 죄짓는 행위로 생각하는 사람도 이 복음을 절대로 깨달을 수 없다. 

 

교훈 : 창조와 타락과 십자가는 구속의 역사에서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주요 사건들인데 진화론은 그런 관련성을 제거함으로써 기독교의 근간을 무너뜨린다.

 

 

5월 2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조와 선지자>, 44~51 ‘창조’, 111~116 ‘글자 그대로의 주일’을 읽어보라.

“비교학, 문학, 언어학 및 모든 고려 사항을 바탕으로 누적되어 있는 증거는 여러 면에서 단 하나의 결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창세기 1장에서 ‘날’이라는 뜻의 명칭 ‘욤’은 일관성 있게 문자적으로 24시간의 하루를 의미한다.

창세기 1장의 기자는 문자적인 하루라는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가 선택한 방식보다 더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다른 방식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Gerhard F. Hasel, “The ‘Days’ of Creation in Genesis 1: Literal ‘Days’ or Figurative “Periods/Epochs’ of Time?” Origins 21/1 [1994], pp. 30, 31.

“가장 위대한 정신을 가진 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되지 않으면, 과학과 계시와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그들의 시도에서 혼란에 빠진다. 창조주와 그분의 업적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이런 것들이 천연의 법칙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이유로 성경의 역사는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선포된다”(교회증언 8권, 25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바로 위의 인용문을 보십시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성경의 가르침보다 과학적인 주장을 선택함으로 성경의 역사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 현대주의 신학을 따르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믿는다. 카톨릭도 그렇게 가르친다. 

 

➋ 성경의 가르침과 유신론적인 진화론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대가 유신론적인 진화론을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을 안다면, 아담의 타락과 죽음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에 대해 기록한 바울의 설명(로마서 5장 참고)에 비추어서 십자가의 의미를 어떻게 그에게 설명하겠습니까? 

※ 목요일 부가설명을 참고하라. 성경에 족보를 많이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이렇게 연관된 사실을 가르치고 복음을 깨닫게 하려는 족보 복음이다. 

 

➌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눈이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 위대한 진실에 열려있지 못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계시하신 성경의 진리에 마음을 열었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꽉 막힌’ 사람들로 오해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무신론적이고 물질적인 세계관이 그리스도인의 세계관보다 얼마나 편협합니까?

※ 각자 생각해보자. 진정으로 복음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우주를 보는 광활한 의식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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