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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예수님과 사도들의 성경관(질문, 대답, 설명) 04/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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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0-04-11 03:26 조회3,1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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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예수님과 사도들의 성경관

 

4월 18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10분

 

● 연구 범위 : 마 4:1~11, 22:37~40, 눅 24:13~35, 44~45, 눅 4:25~27, 행 4:24~26

 

● 기억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성경이 그 영감과 권위를 의심하는 철학의 렌즈를 통해 광범위하게 재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성경은 오늘날의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던 원시 문화에 속한 인류의 관념 정도로 간주된다. 동시에 초자연적인 요소는 무시되거나 심지어 제거되었고, 성경은 하나의 문서로 전락해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가 아닌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견해가 되었다. 그 결과로 성경은 진화론적인 사고와 근대 철학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무관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입장을 단호하게 배격한다. 오히려 우리는 신약 시대에 예수님과 사도들이 당시의 유일한 성경이었던 구약성경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연구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바라보는 영감적인 방법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성경에 묘사되어 있는 백성, 장소, 사건들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그들의 가정(假定)과 그에 따른 해석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영감을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오해와 가정을 따르지 말고 예수님과 사도들의 성경관을 따르자.

 

※ 학습 목표

깨닫기 : 예수님과 사도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하고 신화가 아닌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였음을 배운다.

느끼기 : 모든 성경을 중요하게 여기신 예수님으로부터 성경의 권위에 대한 태도를 본받는다.

행하기 : 예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구약과 신약 모두를 조화롭게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➋ 성경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은 얼마나 다양합니까?

※ 각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것 같다.

➌ 예수님은 성경을 어떻게 보셨을까요? 왜 그분의 성경관이 우리에게 중요합니까?

※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셨다. 그것은 우리가 성경을 봐야하는 표준이다.

➍ 예수님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자 역사적으로 진실한 기록으로 인정하셨다는 증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구약성경의 기록을 확실한 사실로 인용하시고 가르치신 것이다. 

➎ 구약성경을 자주 인용했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신약의 기자들은 구약성경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말씀으로 보았다. 

➏ 어떻게 하면 우리가 구약과 신약의 기별을 조화롭게 연구할 수 있을까요?

※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결론 : 예수님과 사도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인식했으며 일부가 아닌 전체적인 영감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성경을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과 실존했던 인물들에 대한 기록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은 대립되거나 모순되지 않고 조화롭게 일치됩니다.

 

 

4월 12일(일) 기록되었으되

 

예수님이 침례 요한에게 받은 침례는 구주의 공적인 사역의 시작점이 되었다. 이후에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셨고 인간적으로 가장 취약해진 상태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1. 마 4:1~11을 읽어보라. 사탄의 시험에 예수님은 어떻게 자신을 방어하셨는가? 이 일화로부터 우리는 성경에 대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마4:1~1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답: 예수님은 오직 기록된 성경 말씀으로 대답하셔서 자신을 지키시고 사탄을 이기셨다. 우리도 진리에 관하여서는 오직 성경 말씀으로 승리해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식욕으로 시험을 받으셨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반응하셨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 예수님은 돌이켜 생명의 말씀과 그것의 궁극적이고 거룩한 기원을 가리키셨다. 이런 방식으로 그분은 성경의 권위를 확증하셨다. 또 세상 왕국과 영광으로 시험을 받으셨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반응하셨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 눅 4:8 참고). 그리스도께서는 참예배란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키신다. 마지막으로 과시하고 우쭐대고 싶은 시험 앞에서 이렇게 반응하셨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마 4:7; 눅 4:12 참고).

세 번의 시험에서 예수님은 모두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대응하셨다. 즉 예수님은 사탄의 공격과 기만을 다루기 위해서 곧장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아가셨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성경만이 우리 신앙의 최종적인 표준이자 기초이다.

그렇다. 오직 성경이 원수의 공격에 대항하는 예수님의 방법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사탄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굴복시키셨다. 

그것은 견해나 정교하고 난해한 논증이 아니었으며, 개인적인 증오의 말도 아니었다. 대신 그것은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성경 말씀으로 대변되었다.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성경은 가장 높은 권위이자 가장 위대한 능력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분의 사역은 확고한 바탕을 가지고 시작되었으며 성경의 신뢰성 위에 세워져갔다.

 

<부가설명>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볼 수 없고, 아버지 하나님도 성령님도 볼 수 없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기록된 말씀 성경이다. 예수를 믿는 종교와 신앙은 오직 성경을 세워졌다.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7:24)라고 하셔서 신앙과 예수님 종교의 기초가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을 배우고 믿는 것이다. 우리의 믿는 것이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속히 버려야 한다. 그것을 고집하면 그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해석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그것은 성경의 종교외 신앙이 아닌 유사 예수교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 있는 기독교의 대부분이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교리와 신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역사적 전통과 철학과 신학적 해석을 교리와 신조에 섞었다. 그렇게 한 것은 바벨론이라고 한다. 재림교회는 정말로 오직 성경에 기초한 교리와 신조로 교인들을 가르쳐야 하고 신자들은 오직 성경에 의하여서 신앙을 확립해야 한다. 아멘.

 

교훈 :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성경의 권위와 능력에 의지하셨고 사탄의 시험과 공격에 오직 말씀으로 이기셨으며 성경의 권위를 바탕으로 사역을 시작하셨다.

 

 

4월 13일(월) 예수님과 율법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1. 마 5:17~20, 22:29, 23:2~3을 읽어보라. 이 문맥에서 예수님이 하시려는 말씀은 무엇인가?

[마5:17~20]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마23:2,3]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답: 율법은 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가르치셨고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순종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분에게는 성경의 권위와 타당성에 관하여 의심의 기미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분은 계속 성경을 거룩한 권위의 원천으로 언급하셨다. 그분은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성경과 그 교훈에 대한 지적인 지식만으로는 진리를 깨닫거나 그보다 더 중요한 진리이신 하나님을 알기에 부족하다고 가르치셨다.

 

2. 마 22:37~40에 따르면 모세의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관점은 무엇인가?

[마22:37~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답: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모세 율법의 대강령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관점은 율법의 내용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법관에게 주신 이 진술에서 예수님은 거의 1,500년 이전에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을 요약하신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어떻게 구약 성경을 강조하시며 그것을 왜 가장 높은 차원으로 옹호하셨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여기서 예수님이 새 계명을 주셨고, 그 결과 구약의 율법이 신약의 복음으로 대체되었다고 성급하게 결론짓는다. 하지만 사실 예수님이 가르치고 계시는 것은 구약의 율법에 기초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더 온전하게 드러내셨다. 그리고 십계명의 첫 네 계명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남은 여섯 계명은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강조한다고 요약하시면서 “온 율법과 선지자들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 22:40, 바른성경)고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구약 성경을 구성하는 율법서, 선지서, 문학서 등을 줄여서 지칭하는 “율법과 선지자”를 언급하심으로 구약 성경 전체를 높이셨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신 장본인이시다. 그러신 분이 세상에 사람 되어 오셔서 자신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하게 한 그 성경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 말씀의 기초하여 교훈하셨고 마귀가 시험할 때에도 구약성경을 중심으로 대답하셨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시고 은혜를 주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율벌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사망이 된 아담의 후손들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는데 그것을 폐한다고 하는 것은 생명의 길을 닫아버리는 것과 같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는 사실을 지적하셨다.(요5:39)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경’은 구약성경이다.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기록되기 전이 아닌가? 그때 구약성경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면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 누가 주장할 것인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구약 창세기 15:6에서 분명히 말했다.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설명하면서 창세기 15:6과 하박국 2:4을 본문으로 설명한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신약에서 처음으로 가르친 것이 아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성경은 폐할 수 없다.(요10:35) 성취되어서 이루어진 것은 이루어졌기 때문에 폐한 것이 아니고 이루어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교훈들은 아직도 생명의 길을 가르쳐주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폐할 수 없다.

 

교훈 :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새 계명으로 대체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요약하고 더 온전하게 드러내심으로 성경 전체를 높이셨다.

 

 

4월 14일(화) 예수님과 모든 성경

 

1. 눅 24:13~35, 44~45을 읽어보라. 제자들에게 복음의 기별을 가르치기 위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성경을 사용하셨는가?

[눅24:13~35, 44,45]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16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19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같이 하시니 29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31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답: 모든 성경이 예수님에 대하여 썼다고 가르치고 그것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확인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도록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후에 제자들은 혼돈과 의심에 빠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누가복음 24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두 번 나타나시는 장면을 본다. 첫 번째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명의 제자에게 나타나셨고, 그다음에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두 개의 분리된 일화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모든 것이 구약의 성취인지를 설명하셨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

그리고 24:44~45에서 다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고 하신 뒤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

“모든 성경”(눅 24:27)이라는 구체적인 언급을 주목하라. 이것은 뒷부분에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눅 24:44)이라는 표현으로 재강조되었다. 이것은 육화된 말씀(요 1:1~3, 14)이신 예수께서 어떻게 이 일들이 수백 년 전에 예언되었는지를 설명하시기 위해 성경의 권위에 의존하셨다는 사실을 확고히 한다. 성경의 총체성을 언급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본을 보이셨다. 즉 그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나아갈 때, 그들 역시 전 세계의 새로운 회심자들에게 이해와 능력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모든 성경을 자세히 설명해야 했다. 

또한 마 28:18~20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권위는 그분의 아버지와 삼위일체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셨고 그다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마 28:19~20). 예수님이 가르치고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그분의 가르침은 전적으로 성경을 기초로 한다. 예수님은 예언적인 말씀의 권위에 기초하여 오셨고, 성경 예언의 성취로서 아버지께 순종하셨다.

 

<부가설명> 성경은 기이한 책이다. 기록된 후로 변함이 없다. 3,500년 전에 쓴 모세오경이나, 

약 2,000년쯤 전에 쓴 신약성경이나 정말 오래된 책이다. 그런데 모든 시대에 적용되면서도 언제나 당대의 알맞고 과학적으로도 바른 내용을 보인다. 이에 비하여 과학서적들은 어떤가? 그것은 자주 변경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대조해 보면 성경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시는 창조주께서 계시와 영감을 주셔서 기록한 책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성경은 역사나 과학적 사실을 가르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닌데도 역사적 사건들도 확실하고 과학적 사실도 틀린 것이 없다. 특별히 예언, 구주가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아담의 모든 후손들을 구원하신다는 구속의 기별이나 역사의 종말까지 전개될 역사적 사건의 예언이나 그것이 역사에서 정확하게 성취되는 것으로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기원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하신 것은 경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나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을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감사한다. 성경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현재도 미래도 틀림없이 기록된 말씀대로 성취될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교훈 :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그분에 관한 일들이 예언의 성취임을 보여주시고 그들에게 모든 성경의 권위에 순종하라고 가르치셨다.

 

 

4월 15일(수) 예수님 그리고 성경의 기원과 역사

 

예수님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하다는 의미에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치셨다. 그 기원이 하나님께 있으므로 성경은 삶의 모든 측면을 위한 궁극적인 권위를 담고 있다.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일하시고 성경을 통하여 그분의 뜻을 인류에게 계시하신다.

예를 들어 마 19:4~5에서 예수님은 모세가 기록한 말씀을 인용하셨다. 그런데 그 말씀을 가지고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성경에 이르기를’이라고 하시지 않고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이라고 하심으로 창세기 기자가 기록한 것을 창조주의 말씀으로 돌렸다. 비록 그것이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은 여기서 그 말씀의 진술자로 간주되신다.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어보라. 예수님은 성경에 나오는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들을 어떻게 이해하셨는가?

 

마 12:3~4 - 다윗이 성소에 들어가서 진설병을 먹은 사건

막 10:6~8 -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됨

눅 4:25~27 - 엘리야와 엘리사가 각각 시돈 과부와 나아만 장군을 위해 사역

눅 11:51 - 아벨로부터 사가랴까지의 피에 대하여 언급하심

마 24:38 - 노아 홍수 때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장가 들고 시집을 감

 

답: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모두 역사적으로 있었던 실제 사건으로 이해하시고 인용하시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일관성 있게 구약의 백성과 장소, 사건들을 역사적인 진실로 다루셨다. 그분은 창세기 1~2장과 창세기 4장의 아벨, 진설병을 먹은 다윗, 또 여러 역사적인 인물들 가운데 엘리사를 언급하셨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옛 선지자들의 고난에 대해 말씀하셨다(마 5:12, 13:57, 23:34~36, 막 6:4).

경고의 기별을 전하시던 중에 예수님은 노아의 때를 이렇게 묘사하셨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8~39). 예수님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엄청난 조치를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언급하셨다는 증거는 충분하다. 

 

<부가설명>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 중에 역사책에는 전혀 기록이 없는 사건들이 많다. 노아 홍수 사건이나 바벨탑 사건, 소돔 고모라 사건, 앗수르 왕 사르곤(사20:1), 다니엘서에 나오는 벨사살 등등. 성경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이런 기록들을 지적하면서 성경의 기록이 허구라고 주장했다. 현대주의 신학자들은 그들이 신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들을 허구라고 선전했다. 그런데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여 사르곤, 벨사살 등, 인물들이 실제로 역사적으로 존재한 왕들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또 소돔 고모라 스보임 아드마 소알이라는 나라들이 사해 주위에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현대주의 자들은 요나서는 소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표적을 보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요나 사건을 예를 들면서 요나가 밤낮 사흘을 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주님이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다 역사적으로 실제로 있었던 사건으로 이해하셨다. 그 사건들을 인도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 아니신가? 그런 사건들을 기록하게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경의 기록들을 예수님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는 주님이 보여주신 이런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성경의 기록이 하나님의 진실한 말씀임을 십분 믿을 수 있다. 

 

교훈 : 예수님은 성경을 하나님이 하신 말씀으로 인용하셨고, 과거의 인물과 사건뿐 아니라 미래에 있을 심판도 역사적인 사건으로 언급하셨다.

 

 

4월 16일(목) 사도들과 성경

 

신약 성경의 기자들은 예수님이 하셨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성경에 접근하였다. 교리, 윤리, 예언 성취의 문제에서 구약 성경은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말과 행동 어디에서도 성경 일부의 권위나 진실성에 도전하는 경우를 단 한 번도 볼 수 없다.

다음의 성경절들을 보면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행 4:24~26 - 하나님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심

행 13:32~36 - 시편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을 예언의 성취로 설명함

롬 9:17 - 하나님이 바로에게 하신 말씀과 성경의 말을 동일시함

갈 3:8 - 이방인에게 전파되는 복음을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로 봄

 

답: 성경의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고 그대로 전하였다.

 

이 성경절들에서 성경이 하나님의 음성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주목하라. 사도행전 4장에서 사도들은 성령의 충만을 입기 직전에 베드로와 요한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시인하며 그분의 종 다윗을 통해 말씀하신 것으로 인해 소리를 높여 찬양한다. 즉 다윗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다. 행 13:32~36에서 바울도 다윗을 인용하며 다윗의 말을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좋은 소식”(우리말성경)이라고 간주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린다.

롬 9:27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있어야 하는 주어 자리에 ‘성경’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말한다.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라는 표현은 사실 “하나님이 바로에게 이르시되”로 바꿀 수 있다. 갈 3:8에서도 ‘하나님’이 있어야 하는 주어 자리에 ‘성경’이 사용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 자신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한결같이 구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하였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수도 없이 구약성경을 인용한다.

어떤 학자는 2,688회의 구체적인 인용의 목록을 작성했다. 이사야에서 400회, 시편에서 370회, 출애굽기에서 220회 등이다. 여기에 암시, 대주제, 소주제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할 것이다. 신약성경은 흔히 “기록되었으되”라는 문구로 시작하거나 구약성경의 예언을 인용하는 말씀으로 가득 차있다(마 2:5, 막 1:2, 7:6, 눅 2:23, 3:4, 롬 3:4, 8:36, 9:33, 고전 1:19, 갈 4:27, 벧전 1:16). 이 모든 것은 구약성경이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뒷받침하는 토대임을 확증한다.

 

<부가설명> 만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우리가 성경을 기초로 하여 예수를 믿는 신앙은 헛것이다. 성경은 도덕적 윤리적 교훈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런 것은 다 부수적인 것이다. 성경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구원의 주시며 생명이신 구주를 계시하는 책이다. 사람이 다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되었기 때문에 썩어짐의 종노릇을 한다. 그 썩는 모습이 윤리적 도덕적 부패상태이다. 이런 사람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성경을 주신 목적이다. 이 생명을 얻으면 더 이상 썩지 않게 된다. 그것이 도덕적 진선미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도덕고 윤리의 실상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거듭나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인격이 변화되는 것이다. 이것을 성품의 변화라고 한다.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님을 참으로 만나고 그분의 생명을 얻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된다. 생명의 향기를 풍기게 된다. 성경이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고 말씀을 따르는 삶으로 이런 경험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교훈 : 사도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음성과 동일시했고, 신약의 기자들이 광범위하게 인용한 구약 성경은 신약 성경이 가르치는 기별의 토대였다.

 

 

4월 17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시대의 소망>, 68~74 ‘유년시대’, 114~123 ‘시험’을 읽어보라.

“사람들은 자신을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말씀보다 지혜롭게 여긴다. 변함없는 기초에 그들의 말을 올려놓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증해보기보다 그들은 과학이나 자연에 대한 그들의 사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검증하고, 그것이 마치 과학적인 그들의 사상에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믿지 못할 것으로 폐기해 버린다”(엘렌 G. 화잇, Signs of the Times, 1884년 3월 27일, 1).

“그분의 말씀에 계시되었듯이 하나님의 지혜와 목적에 진정으로 친숙한 자들은 정신적인 힘을 소유한 남녀가 되며, 위대한 교육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유능한 일꾼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진리의 말씀을 주시며 우리 모두는 그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진리 곧 말씀을 제외한 성화란 없다. 이는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하는 얼마나 중요한 사실인가!”(엘렌 G. 화잇, Fundamentals of Christian Education, 43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예수님과 복음서 기자들 그리고 바울이 구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했다면, 오늘날 성경에 대한 현대의 견해들이 잘못된 이유와 우리가 그러한 주장 때문에 타락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 현대주의 자들의 견해는 인간 이성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위에 두는 루시퍼 정신이다. 그러므로 그런 주장은 듣지 않고 읽지 않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

 

➋ 현대의 많은 성경학자들은 6일간의 문자적인 창조를 거부하고, 대신 수백만 년간 진화가 진행되었다는 진화론을 수용합니다. 그들은 타락 이전의 죄 없는 아담의 상태, 전 세계적인 홍수, 아브라함의 역사적인 실존, 출애굽 기사, 예수님의 이적들, 그분의 육체적인 부활,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전에 선지자들이 미래에 대해 말한 예언을 거부합니다. 이를 보건대 사람들이 성경의 권위와 진실성을 의심하기 시작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런 사람들이 진리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그런 사람과 사귀는 신자들은 본이 되는 삶을 보여주면서 성경을 성령의 능력으로 증거하는 은혜를 간구해야 하지 않을까? 자기의 믿는 것을 생활로 나타내는 것보다 더 확실한 증언이 없을 것이다.

 

➌ 모든 성경이, 심지어 오늘날 우리에게 꼭 적용되지 않는 부분까지도 성령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현재 적용되거나 아니거나 그것이 적용되는 그 때에 필요하기 때문에 성령께서 감동하여 기록하게 하셨고, 깊이 살피면 의미상으로 모든 사대에 해당되는 사상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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