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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4기 11과 물러난 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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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19-12-09 10:34 조회2,1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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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범위>

13:1~9, 23:3~6, 13:10~14, 18:21~24, 13:15~22, 5:5~16.

 

<핵심>

 

백성들의 신앙회복을 위한 결의는 조만간에 무너져버렸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지도력에 협력하여 무너져버린 것들을 다시 일으키게 되었다. 우리의 신앙에도 다시가 필요하다.

*핵심어 : 다시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

결심을 끝까지 실천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면?

 

.1. 13:4~6에서 ()제사장 엘리아십은 왜 도비야를 위해 성전에 큰방을 갖추어줬을까?

2. 느헤미야는 이러한 불법을 어떻게 처리했는가?(13:8~9)

 

.1. 레위인들이 도망갔다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13:10)

2.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13:11~13)

3.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느슨해진 신앙을 다시 개혁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1. 십일조 제도가 오늘날에도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1. 안식일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13:15~16)

2. 안식일이 즐거운 날이 되려면?

 

<적용, 결심>

 

이 주에 배운 교훈 중에 내가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하겠는가?

 

<답을 위한 도움>

 

.1.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

 

이 일은 느헤미야가 바사로 되돌아가 있는 동안 이루어졌는데, 이 것은 용납될 수 없는 불법이었다. 그 이유는 제사장 외에는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도비야는 이방인이었기에 더욱 들어갈 수 없었다 더구나 그는 이스라엘의 재건사업을 방해하던 원수였다.

대제사장인 엘리아십이 뇌물이나 어떤 거래에 넘어갔는지는 모르나, 어떤 이유로도 변명할 수 없는 총독인 느헤미야와 자기 민족에 대한 반역이었다.

 

2. 도비야의 세간을 들어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와 도비야의 세간을 들어내어 성전골방을 깨끗게 하고 거기에 원래 있었던 성전 그릇들과 소제물 등을 들여놓았다.

그 일은 대제사장과 갈등을 일으키거나 도비야에게 더욱 공격받을 위험성이 있었다. 이로 인해 그의 입지가 좁아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런 이해관계를 계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굳게 섰다. 그는 신속하고 과단성있게 잘못을 바로잡아 원칙을 회복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말씀의 원칙을 따르는 자들이다.

 

.1. 성전봉사가 위축됨

 

느헤미야가 있는 동안에는 잘 드렸던 십일조와 헌물을, 이제 느혜미야가 안보이게 되니까 소홀히 하고 그들이 성전을 잘 돌보겠다던 약속도 쉽게 파괴하였다. 제대로 부양받지 못한 레위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도망가버렸다. 이로 말미암아 회복된 이스라엘의 생존이 걸린 성전봉사에 구멍이 뚫리게 되었다.

 

2. 레위인을 다시 세우고 믿을만한 자들로 성전을 감독케 함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편에 서서 도비야와 엘리아십을 반대했다. 느헤미야가 그들의 유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았다. 느헤미야는 성전 감독 책임을 신실하고 신뢰할 만하다고 판단되는 자들에게 맡겼다. 그들의 임무는 십일조와 예물들을 걷고, 성물을 바르게 보관하며, 적절한 영역에 자원을 분배하는 것이었다. 즉 느헤미야가 개입하여 일거에 타락한 지도층을 뿌리 뽑았다.

오늘날 교회가 제대로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세우는 일이 우선이다. 지도자 개인의 맘에 드는 사람이 아니라, 첫째는 믿을만한 사람에게 책임을 맡기고, 다음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해야 한다. 사람이 없으면 그런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며 전도에 힘써야 한다.

 

3. 원칙과 헌신에 대한 모본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말이나 이론이 아닌 모본을 통해서 감동을 주어야 한다.

 

.1. 목회자 부양과 복음전파를 위해서

 

다른 일에 종사하지 않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 목회에만 전념하는 일꾼들이 있는 한 십일조제도는 유지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성전에서 발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도 신자들의 십일조와 헌금 없이는 붕괴될 것이다. 우리 교회도 수준 높은 사역과 계획, 교회의 운영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유급 사역자들 없이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질적으로 수준이 낮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십일조와 헌금 없이는 전도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이것은 실제적인 필요 때문에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고, 십일조를 반드시 드려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이기 때문에 그분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표로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다.

십일조 외의 헌물은 교회 살림이나 여러 가지 사업을 위해 필요하다.

 

. . 1. 세속적인 일로 안식일을 더럽혔다.

 

그들은 안식일에 포도주틀을 밟고 상거래를 했다.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무시되었다. 느헤미야는 지도자들을 책망하고 안식일에 장사하는 자들을 체포하겠다고 엄중하게 경고함으로 이 문제 역시 바로잡았다.(13:17~22)

안식일을 지키는 자에게는 그날에 허락된 복(2:3)이 자기의 것이 되고, 그날이 거룩한 것 같이 거룩하게(31:13) 되는 특별한 복을 누리게 된다.

백성들은 그들의 직업이나 다른 세속적인 목적에서는 성취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날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새롭게 되었고 재창조의 기회를 얻었다.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킨 것 그 이상으로 안식일이 이스라엘을 지켰다.’라는 말이 있다. 요컨대 제7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키는 것이고 육체적이고 영적인 유익을 누리고자 하는 자들 안에 믿음이 살아 있게 도와주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2. 관점을 바꾸라.

 

안식일의 쉼이란?-안식일의 쉼을 단지 육체적인 쉼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무료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안식일의 쉼은 영적인 쉼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 그분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요, 그분을 기쁘게 하는 삶을 통해서 오는 것이다.

무엇이 먼저인가?-주님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2:27)라고 하셨다. 안식일이 먼저가 아니고 사람이 먼저라는 것이다. 안식일이 인간의 자유를 금지하기 위한 날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주신 선물임을 생각한다면 안식일을 즐기게 될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은-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생리적인 필요를 위해서 하는 일(먹고 움직이는 것 등)이나 교회와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은 안식일에도 허락되었다.(2:23~26, 12:5) 주님도 안식일에 고통당하는 자들을 치유하는 일을 하셨다.(5:1~10)

안식일에 대해 왜곡된 관념을 가진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주님이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친 일로 인해 안식일을 범했다고 힐난했다. 이 종교 지도자들은 오도된 열심을 가지고 안식일의 신성성이 훼손되지 않게 하려는 마음에 안식일의 주인”(6:5)이신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고발할 정도로 광신적이었다. 너무 지나쳤다는 말인가? 율법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음에도 그들은 율법의 더 중요한 문제 곧 정의와 긍휼과 믿음”(23:23)을 저버렸다.

안식일을 자기 중심적으로 지키면 그날이 짐이 될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 복주고 쉼을 주는 날로 지킨다면 안식일보다 행복한 날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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