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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오직 성경으로(질문, 대답, 설명) 0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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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0-04-25 05:55 조회9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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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오직 성경으로

 

5월 2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23분

 

● 연구 범위 : 고전 4:1~6, 딛 1:9, 딤후 1:13, 막 12:10, 26, 눅 24:27, 44~45, 사 8:20.

 

● 기억절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오직 성경’이라는 개신교 정신은 성경을 신학의 유일한 표준이자 결정적인 근원으로 드높였다. 성경과 교회의 전통을 모두 강조하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신학과 달리, 개신교의 신조는 ‘오직’이라는 핵심어를 강조한다. 즉 신앙과 교리에 문제가 있을 때 성경에 유일하고 최종적인 권위가 있다는 뜻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오랜 세월 동안 오류를 가르쳐왔다. 그것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종교개혁에 결정적인 동기와 권위를 제공했던 것은 바로 성경이었다. 다양한 의미로 읽힐 수 있는 풍유적인(allegorical) 해석법과 달리 종교개혁자들은 성경 본문의 문법과 문자적 의미를 진지하게 취급하는 문법적-역사적 해석법을 강조하였다. 

이번에 우리는 ‘오직 성경’의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는 ‘오직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몇 가지 성경 해석의 기본 원칙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배울 것이다. 우리는 개신교도로서 성경을 교리의 최종적인 권위로 주장해야 한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오직 성경’이란 우리의 신앙과 신학을 판단하는 최종 권위가 성경에 있다는 뜻임을 배운다.

느끼기 : 다른 자료에 의지하기보다 성경 자체를 가장 중요한 자료로 삼을 필요성을 느낀다.

행하기 : 성경의 어떤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성경을 폭넓게 살피고 관련 성경절을 두루 살피는 방식으로 성경을 연구하기로 결심한다.

 

➋ 성경과 교회의 전통을 바라보는 개신교와 천주교의 관점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 어떤 경우는 거의 같다. 일요일 성수, 영혼 불멸, 영원지옥 등은 동일하다. 차이는 개신교는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고 천주교는 교회를 상위 권위로 둔다.

➌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오직 성경’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성경만이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이라는 의미이다.

➍ 우리가 어떻게 성경을 사용해서 성경의 주제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 성경만이 신앙과 교리의 최고 권위요 결정자라고 믿고 겸손히 성령의 지도를 구할 것이다.

➎ 교회 안에서 엘렌 G. 화잇의 저술들을 참고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성경과 동등하거나 성경보다 위에 두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서다.

➏ 성경의 어떤 단어나 관련 주제를 검색해서 조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다면 서로 공유해 봅시다.

※ 성구 사전, 관주 등을 통하여 할 수 있다. 

 

결론 : 성경은 내적으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고 그 기별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성경’이라는 개신교 정신에 따라서 다른 자료나 권위에 의지하기보다 성경 자체를 기준으로 우리의 신앙과 신학을 판단해야 합니다. 

 

 

4월 26일(일) 판단 기준으로서의 성경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전 4:6).

 

제칠일안식예수재림교인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을 ‘책의 백성’ 곧 성경을 신봉하는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했다. ‘오직 성경’의 원칙을 확언하려면 성경의 독보적인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성경만이 신학의 판단 기준이며 삶과 교리에 필요한 궁극적인 권위이다. 성경에 비하면 우리의 신앙 경험, 인간의 이성, 전통과 같은 다른 원천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이다. 사실 ‘오직 성경’의 원칙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교회에 대한 의존성으로부터 성경의 권위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 해석의 기준을 성경 밖에서 가져올 가능성을 차단한다.

 

1. 고전 4:1~6, 특히 6절을 자세히 읽어보라. 바울은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말한다. 왜 이것이 우리의 신앙에 그토록 중요한가?

[고전4:1~6]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답: 기록된 말씀, 곧 성경 밖에서 신앙교리를 찾는 것은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대적하는 자 사탄의 올무에 걸리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기록된 말씀 밖’에는 성경고고학이나 역사와 같이 다른 영역의 연구로부터 얻는 통찰도 해당된다. 이러한 영역들은 성경 자체와 성경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빛을 비추어 성경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원어사전, 백과사전, 색인사전, 기타 주석 및 서적들도 성경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된다. 그러나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학문이나 보충 자료와 같은 요소들이 아닌 성경 말씀 자체이다. 다른 자료를 통한 관점은 전반적으로 성경의 관점에서 면밀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성경만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글과 교리의 참된 가장(家長)이다.”—Martin Luther, Luther’s Works, vol. 32: Career of the Reformer II, eds. Hilton C. Oswald and Helmut T. Lehmann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99), pp. 11, 12.

단언컨대, 우리가 ‘오직 성경’의 원칙을 지키면 믿음의 해석에 충돌이 일어날 때에 성경이 다른 자료나 교회 전통 위에서 그것들을 판단하는 권위를 행사할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것을 넘거나 그것에 역행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기독교 신앙과 설득력 있는 복음 전파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고한 충성에 달려 있다.

 

<부가설명>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비록 사람의 언어로 사람이 기록했지만 이미 배운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사상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을 뿐이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고 기자는 선지자와 사도들이다. 우리는 저자와 기자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교회가 교회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이 교회에 대하여 계시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존재한 교회가 성경을 판단하는 직무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말이 안 되는 주장이다.-語不成說-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가감할 수 없고, 사람의 생각대로 해석할 수도 없다. “진정한 기독교 신앙과 설득력 있는 복음 전파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고한 충성에 달려 있다.” 그래서 성경은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을 계시했다. 성령께서 오신 것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사상과 학문으로 잘못 해석하지 않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고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 말씀으로 말씀을 해석하고 깨닫는 경험에 이르러야 한다. 한때 삼육대학 신학과에 성경 고고학 바람이 불어서 학생들이 흥분하고 있었다. 강의하러 가면 계속 고고학 이야기로 술렁거렸다. 누군가 성경 고고학 전문 학자가 와서 강론한 직후였다. 나는 조용히 하도록 말하고 단호히 물었다. “성경 고고학 때문에 성경이 빛을 보는 것인가? 성경 때문에 성경 고고학이 빛을 보는 것인가? 고고학으로 입증이 안 된 부분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학생들이 조용해졌다. 나는 말했다. “성경 때문에 성경 고고학이 빛을 보고, 고고학으로 입증이 안 되어도 성경은 여전히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여러분 독자들도 그렇게 믿으시지요?

 

교훈 : 성경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는 성경 자체이며 다른 자료나 분야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들도 성경의 관점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4월 27일(월) 성경의 통일성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딛 1:9).

 

성경은 스스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딤후 3:16) 되었으며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벧후 1:21)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을 성경의 최종적인 저자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주요 사안에 관하여 성경의 여러 부분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통일성과 조화를 추정할 수 있다. 

 

1. 딛 1:9과 딤후 1:13을 읽어보라. 왜 성경의 통일성이 우리의 신앙에 중요한가?

[딛1: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딤후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답: 성경이 서로 다른 이론과 주장을 한다면 통일성 있는 교리의 체계를 정립할 수 없다. 

 

내적인 통일성 즉 거룩한 영감에서 비롯된 통일성에 기초해야만 성경은 그 자신의 해석자로서 기능할 수 있다. 만약 성경의 그 가르침 속에 포괄적인 통일성이 없다면, 우리는 당면한 쟁점에 대하여 조화로운 교리를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성경에 통일성이 없다면 교회는 진리와 오류를 분별하고 이설을 물리칠 방도가 없을 것이고 징계의 기준을 마련하거나 진리로부터의 이탈을 교정할 근거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성경도 설득력과 파급력을 상실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성경의 기자들은 거룩한 기원에 기초한 성경의 통일성을 당연시했다. 이러한 예는 구약의 책들에서 동일한 비중으로 몇 개의 성경절을 인용하는 일반적인 관례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롬 3:10~18을 보면 바울은 전도서(7:20), 시편(14:2~3, 5:9, 10:7), 이사야(59:7~8)에서 성경절들을 인용한다. 성경 기자들은 성경이 나눠질 수 없고 일관성이 있는 책으로서 그 안에서 주요한 주제들이 한층 발전을 이룬다고 여겼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사이의 부조화는 없다. 신약성경에는 다른 복음 또는 다른 신앙이 수록된 것이 아니다. 구약 성경은 신약성경 속에서 펼쳐지고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을 기초로 수립된다. 이처럼 그 둘은 서로에게 빛을 비춰주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다.

성경의 통일성은 우리가 어떤 성경의 주제를 연구할 때 한 편의 진술들에만 기초해서 우리의 교리를 수립하기보다는 ‘모든 성경(토타 스크립투라 : tota scriptura)’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부가설명> 한 사람이 책을 쓸 때 주제가 통일되지 않으면 그 주제를 바르게 설명할 수 없고 읽는 자에게 설득력이 없어진다. 사람이 쓰는 글도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저자가 된 성경이 통일성이 없다면 이 책을 쓰신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같은 주제로 전개되어 있다. 1500년 동안, 세 대륙에서, 40여 명의 기자가 기록한 책인데 놀랍게도 질서정연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의 주제는 인류의 구원이고 그 일을 이루실 구주에 대한 것이다. 이 주제는 창세기부터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계시록까지 한결같이 이어진다. 율법서를 읽어도 역사서를 읽어도 시가와 예언서를 읽어도 똒같다. 복음서나 편지서도 마찬가지이다. 15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40여 명이라는 여러 기자가 각각 다른 시기에 때로는 다른 장소에서 썼는데, 또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기자들인데 놀랍게도 주제가 통일되어 있고 내용이 일관되어 있다. 이런 모든 상태를 깨달으면 그 자체로 이 책이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시대와 지역과 사람을 초월하여 이 책을 기록하도록 인도하신 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이 책을 읽을 때에 저자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주제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구원을 받는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아멘.

 

교훈 :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시라면 성경의 내적인 통일성은 당연한 것이며 그 통일성을 기초로 진리와 오류의 구분과 바른 교리의 수립도 가능하다.

 

 

4월 28일(화) 성경의 명확성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눅 6:3).

 

만약 성경 본문의 의미가 불명확하다면 ‘오직 성경’에 대한 호소는 앞뒤가 맞지 않게 될 것이다.

 

1. 마 21:42, 12:3, 5, 19:4, 22:31, 막 12:10, 26, 눅 6:3, 마 24:15, 막 13:14을 읽어보라. 성경에 대한 예수님의 반복적인 언급은 그 기별의 명확성에 대해 무엇을 암시하는가?

[마21: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12: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마19: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마22:31]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막12:10,26]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눅6: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마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막13: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답: 그 기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확실한 사실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성경의 증언은 명료하다. 성경은 그 가르침에 있어서 충분하리만큼 확실하다. 성경은 가장 기본적인 교훈에 있어서 어린이와 어른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다. 반면 그러한 교훈 안에서도 우리의 지식과 이해력이 더 깊은 수준으로 성장할 기회가 끝없이 제공된다. 성경의 의미를 알려주는 가톨릭교회의 교도권은 필요하지 않다. 모든 신자는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들은 스스로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은 성직자 같은 소수에게 그 해석의 권한을 제한하기보다 만인제사장주의를 당연시한다. 하나님이 주신 기별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스스로 연구하도록 권장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언급되었다. “성경 기자들의 일관된 모본은 성경이 분명하고 명확하게 상징을 의도하지 않는 한, 성경을 그것의 분명하고 문자적인 의미대로 취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수자들만이 밝힐 수 있는 신비하고 숨겨진, 풍유적인 의미의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서 문자적인 의미의 ‘껍질’을 벗겨낼 일은 전혀 없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교리·신학 핸드북, 95. 오히려 성경의 명료성은 성경에 사용된 그 언어와 감각과 단어들과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성경 기자들은 성경 본문의 주관적이고 통제받지 않는 다중적인 의미보다는 명백한 진리를 의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하거나 파악하지 못하는 본문과 개념을 절대 마주치지 않으리라는 뜻은 아니다. 아무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는 타락한 인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정말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는 구원의 문제에 대하여 충분하리만큼 분명하다.

 

<부가설명> 성경연구는 어떤 특권층에 맡겨진 것이 아니다. 베레아 사람들은 스스로 연구하였다. 구스 내시도 병거에서 성경을 읽고 깨닫기를 원했다. 그런데 카톨릭은 교회가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가지지도 못하게 하고 읽지도 못하게 했다. 지금은 성경을 가지고 읽는 것은 허락하지만 해석은 할 수 없다고 했다. 성경의 정신과 반대되는 것이다. 복음은 처음부터 통역으로 각각 자기 방언으로 들을 수 있게 하셨다. 오순절에 모인 여러 지방에서 온, 여러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이 각각 자기 방언으로 복음을 듣도록 성령께서 친히 통역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성령께서 통역하셨다고 믿는다. 그래서 복음은 처음부터 땅끝까지 전파되는 방법이 각각 자기 방언으로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준 것이다. 성경이 각 나라 언어로 번역되게 하시고 각각 자기 나라 문자와 언어로 복음을 듣게 하셨다. 얼마나 큰 특권이고 하나님께서 하신 확실한 방법이 아닌가? 그리고 성경은 통일성과 확실성은 변함없이 세상 끝날까지 유지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신뢰하는 과학적 사실은 날이 가면서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뢰하고 말씀대로 믿음의 삶으로 충성하자.

 

교훈 : 성경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의도하는 바가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연구하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깨달을 수 있다. 

 

 

4월 29일(수) 성경이 성경을 해석함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눅 24:44).

 

성경의 기저에 존재하는 통일성 때문에 성경은 스스로의 해석자로 기능할 수 있다. 그와 같은 통일성이 없다면 성경은 그 자체의 의미를 밝혀주는 빛이 되지 못하고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해석하거나 이해하는 열쇠가 되지 못할 것이다.

 

1. 눅 24:27, 44~45을 읽어보라.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어떻게 성경을 언급하셨는가? 이로 보건대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눅24:27, 44,45]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답: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기를 가리켜 기록돈 것이 이루어졌다고 하셔서 성경의 기록을 확신하고 사용했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하는 방식의 장점은 그것이 성경의 의미를 밝히는 더 많은 빛을 흘려준다는 데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의 견해를 입증하기 위해서 마구잡이로 여러 성경절을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대신 우리는 각 성경절의 문맥을 면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연구하고 있는 성경절의 앞뒤 문맥 이외에도 그 말씀이 위치한 책의 문맥까지 고려해야 한다. 더욱이 바울의 말처럼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롬 15:4)이기 때문에 우리는 해당 주제에 관해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을 연구해야 한다.

“성경은 그 자체의 해설자이다. 성구는 성구끼리 비교되어야 한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생은 성경 구절을 그 전체적인 입장에서 관찰하는 동시에 그 부분적인 관계를 알아내도록 배워야 한다. 그는 성경의 커다란 중심 주제인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근본 목적, 곧 대쟁투의 시작과 구속 사업의 기원에 대한 지식을 얻어야 한다”(교육, 190).

우리는 성경을 성경과 비교함으로써 그것을 더욱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우리는 원어 성경을 연구해야 하며, 적어도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담긴 의미를 충실하게 번역한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원어에 대한 지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그것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지 않더라도 겸손하고 순종적인 태도와 진실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연구하다면 분명히 큰 결실을 거둘 것이다.

 

<부가설명> 오래 전, 내가 젊을 때에 신문에서 불경번역 사업에 대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 기사에는 이런 기록이 있었다. 기독교가 한국에서 길지 않은 시간에 교세를 크게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경전인 성경을 한글로 번역해서 보급했다는데 있다. 불경은 한자로 되어 있어서 아무나 대할 수 없었다. 기독교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불경이 한글로 번역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 만시지탄이 있지만 지금이라고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잘한 일이라는 취지의 글이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정말 성경의 복음은 시작부터 통역으로 시작되었고 신약성경 기자들은 히브리어가 나오면 ‘번역하면’이라는 말과 함께 헬리어로 번역해 놓았다. 우리가 원어를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번역된 성경으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는 데 충분하다. 그러나 원어를 배우고 이해하면 더욱 좋은 것은 사실이다. 모든 평신도에게 그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한글 성경으로 열심히 연구해서 진리를 바르게 깨닫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연구하고 지금은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열 종류 이상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도 11개의 한글 번역 성경을 가지고 있다. 이 성경들을 다 참고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번역들은 조심해야 한다. 현대주의 사상을 깔고 번역한 것들도 있다. 평시도들이 성경을 선택할 때에 목사님들의 조언을 받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한글 성경으로도 진리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 면밀히 주의 깊게 살피면 앞에 간단하게 기록한 내용이 다른 부분에서 더 설명한 구절들을 찾을 수 있다. 성구사전과 관주는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좋은 길잡이 된다. 

 

교훈 : 우리는 성경을 통해 성경을 이해할 수 있고, 어떤 주제에 관하여 모든 성경절을 참고하되 문맥을 고려하여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4월 30일(목) ‘오직 성경’과 엘렌 G. 화잇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1. 사 8:20을 읽어보라. 우리의 가르침과 교리의 기준으로서 성경이 말하는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항상 참고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경의 일부가 되지 못한 선지자들의 기록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사8: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답: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모으신 것 외에는 전 인류의 소용이 아닐 수 있다. 선지자가 산 그 시대에만 국한된 기별이라든지 또는 어떤 개인에게만 필요한 기별들은 선지자의 글이라도 성경에 편입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율법도 있고 증거의 말씀도 있다는 사실을 성경이 계시한 것은 중요하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오직 성경’에 관해 말할 때 숙명적으로 엘렌 G. 화잇의 문제에 부딪힌다. 그녀는 하나님께 감동을 받아 남은 백성들을 위한 기별자로서 봉사하였다. 그녀의 저술은 성경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우리는 엘렌 G. 화잇의 저술을 대충 읽어만 봐도 성경이 그녀의 사상과 신학 속에서 바탕과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녀는 반복해서 성경이 모든 교리와 신앙과 행위의 궁극적인 규범과 기준이자 최고의 권위라고 단언하였다(각 시대의 대쟁투, 595 참고). 게다가 그녀는 ‘오직 성경’이라는 개신교의 대원칙을 확고하게 지지하고 옹호했다(각 시대의 대쟁투, 9 참고).

그녀의 관점에서 그녀의 글은 성경과 비교할 때 “사람들을 더 큰 빛으로 인도하기 위한 작은 빛”(Advent Review and Sabbath Herald, 1903년 1월 20일)이었다. 그녀의 저술은 진지한 성경 연구의 지름길 또는 대체물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권면했다. “그대들은 성경 말씀과 친숙하지 않다. 성경의 표준에 이르며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도달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였다면, 그대들은 교회증언이 필요 없었으리라. 그대들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책을 연구하지 않으므로 그대들이 순종하기를 게을리하였던 영감의 말씀으로 그대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그 순결하고 고상한 가르침으로 그대들의 삶을 꼴 지워 나가게 하시고자 그분께서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증언으로 그대들과 연결되기를 구하신다”(교회증언 2권, 605).

그녀의 저술들은 그와 같이 이해되어야 한다. 그녀의 저술에는 성경 저자들에게 임했던 동일한 영감이 임했다. 그러나 그것들의 역할은 성경의 역할과는 다르다. 그녀의 저술들은 성경에 추가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지배를 받는다. 그녀는 결코 자신의 저술들이 성경을 대체하도록 의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으로 높였다.

 

<부가설명> 이사야서 8:20은 율법과 증거의 말씀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똑 같은 어법이 계12:17에 있다. 즉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했다. 옆으로 누운 굵은 글씨를 대조해 보라. 같은 내용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다. 역사의 종말, 진리가 인간의 학문으로 어둡게 가려졌을 때 성령으로 이 가림막을 벗도록 하기 위하여 한 종을 택하시고 작은 빛의 증언을 주셔서 어둡게 한 베일을 벗기도록 하신 것이다. 엘렌 화잇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그가 “성경의 표준에 이르며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도달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였다면, 그대들은 교회증언이 필요 없었으리라. 그대들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책을 연구하지 않으므로 그대들이 순종하기를 게을리하였던 영감의 말씀으로 그대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그 순결하고 고상한 가르침으로 그대들의 삶을 꼴 지워 나가게 하시고자 그분께서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증언으로 그대들과 연결되기를 구하신다.” 아모스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세상에 편만할 때 증거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이 말씀으로 성경을 밝게 이해하는 길잡이를 삼으면 오묘한 진리를 성경적으로 바르게 깨닫는 은혜를 누릴 것이다. 나는 전적으로 그렇게 믿는다.

 

교훈 : 엘렌 G. 화잇의 증언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그분의 남은 백성에게 전하는 기별이지만 성경을 대신하기보다 우리를 성경으로 이끌기 위한 작은 빛이다.

 

 

5월 1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교리·신학 핸드북>, 94~96 ‘성경은 그 자체의 해석자이다’, ‘성경의 일관성’, ‘성경의 명료성’, <교육>, 185~192 ‘성경의 가르침과 연구’, <가려 뽑은 기별 3권>, 29~33 ‘말씀의 탁월성’을 읽어보라.

“성경을 연구하려는 사람은 배우는 자의 정신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알기 위하여 성경의 각 페이지를 연구해야 한다. 성경의 참지식은 말씀을 주시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얻을 수 있다. 또한 이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을 모두 다 순종해야 한다.… 성경을 연구하는 때에는 가장 부지런한 노력과 인내성 있는 사고가 요구된다. 마치 광부가 땅 속의 금광을 찾아 파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보물을 열심히 끈기 있게 찾아야 한다”(교육, 189).

“성경을 그대의 음식으로, 그대의 끼니로, 또한 그대의 음료로 삼으며 그 원리를 그대의 품성의 요소로 삼을 때 그대는 하나님께로부터 권면을 받는 법을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 그대 앞에 귀중한 말씀을 높인다. ‘화잇 자매가 이렇게 말했다.’ 혹은 ‘화잇 자매가 저렇게 말했다.’ 하면서 내가 말한 것들을 반복하지 말라.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를 찾고 그분이 명하신 바를 행하라”(가려 뽑은 기별 3권, 3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이 아닌 일부 성경절만 살펴봄으로써 어떤 잘못된 교리들을 주장하고 있습니까?

※ 일요일 주일성, 영혼불멸설 등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➋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그가 여전히 참선지자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런 사실로부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인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 그는 신약성경에 기록된 선지자이고 예수께서 친히 인정한 선지자이다. 기록을 남기지 않은 선지자들이 많다. 엘리야, 엘리사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➌ 재림교인들만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처럼 주장하는 교회들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찾았다고 주장하면서 우리와 상반되는 교리들을 고수하는 교회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 그들은 교회의 전통과 신학과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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