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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자랑에서 겸손으로(질문, 대답, 설명)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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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0-01-25 05:01 조회3,8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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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자랑에서 겸손으로

 

2월 1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55분

 

● 연구 범위 : 단 4:1~33, 잠 14:31, 왕하 20:2~5, 욘 3:10, 단 4:34~37, 빌 2:1~11.

 

● 기억절 : “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단 4:3).

 

교만은 최초의 죄라고 불린다. 그것은 하늘 궁정에 있었던 천사 루시퍼(루스벨)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생겼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겔 28:17).

자만심은 루시퍼를 타락으로 이끌었다. 그는 자만심을 인간의 마음에 심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고 파멸의 길로 내려가게 이끌었다. 우리는 모두 타락한 존재이며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은사와 우리가 그 은사들을 통해 성취한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모든 일에 겸손해야 한다. 어떻게 감히 자긍하고 뽐내며 오만하게 굴 수 있겠는가?

그러나 느부갓네살이 겸손의 중요성을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풀무 속에 있던 신의 아들을 보았음에도 그의 삶의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의 왕위를 거두시고 그를 들짐승과 함께 살게 하신 뒤에야 그는 비로소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삶과 인정하는 삶의 차이점 중 하나가 교만과 겸손인 것을 깨닫는다.

느끼기 : 그분을 알고 영접할 수 있는 기회를 모든 사람에게 거듭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행하기 : 작은 일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잊지 말고 겸손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그분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한다.

 

➋ 느부갓네살은 개인의 앞날에 대해서 어떤 꿈을 꾸었습니까?

※ 그가 사람 사이에서 쫓겨나서 짐승과 같이 지낼 것에 대한 꿈을 꾸었다.

➌ 다니엘의 해석과 경고에 따르면 느부갓네살이 시련을 겪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권세와 영광을 과시하는 교만이다.

➍ 느부갓네살의 정신이 돌아오기 이전과 이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그분의 뜻을 따른 것이다. 

 

결론 : 느부갓네살이 들짐승처럼 생활했던 경험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 삶의 실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는 줄 알아야 하며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을 영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겸손히 그분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1월 26일(일) 이는 큰 성 바벨론이 아니던가?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단 4:30~31).

 

1. 단 4:1~33을 읽어보라. 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왜 그런 일이 생겼는가?

[단4:1~33] 27 그런즉 왕이여 나의 간하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였느니라 28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열 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새 30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31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가로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32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니 33 그 동시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

 

답: (1~26을 성경을 펴서 읽어보라) 느부갓네살은 자기의 업적을 자랑할 때에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같이 되어 짐승 같은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 두 번째 꿈을 주셨다. 이번에는 꿈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바벨론 박사들은 이번에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했다. 왕은 다니엘을 불러 꿈을 해석하게 했다. 꿈속에서 왕은 하늘에 미칠 만한 큰 나무를 보았다. 그때 하늘의 한 존재가 그 나무를 베어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땅에 남은 그루터기와 뿌리는 하늘의 이슬에 젖게 될 것이었다. 그 꿈에서 느부갓네살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그 천사의 말이었다. “그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단 4:16). 그 꿈의 심각성을 깨달은 다니엘은 그 꿈이 왕의 대적들에게 적용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소망을 정중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꿈에 담긴 기별에 따르면 그것은 왕을 가리키고 있음을 언급했다.

성경에서 나무는 흔히 왕, 민족 또는 제국을 상징한다(겔 17장, 31장, 호 14장, 슥 11:1~2, 눅 23:31). 따라서 큰 나무는 오만한 왕을 상징하기에 알맞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 통치권과 권력을 주셨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자신이 소유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2. 단 4:30을 자세히 보라. 왕의 말은 그가 아직도 하나님이 주신 경고를 간파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가?

[단4:30]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답: 왕이 바벨론 왕국을 자기 능력과 권세로 건설했고 자기 위엄과 영광을 나타냈다고 했다. 

 

교만이 매우 위험한 이유는 우리가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잊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잊고 있는 한 우리는 영적인 위험 지대 위에 서 있는 셈이다.

 

<부가설명> 성경은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했다.(시49:20) 이 말씀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다니엘서 4장의 느부갓네살에 임한 사건이다. 그는 참으로 존귀한 왕이었고 능력 있는 군주였다. 그는 아시리아를 정복하고 주위의 강국들을 굴복시키고 바벨론 왕국을 당시 세계에서 최강대국이 되게 했다. 그것이 모두 자기 능력으로 이룬 것으로 자랑한 것이다. 인간의 안목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이시며 인간의 존재와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눈에는 그런 마음과 태도는 여호와를 무시하는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평민도 아니고 통치자이다. 그는 유대 나라를 멸망시킨 장본인이다. 유대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나라이다. 느부갓네살이 이런 사상을 가지는 동안 유대 민족과 그들의 하나님을 경멸하는 삶이 될 것이며, 창조주 앞에서 기고만장할 것이다. 종래 그는 멸망할 것이다.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다목적으로 느부갓네살을 교육시켰다. 그가 2장과 3장의 교육을 제대로 깨닫고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이다. 

  이 사건은 인류의 현재를 나타내는 사건도 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이 사망의 존재로 타락하게 되면서 창조주를 잊어버리고 인간의 존재를 아메바라고 하는 미생물로부터 진화해서 유인원이 되고 마침내 지금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창조주를 알지 못하는 인간은 결국 멸망하는 짐승이 된다는 것을 실감나게 드러내는 사건이다. 참 존귀하게 창조된 인간이 짐승의 자리로 떨어진 것이다. 영리한 짐승이라서 영리하지 못한 짐승들은 결코 할 수 없는 못된 짓을 다 하는 존재가 되지 않았는가?

 

교훈 :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에게 주신 두 번째 꿈은 그의 교만에 대한 경고였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1월 27일(월) 선지자의 경고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단 4:27).

 

1. 단 4:27을 읽어보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경고 외에 다니엘은 왕에게 무엇을 행하라고 말했으며 그렇게 조언한 이유는 무엇인가?(잠 14:31 참고)

[단4:27]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답: 공의를 행하여 죄 사함을 받으라고 권고했다. 

 

다니엘은 꿈을 해석했을 뿐 아니라 느부갓네살이 현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까지 제시하였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건설이라는 대규모 사업을 진행했다. 수로를 갖춘 정원들과 수백 개의 신전 그리고 여러 건설 계획은 그 도시를 고대 세계의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되게 했다. 그러나 그 같은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대부분 노예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빈민들을 간과하는 정책을 통해 이룩되었다. 게다가 제국의 부는 왕과 그의 측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결국 느부갓네살은 자만하여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더러 빈궁한 자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하나님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보이는 특별한 관심을 고려한다면 다니엘이 왕 앞에서 여러 죄악 중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는 죄악을 지적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느부갓네살에게 주어진 기별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죄에 대해 자주 경고하였다. 사실 느부갓네살 왕의 퇴출을 이끈 죄악 중 가장 두드러진 죄가 바로 궁핍한 자들에 대한 소홀함이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긍휼은 기독교 정신의 가장 훌륭한 표현 방식이다. 반대로 가난한 자들에 대한 착취와 소홀함은 하나님께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다. 궁핍한 자들을 돌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우리는 단지 그분의 청지기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우리의 소유로 다른 이들을 섬김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물질적인 소유의 가치와 기능을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권이다. 느부갓네살은 이 점에서 실패하였고, 우리도 우리의 업적에 대한 하나님의 최상권을 인정하고 궁핍한 자들을 도움으로써 그러한 우리의 인식을 나타내지 않는 한 똑같은 실패의 길을 걸을 위험이 있다.

 

<부가설명>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권력을 잡은 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마20:25) 세상의 집권자들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다. 그들은 백성을 마음대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며 자기들의 호화로움과 평안을 누리기 위하여 착취한다. 민주주의 나라에도 그렇고 공산주의 나라도 그렇다. 독재국가야 어떻겠는가? 고대 왕국들은 다 독재국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느부갓네살의 바벨론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것은 다 창조주를 외면하는 행태들이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잠14:31)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을 화려하게 꾸미기 위하여 동원된 가난한 백성들을 착취했다면 그는 창조주를 멸시하는 일을 한 것이다. 

  재림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구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가능한 최선을 다하는 정신을 나타내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가 구제대상이 되는 가난한 자라고 생각하는 재림교인이 있다면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면서 구제하는 삶을 실천하면 사르밧 과부의 가루단지와 기름병을 항상 채우신 주님의 은혜를 맛보지 않을까?

 

교훈 : 바벨론의 화려함 이면에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착취와 외면이 있었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이러한 잘못을 시정하도록 경고를 받았다.

 

 

1월 28일(화) 지극히 높으신 자가 다스리시며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단 4:31~32).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라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수그러들 줄 모르는 느부갓네살의 자만심 때문에 결국 하늘의 선고가 집행되었다(단 4:28~33). 왕이 궁정을 거닐면서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자찬하는 순간 그의 정신적인 기능에 문제가 발생했고 그는 왕궁에서 축출되었다. 그는 병리학상으로 낭광병(狼狂病 : 자신을 이리라고 여기는 정신병) 또는 동물화망상이라고 불리는 정신 현상을 경험했던 것 같다. 그런 상태가 되면 환자는 동물처럼 행동한다. 근대에 이르러 이런 질환은 종족불쾌증(species dysphoria)이라고 불렸다. 자신의 몸이 다른 종의 육체를 가졌다는 느낌은 결국 동물이 되고 싶은 욕망으로 발전한다.

 

1. 왕하 20:2~5, 욘 3:10, 렘 18:7~8을 읽어보라. 이 말씀들은 왕이 징벌을 피할 수 있었던 기회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왕하20:2~5]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욘3: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렘18:7,8]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8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답: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불행히도 느부갓네살은 고달픈 길을 경험해야 했다. 왕권이 부여되어 있는 동안 그는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인식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왕위를 거두고 들짐승과 살게 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전적인 의존성을 인정할 기회를 주셨다. 사실 하나님이 그 오만한 왕에게 가르치시고자 했던 궁극적인 교훈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단 4:26) 깨닫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늘의 선포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듯이 왕에게 임한 심판에는 더 큰 목적이 있었다. 즉, “그 목적은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들의 왕국에서 다스리시고 자기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사람들 중에서 가장 비천한 자를 그것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산 자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단 4:17, 킹제임스흠정역).

다시 말해서 느부갓네살에게 적용된 그 징계는 우리 모두에게도 교훈이 되어야 한다. 우리도 “산 자들” 중에 포함되기 때문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중심 교훈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가설명> 회개의 핵심은 자기의 도덕적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잘못하는 것은 현세에 사는 사람들에게 누구에게나 닥치는 경험이다. 아무리 공자라도 석가모니라도 다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저지른 허물이 하나도 없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그들은 범부들보다 그런 허물을 적게 범했다는 것일 뿐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아담의 후손으로 출생한 모든 사람들은 생래적으로 창조주를 기억하지 못한다. 태어난 아이가 자기부모를 당장 기억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의식이 들면 자기 부모를 기억하고 순종하고 공경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효자라는 지탄을 받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도 합당한 예의를 지켜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량자라는 지탄을 받게 된다. 그런데 창조주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러니까 당연히 경배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죄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이것을 회개해야 한다. 즉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겠다고 진정으로 고백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며 참된 회개이다. 느부갓네살을 이런 경험을 부인했다. 다니엘서 2,3장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수행하지 않고 자기 권위와 영광을 선전했다. 그런 영광과 권위의 배후에는 착취와 포학이 있었다. 하나님이 없는 군주의 통상적 모습이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7)고 하셨다. 

 

교훈 : 느부갓네살은 왕위를 뺏기고 들짐승처럼 사는 경험 후에 하나님이 인간 나라들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모두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1월 29일(수) 하늘을 향해 눈을 듦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단 4:34).

 

1. 단 4:34~37을 읽어보라. 왕의 상황이 어떻게, 왜 바뀌었는가?

[단4:34~37]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로 이르리로다 35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36 그 동시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조회하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입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답: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진정으로 깨닫고 회개 고백하였을 때 회복되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이 이상한 질병에 걸리게 하셨지만 결국에는 그를 회복시켜서 제정신이 들게 하셨다. 흥미롭게도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7년이 지난 뒤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병든 왕이 하늘을 향해 눈을 들었다(단 4:34).

“7년간 느부갓네살은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놀라움이 되었다. 7년 동안 그는 온 세상 앞에 천하게 되었다. 그 후에 그의 이성이 회복되었고 겸손히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기를 징벌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였다. 그는 자신의 죄악을 인정했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회복된 것을 대중 앞에 선언하였다”(선지자와 왕, 520).

하늘을 향해 눈을 들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지력이 돌아오자마자 왕은 자신이 이러한 교훈을 배웠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 일화는 느부갓네살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자비에 관한 것이다. 왕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생명의 주로 영접할 수 있는 기회를 세 번이나 놓쳤다. 네 명의 유다 포로들의 특출난 지혜를 보았을 때 첫 번째 기회가 있었다(단 1장). 그리고 다니엘이 꿈을 해석해 주었을 때 두 번째 기회가 있었다(단 2장). 그리고 세 히브리인이 풀무불에서 구조되었을 때 세 번째 기회가 있었다(단 3장). 그런 구원을 목격하고도 겸손해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봐야 한단 말인가? 왕의 그런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네 번째 기회를 주셨고 마침내 그의 마음을 얻고 그를 다시 왕위에 복귀시키셨다(단 4장). 느부갓네살의 경우가 예증하듯이 하나님은 우리와 그분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거듭 기회를 주신다. 수백 년 후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우리는 이 일화를 통해서 그러한 진리의 실제적인 사례를 본다.

 

<부가설명>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분의 인격적 피조물들이 다 영원한 생명으로 회복되기를 원하신다. 아담이 생명에서 사망으로 떨어졌을 때 즉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할 것이라고 구원의 소망을 주시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셔서 구주가 고난과 희생으로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실 것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으로 출생한 어떤 사람도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사람도 다 이 은혜를 누릴 수 있다. 느부갓네살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종국에 이 은혜를 받아들였다. 4번의 기회에서 결국 하나님을 인정하고 굴복했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이런 기회가 네 번만 오는 것이 아니다. 수없이 많이 온다. 사람이 교만하고 자기 의뢰를 하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다. 오늘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기회가 닿아있다. 먼저 이 기회를 잡아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을 설명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끝까지 깨닫지 못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하나님께서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도록 하자.

 

교훈 : 느부갓네살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셨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그분을 알고 영접할 수 있는 기회를 거듭하여 주신다.

 

 

1월 30일(목) 겸손하게 감사해 하는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단 4:37).

 

1. 회개한 왕은 하나님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같이 여기”(단 4:35)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문맥을 고려했을 때 얼마나 중요한 요점인가?

 

답: 하나님 없이는 인생이 무(無)라는 것을 깨달은 고백이다. 

 

느부갓네살이 정말 참하나님을 영접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는 다니엘서 4장에 삽입되어 있는 서신의 저자가 느부갓네살이었다는 사실에서 4가지 주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사실 이 장의 대부분은 왕이 그의 광활한 제국 내에 배포했던 서신의 사본처럼 보인다. 이 서신에서 왕은 자신의 교만함과 정신병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에 개입하셨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한다. 고대 왕조들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사실들을 기록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의 모든 왕조의 기록은 왕을 칭송한다. 따라서 자신의 교만함과 동물과 같은 행동을 인정했다는 것은 진정한 회개를 가리킨다. 게다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최상권을 겸손하게 고백하는 서신을 기록함으로써 왕은 일종의 전도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경험하고 참하나님께 배운 것을 자신만 간직하고 있을 수 없었다. 우리는 왕의 기도와 찬양 속에서 그가 겪은 경험의 실제성을 볼 수 있다(단 4:34~37).

왕은 이제 새로운 가치 체계를 가지고 인간의 권세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감사어린 기도를 통해서 왕은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의 권세를 극찬하며 그분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같이 여기”(단 4:35)심을 인정했다. 즉 인간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다. 다니엘서에서 묘사하는 느부갓네살의 마지막 모습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에게 교만함에 대해 경고하는 겸손과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한 왕이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기 위해 오늘날에도 계속 일하신다. 사람이 얼마나 교만하고 죄가 많든지와 상관없이 그분에게는 반역적인 죄인들을 하늘의 자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긍휼과 능력이 있다.

 

<부가설명> 화요일 부가설명에 썼는데, 죄를 도덕에 표준을 두고 이해하면 거기에는 사람의 행위가 반드시 들어간다. 행위가 도덕적으로 허물이 없으면 죄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죄가 없기 때문에 죽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 자기의 도덕적 행동의 완전한 것 때문에 죽지 않고 영생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에녹이나 엘리야가 죽지 않고 승천한 것은 그들의 도덕적 삶이 완전했기 때문이 아니다. 믿음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히11:5) 믿음이라는 것은 자기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자기의 존재와 생명이 오직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기 존재와 생명은 창조주로부터 왔고 유지된다는 것을 진정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 겸손이다. 느부갓네살이 겸손하게 된 것은 이것을 시인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게 된 것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습2:3) 여호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것이 겸손이다. 그분의 규례를 지킨다는 것은 그분이 자기 존재와 생명의 주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믿을 때 나타나는 행동이다. 느부갓네살이 이런 자리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참으로 성경적 겸손을 지닌 생활인가? 

 

교훈 :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하늘의 참하나님을 찬양함으로써 바벨론의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회심을 겸손하게 고백하였다. 

 

 

1월 31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한때 교만하던 군주는 겸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압제적이요 거만하던 통치자가 현명하고 자비심이 많은 왕이 되었다. 하늘의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독하였던 그가 이제 지극히 높으신 이의 권세를 인정하였고 여호와께 대한 경외심과 백성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고자 열렬히 노력하였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의 견책하에 느부갓네살은 마침내 모든 통치자가 배울 필요가 있는 교훈, 곧 참된 위대함은 참된 인자함에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 그는 여호와를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단 4:37)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로 하여금 당신을 찬양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이제 성취되었다.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와 권위를 공중 앞에서 인정한 그의 공적인 성명은 성경의 역사에 기록된 그의 마지막 행적이었다”(선지자와 왕, 52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교만은 온갖 해악을 낳는다. 그것은 완전히 하나님을 거역하는 정신 상태이다. 지나친 과장으로 보이는가?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 숙고해보라.… 사람은 자신이 교만할수록 다른 사람이 교만한 것을 참지 못한다. 사실 그대가 얼마나 교만한지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누군가 그대를 무시하거나 인정하기를 거부할 때, 또는 그대의 일에 참견하거나 그대를 가르치려 들거나 으스댈 때, 그대가 그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의 교만은 다른 사람의 교만과 경쟁 중에 있다. 내가 잔치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주인공이 되면 짜증이 난다. 같은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양보란 없는 법이다.”—C. S. Lewis, Mere Christianity (New York: Touchstone, 1996), p. 110. 위의 글은 그대의 교만함을 깨닫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 교만을 찾는 아주 확실한 길을 제시한 글이다.

 

➋ 앞선 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니엘서 4장의 주제도 역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것이 꼭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주제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런 중대한 진리를 이해하는 데 안식일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자신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안식일은 창조주를 기억하고 경배하는 창조주께서 주신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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