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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우리 신학의 원천인 성경(질문, 대답, 설명) 04/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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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0-04-18 02:30 조회9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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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우리 신학의 원천인 성경

 

4월 25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17분

 

● 연구 범위 : 막 7:1~13, 롬 2:4, 요일 2:15~17, 고후 10:5~6, 요 5:46~47, 7:38.

 

● 기억절 :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자신들의 신조를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을 사용하지 않는 교회는 없다. 그러나 신학적인 성경의 역할과 권위는 모든 교회 안에서 동일하지 않다. 사실 교회에 따라 성경의 역할은 매우 다양하다. 이것은 중요하면서도 복잡한 주제이다. 우리는 성경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다섯 가지 요소 즉 전통, 경험, 문화, 이성 그리고 성경 자체에 대해 연구하며 그 주제를 탐색하려고 한다.

이 요소들은 모든 신학과 교회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전통과 문화의 일부이다. 우리의 사고와 이해력은 모두 경험을 통해서 형성되고 영향을 받는다. 또한 우리에게는 사물을 인식하고 평가하는 이성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사용한다.

이 요소들 중 무엇이 또는 어떤 조합이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고 그것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데 사용되는 방식의 최종적인 권위가 되는가? 주어지는 우선권에 따라 매우 다른 강조점과 결과를 초래하며, 궁극적으로 신학의 전체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성경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다섯 가지를 살펴보고 그중에서 성경이 왜 최종적인 권위가 되어야 하는지 깨닫는다.

느끼기 : 성경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적인 요소들이 모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행하기 : 성경을 가장 권위 있는 표준으로 삼고 우리의 전통, 경험, 문화, 이성 등을 검증한다.

 

➋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그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신학과 문화와 교회 전통과 개인의 신앙경험 등이다. 

➌ 성경은 어떻게 문화라는 맥락에서 기별을 전함과 동시에 그것을 초월한 가치를 제시합니까? ※ 문화를 올바르게 사용하여 기별을 전하지만 성경은 그 문화를 초월하여 성경 사상이 문화를 지도하도록 되어야 한다.

➍ 이성이나 경험을 근거로 성경을 해석하는 데는 어떤 한계가 있을까요?

※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게 한다.

➎ 우리가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꼭 성경의 관점에서 검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성경만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➏ 우리의 전통, 경험, 문화, 이성의 관점에서 풀었던 해석들은 어떻게 성경의 관점에서 교정될 수 있을까요? 예를 찾아보십시오.

※ 일요일 준수가 제7일안식일 준수로 개혁된 것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결론 : 하나님의 기별은 인간 사회의 다양한 맥락에서 주어지며 그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요소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성경을 표준으로 그러한 것들을 검증하며 성경이 궁극적으로 제시하려는 하늘의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4월 19일(일) 전통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막 7:9).

 

전통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의 삶에서 반복되는 행위들에 어떤 틀과 짜임새를 제공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뿌리에 지속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전통이 종교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전통과 관련된 몇 가지 위험성이 있다.

 

1. 막 7:1~13에 따르면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의 전통에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막7:1~13]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13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답: 그들의 종교적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지하는 허물을 지적하셨다.

 

예수님이 마주하셨던 전통은 유대 공동체 안에서 스승으로부터 문하생에게 고이 계승되었다. 예수님 당시에 그것은 성경과 얼마간 동등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통은 오랜 세월을 걸쳐 형성되기 때문에 본래 하나님의 말씀이나 계획의 일부가 아닌 세부 요소와 측면들이 점점 축적되는 경향이 있다. 비록 이러한 인간 전통들은 유대 공동체의 종교적 지도자들이었던 존경받는 장로들(막 7:3, 5 참고)에 의해 장려되었지만 하나님의 계명과 동등하지는 않았다(막 7:8~9 참고). 이러한 인간 전통들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막 7:13)는 지경에 이르렀다. 

 

2. 고전 11:2과 살후 3:6을 읽어보라.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전통을 구분하는가? 우리에게 이런 구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전11: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살후3: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답: 사도들이 전한 전통을 말씀에 기초하여 행해야 한다. 전해진 전통을 성경으로 검증해서 따라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말씀은 우리 안에 말씀을 향한 경외와 성실의 태도를 일으킨다. 이러한 성실성이 전통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우리의 성실성은 항상 기록된 말씀을 통해 자신의 뜻을 계시하는 하나님께 충실해야 한다. 곧 성경에는 모든 인간의 전통을 대체하는 고유한 역할이 있다. 성경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모든 전통 위에 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형성된 전통들은 성경이라는 잣대로 꾸준히 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

 

<부가설명> 역사가 진행되면 생활의 습관이 생기고 문화가 형성되고 풍속이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그 형성된 문화의 틀에 안주하게 된다. 아무런 비판 없이 당연하게 여기고 그런 문화에 적응한다. 그래서 문화는 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에게 개인의식과 상관없는 공통의식이 된다. 개인들에게는 무의식의 의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풍속을 거스르면 이상한 눈으로 본다. 문화를 역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과 문화는 이렇게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그들의 선배들이 이해하고 해석한 성경 말씀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서 생활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그릇된 문화를 시정하기를 원하셨다. 그것은 성경의 본래 뜻과는 전혀 다른 인간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혼에 대하여 질문할 때 대답하신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여짜오되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마19:3~8) 예수님은 본래 그렇지 않은 그것을 가르치기를 원하셨다. 우리도 신앙의 전통과 습관과 신앙문화가 성경과 잘 맞는지 확인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 베레아 사람들의 태도를 꼭 배워야 할 것이다.

 

교훈 : 신앙 전통은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우리의 성실성과 경험으로부터 형성되지만 그것은 여전히 성경의 권위 아래에 있고 성경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4월 20일(월) 경험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롬 2:4).

 

1. 롬 2:4과 딛 3:4~5을 읽어보라.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관용과 용서와 인자하심과 사랑을 경험하는가? 왜 우리의 믿음이 단지 추상적이고 지적인 지식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가? 반면 우리의 경험이 어떻게 성경과 상충되거나 심지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있는가?

[롬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딛3:4,5]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답: 회개는 경험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경험하도록 인도하신다. 중생과 새롭게 되는 것도 경험으로 확실해지게 되어 있는데 기초적인 것이 침례이다. 

 

경험이란 삶의 일부이다. 그것은 우리의 감정과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나님은 그분의 창조세계뿐 아니라 그분과 맺는 우리의 관계가 경험을 통해서 의미 있게 맺어지고 형성되도록 우리를 지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관계, 미술, 음악, 신비로운 천연계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구원의 기쁨과 말씀에서 주어지는 약속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바라신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은 단순한 교리와 합리적인 결정 그 이상이다. 경험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관점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이해의 틀을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과정에서 우리의 경험에 분명한 한계와 부족이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2. 고후 11:1~3에는 어떤 경고가 주어졌는가? 경험에 의존하는 신앙의 한계는 어떤 것인가?

[고후11:1~3]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답: 뱀은 하와를 꾀어서 그릇된 경험으로 이끌었다. 이런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경험은 매우 기만적일 수 있다.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경험에는 적당한 자기 분량이 있다. 그것은 성경의 지식이 가미되고 성경을 통해 형성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종종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분의 뜻과 조화되지 않는 어떤 것을 경험하기 원한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욕망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법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경험이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가 되는지 그리고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과 모순되지 않는지 경계해야 한다.

 

<부가설명> 사람은 삶이 경험적이기 때문에 신앙의 영적인 부분도 경험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무슨 신령한, 초인간적인 어떤 것을 경험하기를 원한다. 사탄은 이런 사람의 심리를 악용하여 자기의 부하 타락한 천사들을 귀신으로 이용한다. 그래서 마치 신앙적 멋진 체험을 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그것이 성령께서 주신 체험으로 생각하고 신이 나서 간증하고 그 간증을 듣는 사람들은 그런 체험을 사모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기를 좋아한다. 이런 경우를 성경은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11:4)라고 경계하였다. 신앙적 경험이라도 성경으로 철저하게 검증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고 마치 성령의 역사처럼 작용하고 사람을 속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진리를 옳게 분변하라고 강하게 권고한다. 그래야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가 되기 때문이다.(딤후2:15) 재림성도들은 철저히 이런 자세로 신앙에 임해야 할 것이다.

 

교훈 : 경험은 우리의 삶과 신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럴지라도 그것이 말씀과 조화되는지 항상 경계하며 말씀보다 앞세워서는 안 된다.

 

 

4월 21일(화) 문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우리 모두는 특정 문화에 속하거나 문화의 일부이다. 우리의 삶은 문화의 영향을 받고 그것에 따라 틀이 잡힌다. 누구도 문화와 별개일 수는 없다. 생각해보면 구약성경의 상당 부분은 주변 문화에 의해서 타락해 갔던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이다. 오늘날 우리라고 다르거나 더 나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나의 문화에 제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특정 문화 속에서 제시된다. 그래서 문화적인 요인들은 성경을 읽는 우리의 이해력에 불가피한 영향을 미친다. 그럴지라도 성경이 종족, 영토, 사회적인 신분과 같은 기존의 문화 영역들을 초월한다는 관점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모든 인간의 문화를 능가하며 그런 문화들 속에 박혀 있는 죄악의 요소들을 변화시키고 교정하는 능력이 있다.

 

1. 요일 2:15~17을 읽어보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세상 속에 살면서 세속적인 사고방식을 지양할 수 있을까?

[요일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답: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이 말씀은 성도들은 세속적인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말씀이다. 진리의 사람이 되어 진리 문화를 형성할 때 성령께서 이끄실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의 다른 요소들처럼 문화도 죄로 물들었다. 그래서 문화도 심판의 대상이다. 물론 문화의 어떤 면들이 우리의 신앙과 매우 잘 어울릴지라도 우리는 항상 이 둘을 신중하게 구분해야 한다. 이상적이라면 성경을 따르는 신앙은 기존의 문화에 위협이 되며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 대항문화를 형성할 것이다. ‘위의 것’에 고정된 무엇이 우리 안에 없다면 우리는 곧 주변의 것에 굴복하게 될 것이다.

 

<부가설명> 옛날 이스라엘이 애굽에 살명서 애굽 문화와 풍습에 물들었다. 그들은 출애굽해서 광야에서도 애굽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했다. 그들이 430년을 애굽에 살았으니 그들의 문화화 풍습이 완전히 몸에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 말씀의 문화생활을 형성해야 했다. 모세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로 경험할 때에 그 문화가 형성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명령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레18:1~4) 애굽의 풍습도 따르지 말고 들어가서 살게 될 가나안 땅의 풍습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법과 규례를 따라 생활해서 그런 문화와 풍속을 창조해야 했다. 이것은 오늘 재림성도들에게도 요구되는 사항이다. 우리는 애굽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의 원칙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께서 그렇게 사셨다. 성경은 예수님을 본받아 변화되는 것을 정해놓았다고 했다.(롬8:29)우리가 말씀에 굴복하면 이런 경험을 하고 이런 문화를 이룩할 것이다. 아멘.

 

교훈 : 성경은 문화 속에서 주어지지만 그 교훈과 원칙은 모든 문화를 초월하며 심지어 기존의 문화를 위협하고 그것과 다른 하늘의 가치를 제시한다.

 

 

4월 22일(수) 이성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5).

 

1. 고후 10:5~6, 잠 1:7, 9:10을 읽어보라. 생각으로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인가?

[고후10:5,6]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답: 여호와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인간의 이성을 창조하셨다. 창조주께 우리의 생각이 사로잡힐 때 창조의 목적에 합당한 생각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인간의 모든 행위와 신학적인 주장은 생각하고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정한다. 우리는 비이성적인 신앙을 지지하지 않는다. 한편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이후로 인간의 이성은 서구 사회에서 새로우면서도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인간이 이성적으로 사고하면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였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감각적인 경험에 기초한다는 사상과 달리 인간의 이성을 지식의 주요 원천으로 간주하는 견해도 있다. 합리주의라고 일컫는 이 관점에 따르면 진리는 감각적이라기보다는 이지적이며 이성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진리가 존재한다면 우리의 이성은 단독으로 그것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다. 합리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진리의 시금석과 규범으로 삼았다. 이성은 새로운 권위가 되었고 교회의 권위뿐 아니라 모든 것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까지 이성 앞에 무릎 꿇어야 했다. 인간의 이성에 자명하지 않은 모든 것은 폐기되었고 그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런 태도는 성경의 많은 부분에 반영되었다. 서너 가지의 예를 들자면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 처녀 탄생, 6일간의 창조와 같은 하나님의 모든 이적과 초자연적인 행위들은 더 이상 진실 또는 신뢰할 만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성의 힘이 죄에 영향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놓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고 그 지력은 어두워졌다(엡 4:18).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몽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시라는 사실은 인간의 이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또는 자율적으로 기능하도록 창조되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오히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잠 9:10; 1:7 참고)다. 우리가 기록된 말씀으로 구현된 하나님의 계시를 삶의 최고 권위로 받아들이고, 성경 안에 기록된 것을 기꺼이 따르려고 할 때 우리는 비로소 바르게 사고할 수 있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자신이 사망의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엄밀히 생각하면 죽어가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사고방식은 죽어가는 원리에 의하여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서는 생명의 사고방식이 나올 수 없다. 성경은 이런 사실을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것’이라고 분명히 계시하였다.(엡4:22)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가질 수 없다.(고전15:50 참고)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럴 때만 창조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게 된다. 이런 경험에 이르면 예수께서 거듭나게 하시고 생각이 영적으로 이루어지게 하신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아담의 후손들의 생각은 사망적인 생각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 우리의 생각이 영적이 된다. 우리는 영적 이성을 발휘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영적 이성이 어떤 것인지는 성경이 제시한다. 그래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오직 성경이 사고와 생활의 표준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귀가 가룟유다에게 예수를 팔 생각을 넣은 것처럼 우리에게도 순간순간 예수를 팔 생각을 주입한다. 우리는 정말 생각을 사로잡아 주님께 굴복시켜야 한다.

 

교훈 : 계몽주의 시대 이후로 인간의 이성이 최고의 권위를 차지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것은 바르게 기능할 수 있다.

 

 

4월 23일(목) 성경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요 5:46~47).

 

성경의 내용을 인류에게 계시하고 감동시키는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거나 그것에서 어긋나게 인도하시지 않는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에게 성경은 인간의 전통, 경험, 이성, 문화보다 높은 권위이다. 성경이 유일한 표준이며 다른 모든 것은 그것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

 

1. 요 5:46~47과 7:38을 읽어보라. 예수님의 입장에서 성경은 우리가 영적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확인해야 할 최종적인 자료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아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증하는가?

[요5:46,47]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답: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확증한다. 

 

어떤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특별한 계시 또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분명한 기별에 역행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높은 귄위를 획득한다. 그러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무력화시키고 그것의 분명한 기별을 침범하는 자는 누구든지 위험한 길을 걷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유일한 안전장치이다. 그것만이 신앙과 행위의 모든 문제를 가늠할 수 있는 표준이다.

“성령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마음에 말씀하시며 진리를 심령에 깊이 새기신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잘못을 드러내시고 심령에서 그것을 내쫓으신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행하시는 것이다”(시대의 소망, 671).

우리는 절대 성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분은 성경과 조화롭게, 성경을 통해서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심으로써 성경으로 하여금 진정한 영성을 가늠하게 하는 유일한 표준이 되게 하신다.

성경은 건전한 교리를 제공하고(딤전 4:6 참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믿을 수 있으며 온전히 수용할 가치가 있다. 성경을 판단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또는 우리의 생각을 판단할 권리와 권위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성령께서는 성경말씀을 범위를 넘어가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친히 말씀하셨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요16:13~15) 성령은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자기에게 직접 말했다고 하면서 성경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성령이 아니라 성령으로 가장한 악령의 장난이다.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신앙체험, 성령체험이라는 이름을 행해지는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이런 일은 잦을 것이다. 계시록은 마귀가 이적을 행하여 세상을 미혹할 것이라고 예언했다.(계13:13, 16:13,14) 이적을 따라 다니는 신앙은 위험한 신앙이고 그 밑바닥에는 이기심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 눈으로 예수님을 뵙지 못하고 하나님도 뵙지 못한다. 오직 기록된 말씀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말씀의 권위가 가장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그렇게 높이셨기 때문이다. 말씀이 말씀하신 분보다 높을 수는 없지만 말씀하신 분이 이 세상에서 말씀을 볼 때 말씀하신 분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하시면 그렇지 않겠는가?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라.”(시138:2)

 

교훈: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성령의 인도는 있을 수 없다. 그분은 오히려 성경을 통해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며 성경을 모든 생각과 행동의 표준으로 삼으신다.

 

 

4월 24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각 시대의 대쟁투> 593~602 ‘믿음의 기준이 되는 성경’을 읽어보라.

전통, 경험, 문화, 이성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생각 속에 모두 작용한다. 문제는 이중에 무엇이 신학의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느냐이다. 성경을 확신하는 것과 성경으로 하여금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변화시키게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어떤 의미에서 문화, 경험, 이성 심지어 전통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것들은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될 때만 문제가 된다. 단지 그런 일이 빈번할 뿐이다. 게다가 그것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갈 때에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구약뿐 아니라 신약의 시대에도 외적인 감화가 거룩한 계시를 앞지를 때 발생했던 숱한 배도의 역사가 있었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율법의 정신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보다 인간 전통의 세부사항을 지키는 것이 더 쉬운 이유는 무엇일까요?(마 22:37~40 참고)

※ 인간들의 육신적 경향이 그렇고 문화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기 때문이다.

 

➋ 전통은 교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신앙 전통의 유익과 도전은 무엇입니까?

※ 성경의 검증을 받은 후에 합당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 바른 전통은 교회를 운영하는데 도움이 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위험이 된다. 

 

➌ 전통이 아무리 좋더라도 우리의 최종적인 기준이자 권위인 기록된 말씀을 대체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모든 것을 철저히 말씀을 검증하는 일이다. 

 

➍ 누군가 꿈속에서 일요일이 참예배일이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면 그대는 그에게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사례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어떻게 경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항상 검증되어야 합니까?

※ 어떤 신앙적 경험도 말씀과 일치하지 않으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➎ 그대의 교회는 어떤 문화에 잠식되어 있습니까? 그 문화는 그대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지금 와서 볼 때 역사적으로 문화가 그리스도인들의 행위에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사례는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가 동일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그러한 사실로부터 배워야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 초기 복음이 전파될 때 유대인들의 종교문화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될 때 이미 있던 종교가 사회 문화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 교회에 그대로 유입되어 배도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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