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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성경의 기원과 본질(질문, 대답, 설명) 0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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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0-04-04 02:20 조회3,2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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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성경의 기원과 본질

 

4월 11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4분

 

● 연구 범위 : 벧후1:19~21, 딤후 3:16~17, 신 18:18, 출 17:14, 요 1:14, 히 11:3, 6.

 

● 기억절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우리가 성경의 기원과 본질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은 우리의 삶과 교회 안에서 폭넓게 이뤄지는 성경의 역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은 계시와 영감의 과정을 이해하는 방식에 크게 좌우된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무엇보다 성경을 다룰 때 필요한 기본 지침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생물학 또는 사회학에서 사용되는 실험적인 방법으로 수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때 사용하는 도구를 가지고 물리학을 연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성경을 대하는 무신론적인 방법으로는 성경의 영적인 진리가 바르게 이해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내재되어 있는 신인(神人)적인 차원을 진지하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성경 연구에 필요한 것은 방법론적인 회의론 또는 의심이 아닌 믿음으로 성경에 다가가는 것이다. 이번 주 우리는 성경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성경의 기원과 본질에 대하여 몇 가지 기본적인 측면을 고찰하려고 한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성경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기자들에 의해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임을 이해한다. 

느끼기 : 성경을 통해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행하기 : 의심의 시각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기로 결심한다.

 

➋ 일반적인 서적을 이해할 때와 성경을 이해할 때 필요한 방법은 각각 어떻게 다를까요?

※ 이해를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한 것은 동일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을 때 바르게 이해하게 된다.

➌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인간의 언어로 옮겨졌을까요?(벧후 1:21, 딤후 3:16)

※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기록하여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➍ 왜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기록된 형태로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 그래야 보존되고 오래 전해지고 여러 사람들이 동시대에 볼 수 있다.

➎ 그대는 성경과 예수님의 성육신 사이에 어떤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 예수께서 사람이 되셨으나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신 것처럼 성경은 사람의 언어로 기록되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➏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을 어떤 마음과 태도로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연구해야 한다. 오직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결론 : 우리가 비평적인 시각을 가지고 성경을 문학적으로 또는 학문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와 영감의 과정을 거쳐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의 온전한 의미를 알려면 우리에게 성령의 도움과 믿음이 필요합니다.

 

 

4월 5일(일) 거룩한 계시인 성경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0~21).

 

1.벧후 1:19~21을 읽어보라. 베드로는 성경에 나오는 예언적인 기별의 기원에 관해서 자신의 확신을 어떻게 표현했는가?

[벧후1:19~21]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답: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다. 기원이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여타의 책과 같지 않다. 사도 베드로에 따르면 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으며 하나님께 기별을 받았다. 그것은 그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의 예언적인 기별은 “교묘히 만든 이야기”(벧후 1:16)를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진실하고 믿을 수 있다. 성경은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벧후 1:21)이다. 하나님은 계시의 과정 중에 일하셨고 선택하신 사람에게 그분의 뜻을 알리셨다.

하나님과 특정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언어의 소통은 성경의 필연적인 특징이다. 성경이 특별하고 거룩한 권위를 지닌 이유가 이 때문이며 우리도 성경을 해석할 때 그 신적인 요소를 참작해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것의 궁극적인 저자이시기 때문에 성경은 마땅히 성경(holy Scriptures, 거룩한 책들)이라고 불린다(롬 1:2, 딤후 3:15).

성경은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 주어졌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또한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 속에서 계시하신 것들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려면 우리에게도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도 베드로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견해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필요하다.

또한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암 3:7)다. 성경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는 “계시”라는 말은 어떤 것이 전에는 감춰져 있었지만 이제 공개되거나 밝혀져서 알려지고 드러나게 되었다는 의미를 표현한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공개 또는 계시가 필요하다.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죄인이기 때문에 그분의 뜻을 알려면 그분께 의지해야 한다.

 

<부가설명> 성경은 그 전체가 예언이다. 예언을 주로 豫言예언이라고 쓴다. 예자는 미리예자이다, 미리 말한 것이 예언이다. 그런데 성경의 예언들은 미리 말한 것뿐만 아니다. 선지자가 살고 있던 바로 그 시대의 사건과 일들도 말했고 과거의 사실들도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장래 일을 미리 말한 것으로만 생각하면 혼란할 수 있다. 예언이라는 히브리어 ‘네부아’는 ‘대신하여 말한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말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을 ‘네부아’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이기보다는 대언(代言)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런 뜻으로 전부가 ‘네부아’이다. ‘네부아’를 표현할 말이 한자로 예언(預言)이다. 이 預예는  ‘미리 예’도 되고 ‘맡길 예’도 된다. 하나님께서 맡겨준 말씀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언(豫言)’ 보다는 ‘예언(預言)’으로 쓰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그러나 한자를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예언(豫言)’이라고 쓰고 있으니, 이렇게 써도 그 뜻을 바르게 아는 것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을 미리 말하게 하신 것은 ‘예언(豫言)’이다. 다니엘서 계시록 같은 책은 다 예언(豫言)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이 교과에서 말하는 것은 ‘예언(豫言)’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예언에 대한 넓은 이해를 위하여 두 가지 다 이야기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 말씀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생각이나 세상의 학문으로 해석하지 않아햐 한다는 것이다. 재림성도들에게는 예언의 신의 증언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없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특권이 있으니 감사할 일이다. 

 

교훈 :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이기 때문에 그 뜻을 알려면 우리에게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4월 6일(월) 영감의 과정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하나님은 언어라는 매개체를 사용하여 자신의 뜻을 인류에게 나타내시기 때문에 거룩한 계시의 기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미 보았듯이 성경은 하나님이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신 진리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성령은 인간 도구들을 통해서 그 기별을 전달하고 간수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에서 본질적인 일치를 기대할 수 있는 이유이다(예를 들어 창 3:14~15과 계 12:17을 비교해보라).

 

1. 벧후 1:21, 딤후 3:16~17, 신 18:18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들은 성경의 영감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신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답: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선지자는 그것을 기록하였다.

 

성경 전체는 하늘의 영감을 받았다. 물론 모든 부분이 똑같이 읽기에 흥미롭거나 오늘날 우리에게 꼭 적용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 절기들에 관한 부분은 영감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성경 전체로부터, 즉 우리가 읽거나 이해하기에 그다지 쉽지 않고 오늘날 구체적으로 적용이 가능하지 않은 부분에서도 배울 필요가 있다. 

또한 성경 안에서 모든 요소가 직접적이거나 초자연적으로 계시된 것은 아니다. 때로 하나님은 사물들을 주의 깊게 연구하거나 기존의 다른 문서들을 활용하는 성경의 기자들을 사용하여 그분의 기별을 전하신다(수 10:13, 눅 1:1~3 참고).

그럴지라도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되었다(딤후 3:16). 그래서 바울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고 진술했다.

 

<부가설명>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인용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 뱀의 말도 있고, 가인의 말도 있고 발람의 말도 있고 사탄의 말도 있다. 그런데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 또 설교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설교할 때나 글을 쓸 때에는 성경에 나온 구체적인 사례를 들 때에는 ‘뱀이 말하기를’, ‘사탄이 여호하께 말하기를’, ‘베드로가 말하기를’, 등등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설교하려고 성경을 펴고 읽을 때에는 왜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가? 이유는 그 모든 것을 기록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뱀이 말했든지, 마귀가 말했든지, 사람들이 말했든지 그것들이 구원사업에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감과 계시로 알게 하시고 그것을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통칭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그런 말을 한 다양한 존재들이 있다. 그들이 말하거나 행동한 모든 것을 성경에 기록하라고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절기를 예를 들어 오늘날 지킬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성소에 대한 자세한 규정도 오늘날 우리가 지킬 필요가 없다. 이유는 그것들이 다 예수께서 하실 일을 상징하는 예언적 사물들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그 모든 예언적 표상들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그것을 지키면 예수께서 성취하신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또 그런 예식들은 우리가 하지 않지만 그 의미는 지금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교훈 : 성경 전체는 성령의 영감으로 주어졌으며 그 내용이 때로 이해하기 어렵고 오늘날 적용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 전체로부터 교훈을 받아야 한다.

 

 

4월 7일(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출 34:27).

 

1. 여호와께서는 왜 모세로 하여금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읽게 하신 것이 아니라 기록하라고 하셨는가? 기록된 말씀의 뚜렷한 장점은 무엇인가?

 

답: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는 것이 가장 용이하고 합당하기 때문이다. 

 

친히 말씀하시고 또한 인간의 언어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택한 백성으로 하여금 신뢰할 만한 방법으로 하늘의 계시와 영감을 받은 진리 또는 사상을 전하게 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이 처음부터 성경의 기자들에게 그분의 지시사항과 계시들을 기록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당연하다.

 

2. 다음의 성경절들은 기록된 계시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

출 17:14, 24:4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책에 기록하라.

수 24:26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율법책에 기록하라.

렘 30:2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선지자의 책에 기록하라.

계 1:11, 19, 21:5, 22:18~19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두루마리에 기록하라.

하나님은 왜 그분의 계시와 기별을 기록하라고 명령하셨는가? 우리가 그 말씀을 너무 쉽게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기록된 말씀인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과 그분의 뜻으로 인도하는 항구적인 기준점이다. 기록된 문서는 일반적으로 더욱 잘 보존되며 반복적으로 진술되어야 하는 구두(口頭) 기별보다 훨씬 신뢰할 만하다. 

기록된 말씀은 계속 필사될 수 있기 때문에 구두로 전달할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에게 이를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한 번에 한 장소에서 제한된 수의 사람들에게만 말할 수 있지만 기록된 것은 여러 지역과 대륙에 거주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을 뿐더러 이후에 수많은 세대에게까지 복이 될 수 있다. 또한 스스로 읽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기록된 문서를 읽어줄 수 있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굳이 부가설명을 쓸 필요가 없이 저자가 너무나 분명하게 말했다. 그런데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인에게 맡겼다.(롬3:1) 신약성경은 교회에 맡겼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민족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다. 모든 민족이 히브리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민족이 헬라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바벨탑을 쌓기 전에는 언어가 하나였다. 그러나 바벨탑을 쌓는 일로 언어가 혼잡하게 되었고 많은 방언이 생겼다. 그들은 각각 자기들은 방언으로 말하고 그들의 문자로 글을 읽는다. 오순절에 외국어를 모르는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오셔서 여러 방언으로 말하게 하여 15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각각 자기 언어로 사도들의 기별을 듣게 하셨다. 성령께서 각 벙온의 통역관이 되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 사실에 따라 신약기자들은 “번역하면”이라는 말고 함께 성경에 번역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이것은 각각 자기 방언으로 성경을 읽고 듣도록 하라는 성령의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읽고 말하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교훈 : 하나님은 그분의 계시와 기별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하게 하셔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에게 그분의 뜻이 전달되게 하신다.

 

 

4월 8일(수) 그리스도와 성경 사이의 유사성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요 1:14, 2:22, 8:31~32, 17:17을 읽어보라. 예수님, 육화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 그리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어떤 유사성이 보이는가?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2: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요8: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답: 예수님은 사람의 몸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사신 것처럼, 성경은 사람의 언어에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된 내용이 있다.

 

육화된 하나님의 말씀(예수님)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성경)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여 여자에게서 나신 것처럼, 성경도 초자연적인 기원에서 비롯되어 인간을 통해 전달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인간이 되셨다. 그분은 한정된 시간 동안 한정된 장소에서 사셨다. 그렇다고 이 사실이 그분의 신성을 무력화시키거나 예수님을 역사적으로 상대적이게 하지는 않는다. 그분은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과 온 세상을 위한 유일하신 구세주이시다(행 4:12 참고). 마찬가지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도 특정 시대에 특정한 문화 속에서 주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성경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대신 그것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자신을 계시하실 때, 하나님은 인간의 차원까지 내려오셨다. 예수님의 인성은 모든 징후의 나약함과 4천 년 동안 진행된 타락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그분은 죄가 없으셨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언어도 사람의 언어이다. 그것은 아무도 말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완전하고 초자연적인 언어가 아니다. 물론 모든 언어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인류의 창조주이시자 인간의 언어의 창조주께서는 우리를 호도하는 일 없이 온전하게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인류에게 그분의 뜻을 전달하실 수 있다.

물론 각각의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은 같은 존재가 아니다. 성경은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책이 아니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다. 우리가 성경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안에 선포된 구세주를 경배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신적인 요소와 인간적인 요소 사이의 특별한 불가분(不可分)의 결합체이다.

 

<부가설명> 오늘의 공부도 부가설명이 필요없도록 저자가 명확하게 잘 설명했다. 그런데 나의 생각에 예수님은 그 몸으로 동시에 유대땅과 한국땅에 계실 수는 없었지만 하시려고 하면 유대땅에 계시면서도 한국땅의 모든 것을 아실 수 있으신 분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다. 계시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이다. 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23:24) 예수님도 그 몸으로 천지에 충만하실 수 없었을는지 모르지만 그분은 천지에 충만한 것을 다 보시고 아실 수 있엇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지 않았을까? 성경은 예수님의 이런 면보다는 제약이 더 많다. 번역해서 각 방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기능을 발휘한다. 선교사들은 선교지에 가면 그들의 말로 성경번역하는 것을 아주 중요한 선교방법으로 알았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선교역사에서 선교사가 도착하기 전에 자기 말로 성경이 번역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언더우드와 아펜셀라가 처음으로 한국에 선교하러 왔을 때 일본에서 이수정 역 마가복음을 보고 놀랐고, 그것은 많이 준비해서 제물포 항에 내려서 선교활동을 하다보니 이미 한국에 서상륜 로스 역 누가복음이 전파되어 있는 것을 보고 또 놀랐다. 우리 민족 하나님께서 크게 복을 주신 것이 확실하지 않는가?

 

교훈 :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하나가 된 것처럼 성경도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4월 9일(목) 믿음으로 성경을 이해함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히 11:3).

 

1. 히 11:3, 6을 읽어보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믿음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가?

[히11:3,6]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답: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다.

 

모든 진실한 배움은 믿음이라는 배경 속에서 일어난다. 아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자녀의 절대적인 믿음이다. 자녀들이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삶과 사랑의 면들을 배우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신뢰의 관계이다. 지식과 이해는 사랑과 신뢰의 관계로부터 자란다.

같은 맥락에서 훌륭한 연주자는 악기를 연주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통달했을 때뿐 아니라 그 음악과 작곡가와 악기에 대한 애정이 있을 때 한 편의 음악을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의심의 태도와 방법론적인 회의의 시각이 아니라 애정과 믿음의 정신으로 접근할 때에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히 11:6)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성경을 단지 인간의 저작물로 보기보다는 믿음으로 그것의 초자연적인 기원을 인정하는 접근 방식이 필수적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기본 교리 제1조는 성경의 초자연적인 기원을 이러한 통찰을 포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경, 곧 신약과 구약은 신적 영감에 의해 주어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대로 말하고 기록한 것이다.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인간에게 주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무오류(絶對無誤謬)의 계시이다. 성경은 품성의 표준이요 체험의 시금석이며, 교리들에 대한 권위 있는 계시자요, 역사 속에서 활약하시는 하나님의 행동들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이다”(시 119:105, 잠 30:5~6, 사 8:20, 요 17:17, 살전 2:13, 딤후 3:16~17, 히 4:12, 벧후 1:20~21).

 

<부가설명> ‘믿음은 지식에 선행한다.’ 이 말은 중세의 신학자 안셀무스의 말이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가 믿음을 기초하여 입력되고 이해된 것들이다. 책의 기록을 믿지 않으면 그 내용이 지식으로 쌓이지 않는다. 사람을 믿지 않으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거짓으로 들리기 때문에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녀가 부모를 믿지 않으면 부모가 가르치는 것이 지식이 될 수 없다. 학생들이 교사와 교과서의 내용을 믿지 않으면 학습이 되지 않는다. 믿음은 인간 생존과 지식과 경험의 가장 기초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도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야 오죽하겠는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성경이 믿어지지 않고 그 말씀도 지식이 되지도 않고 깨달을 수도 없다. 먼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믿어야 한다. 그리고 연구해보라. 성경처럼 질서정연한 논리적 사실이 있는가? 얼마나 과학적인지 모른다. 예언은 역사에서 성취되어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하고 성령의 역사로 사람을 변화시키므로 우리의 경험으로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된다. 믿음으로 말씀 연구에 접근하자. 선지자의 증언을 믿음으로 참고하자. 그러면 말씀의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열리는 희열을 맛볼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인간의 기록을 분석하듯이 그것을 의심의 시각으로 보기보다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의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4월 10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성경은 우리의 신앙에 매우 필수적이지만 우리가 성경을 읽고 연구할 때에 성령이 우리 마음과 정신에 미치는 감화가 없다면 성경 자체만으로는 우리에게 영적으로 아무 가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인간에게 위탁하셨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권위 있고 확실한 계시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은 품성의 표준이요, 교리의 계시자요, 체험의 시금석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계시해 주신 사실이 성령의 끊임없는 임재(臨在)와 지도를 불필요하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 구주께서 성령을 허락하신 것은 그분의 종들에게 말씀을 바로 이해시켜 주고, 그 교훈을 밝히 알고 실행하게 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므로 성령의 교훈이 성경의 교훈과 반대될 수는 없다”(각 시대의 대쟁투, 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계시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우리에게는 계시가 필요합니까?

※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을 모르고 그분이 하시는 일도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그분이 하는 일도 계시로 가르쳐주시고 구원의 복음도 계시로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알게 된다.

 

➋ 하나님은 어떻게 자신을 계시하십니까? 하나님은 자신에 관한 것을 계시할 때 여러 수단을 사용하십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자연을 통해 그렇게 하시고, 특별한 방법으로는 꿈(단 7:1), 환상(창 15:1), 징조(왕상 18:24, 38)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히 1:1~2)를 통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대에게 개인적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런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해 보십시오.

※ 오직 성경을 깨닫게 하므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 

 

➌ 어떤 성경학자들은 성경의 여러 교훈을 단지 신화로 간주하고 배격합니다. 창조 기사, 아담과 하와의 실존, 출애굽, 다니엘의 일화 등은 그들이 영적인 교훈을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는 구약의 수많은 가르침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재단할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와 같은 태도는 얼마나 위험한 것입니까?

※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분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고 지혜있는 자리에 두는 것이다. 

 

➍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성경을 통해 계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의 뜻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에 우리의 삶과 행동을 통해 어떤 종류의 하나님을 보게 될까요?

※ 각각 대답해 보자. 우리를 보고 정말 사랑과 은혜와 구원의 하나님을 보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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