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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하나님과 언약(질문, 대답, 설명) 11/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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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9-11-16 06:45 조회4,1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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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하나님과 언약

 

11월 23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17분

 

● 연구 범위 : 느 10:1~29, 창 4:8~19, 히 13:20, 수 24장, 느 10:30~39, 히 8:1~7

 

● 기억절 :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하였느니라…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느 9:38, 10:39).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을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그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합법적인 관계 수립이라고 할 수 있다. “너희는 내 백성이요 나는 네 하나님이니라”는 말씀이 이를 잘 요약한다. 이 외에 우리는 고대 세계의 다른 민족들이 왕과 신하들 사이에 문서화된 언약을 사용했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언약은 서로에게 이로웠기 때문에 수립되었다. 왕은 백성을 보호하고, 백성은 조공을 바쳤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달랐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받으시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성이 언약에 충실하지 않을지라도 언약에 충실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언약에 결부되어 있는 복과 저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은 나쁜 일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 그들이 언약을 어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주에 우리는 느헤미야 1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갱신된 언약에 대해 살펴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언약 체결의 역사와 중요성에 대한 일반적인 사실들을 논하려고 한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언약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며 우리가 그분의 백성이 되기를 바라는 서로의 열망이 담겨있음을 깨닫는다.

느끼기 : 언약을 지키려는 우리의 의지가 연약함을 인정하고 성령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행하기 : 언약 관계에서 이행하야 할 우리의 도덕적인 의무와 영적인 사업에 필요한 재정적인 책임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한다.

 

➋ 느헤미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왜 언약을 다시 세우기를 원했을까요?

※ 그들이 언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➌ 렘 31:33~34에서 설명하는 영원한 언약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언약이다.

➍ 언약이 문화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형식을 따랐다면 오늘날 복음은 어떤 형식을 따라야 할까요?

※ 복음은 시대 문화를 이해해서 합당한 방법을 찾아 전해야 하지만 그 문화에 혼잡되면 안 된다. 

➎ 하나님과 우리의 언약 관계에서 우리의 의무, 특별히 십일조는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활에서 시인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결론 : 우리의 안녕과 행복, 삶의 가치와 목적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좌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과거의 불행이 이런 관계의 이탈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과 다시 언약을 맺기를 바랐습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과 달리 우리의 약속은 불완전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관계를 발전시키기 원하기 때문에 기꺼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11월 17일(일) 언약의 개념

 

“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느 10:29).

 

1. 느 10:1~29을 읽어보라.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느 9:36~38도 읽어보라. 누가 이 언약을 체결했으며 그들이 이 언약 속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느10:1~29]28 그 남은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및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와 그 아내와 그 자녀들 무릇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가 29 다 그 형제 귀인들을 좇아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로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1~27은 인친 사람들의 이름들이다.)

[느9:36~38]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삽는데 곧 주께서 우리 열조에게 주사 그 실과를 먹고 그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종이 되었나이다 37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열왕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저희가 우리의 몸과 육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난이 심하오며 38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하였느니라.

 

답: 귀환한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이 인치고 모든 백성이 다 언약을 체결했다. 

 

비록 지도자들만 문서에 서명했지만, “그 남은 백성”이 전부 “저주로 맹세하기를…하나님의 율법을 따”르기로 했다(느 10:28~29). 언약 관계에서 무엇이 그토록 중요했길래 그들 모두가 하나님께 맹세하고 그 언약에 들어가기를 원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성경이 말하는 언약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언약은 죄 많은 인류를 다루시는 하나님 이야기의 일부이며 백성과 관계를 맺기 원하시는 그분의 열망을 나타내기 때문에 중요했다. 그것은 또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헌신하려는 그들의 소망을 표현할 수 있게 했다.

창 1~2장에 나오는 창조 기사는 첫째 인류의 창조뿐 아니라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죄가 들어와 이 모든 관계를 훼손시켰다. 죄는 창조와 정반대의 것으로 파괴와 죽음을 가져온다.

가인이 악을 선택하고 셋이 하나님을 영접함으로써 아담의 족보는 결국 갈라졌다(창 4:8~19, 5:3~24). 가인의 족보는 아담의 7대손이었던 라멕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다. 그로부터 일부다처제가 시작되었다(창 4:17~19). 폭력과 보복으로 얼룩진 가인의 족보는 셋 이후에 믿음의 혈통과 평행선을 달린다. 셋의 족보도 열거되었다. 아담의 7대손이었던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늘로 옮겨졌다(창 5:24).

불행히도 세상은 하나님보다 죄악을 더 많이 받아들였다. 믿음의 혈통은 매우 축소되었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약속의 후손을 보내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했던 믿음의 가족들이 제거될지도 모를 가능성이 생겼다.

그 시점에서 하나님은 홍수로 인류의 역사에 개입하셨다. 홍수는 단순한 생명의 역행과 파괴 이상이었지만, 하나님은 인류가 이미 망가뜨린 것들만 파괴하셨다(창 6:11~13).

 

<부가설명> 언약은 언약을 체결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정립하고 확인하는 의식이다. 매매할 때 계약하는 것과 같은 성질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신)이라는 관계를 확인하고 시인하는 의식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분의 백성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 기본적인 관계 안에서 그 다음의 모든 삶이 계획되고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도 하나님과 관계 위에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와 자녀도 언약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혈연의 언약이다. 문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지만 생명으로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자녀들 사이의 관계는 한 부모에게서 출생했다는 기본 관계에서 형성된다. 그래서 혈연적 애정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귀환한 유대인들은 이런 관계를 무시했다. 부자들과 일부 지도자들은 그들의 재물과 권력을 남용했다. 형제와 자매들인데 그들을 이방인 취급을 하며 그들에게 중한 이자로 재물을 빌려주고 제때에 갚지 못하면 자녀들을 종으로 끌어가려고 했다. 이것은 생명의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기본 언약관계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하고 언약을 갱신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항상, 매일 언약을 갱신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교훈 :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을 다시 맺고 하나님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다시 수립하여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그들의 소망을 고백했다.

 

 

11월 18일(월) 언약의 역사

 

홍수 이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그 이후의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다시 시작하셨다. 그분은 그들과의 관계를 추구하셨는데 그러한 관계가 언약이라는 개념의 핵심이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과 맺은 7개의 주요 언약을 소개한다.

첫째 언약 - 아담(창 1~3장)

둘째 언약 - 노아(창 6~9장)

셋째 언약 - 아브라함(창 12:1~3)

넷째 언약 -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시내 언약 또는 모세 언약, 출 19~24장)

다섯째 언약 - 비느하스(민 25:10~13)

여섯째 언약 - 다윗(삼하 7:5~16)

일곱째 언약 - 새 언약(렘 31:31~34)

 

1.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어보라. “영원한 언약”과 관련하여 이 말씀들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창 9:16, 창 17:7, 사 55:3, 히 13:20)

[창9: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창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사55:3]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그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말하지 말며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히13:20]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답: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을 주시겠다는 언약으로 구원의 복음의 의미가 있다. 

 

성경에는 “영원한 언약”이라는 말이 16번 나온다. 그중 13번은 특별히 아브라함 언약, 시내 언약, 다윗 언약에 적용된다. 위에서 언급한 언약은 각자 독특한 면이 있지만 “영원한 언약”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영원한 ‘복음’이 창 3:15에서 처음 반포되었지만 성경에서 점진적으로 계시되었던 것처럼, 영원한 ‘언약’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 각각의 연속된 언약은 구원의 계획을 통해서 가장 온전하게 밝혀지는 영원한 사랑의 언약에 대해서 그 의미를 설명해주고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종종 새 언약과 옛 언약이 구분되지만 그 둘은 다음과 같은 동일한 요소들을 포함한다.

1. 성화 :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렘 31:33; 히 8:10 비교)

2. 화해 :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3; 히 8:10 비교)

3. 사명 :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렘 31:34; 히 8:11 비교)

4. 칭의 :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렘 31:34; 히 8:12 비교)

 

<부가설명> 내가 깨닫는 대로는 언약은 창조주와 구원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과 관계하는 방법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원하든지 않든지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인간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들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창조주와 피조물은 창조와 피조라는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주의 창조에 의하여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존재에 있어서 창조와 피조라는 관계를 피할 수 없다. 태초에 창조주께서는 이런 관계를 그의 형상대로 창조한 이성적 피조물인 사람과 언약으로 나타내시고 사람에게 인식시켰다.(호6:7) 그런데 사람이 그 언약을 버렸다. 그것은 창조와 피조의 관계를 부인한 것이 된다. 결과는 창조가 무효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죽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는 그의 최고의 피조물인 사람을 그냥 무로 돌아가게 하는 대신에 재창조의 관계를 이루도록 하셨다. 그것이 영원한 언약이다. 이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정되고 성취된다. 이런 사실을 사람들이 인식하고 창조주와 언약관계를 소중하게 유지해야 한다. 인간관계도 이 기본적인 관계에 의하여 올바르게 된다. 즉 인간관계는 근본적으로는 주종관계가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죄가 들여온 상태이다. 귀환한 이스라엘은 이 언약을 잊어버렸고 말씀을 통하여 다시 깨닫고 언약을 새롭게 한 것이다. 우리도 이런 언약의 실상을 알아서 하나님과의 관계, 또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 기초위에 세워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평등과 공평과 사랑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교훈 :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는 언약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정립되었다. 성경에 나타나는 여러 언약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언약’을 가리킨다.

 

 

11월 19일(화) 언약의 구조

 

성경학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언약들이 전형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구조는 심지어 고대 히타이트족의 언약에도 나타난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문화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람과 소통하신다.

고대 이스라엘 시대의 일반적인 언약들은 다음과 같은 부분들로 이루어졌다. 머리말(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하여), 역사적인 서문(이전 관계의 정의), 조항 및 율법, 축복과 저주, 증거, 특별 조항 또는 언약의 기호. 따라서 그 시대의 백성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이와 유사한 방법을 따르셨다는 사실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익숙한 것을 사용하셨다.

예를 들어 신명기 전체는 언약의 형식으로 기록되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에 들어오라고 초대했다. 신명기는 언약을 다음의 방식으로 설명한다. ⑴ 머리말(신 1:1~5), ⑵ 역사적인 서문(신 1:6~4:43), ⑶ 조항 및 율법(신 4:44~26:19), ⑷ 축복과 저주(신 27~30장), ⑸ 증거(신 30:19), ⑹ 특별 단서(신 31:9~13)

1. 여호수아 24장을 읽어보라. 이러한 언약의 형식이 이 장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답: 안교생 각자가 읽어보자. 아래 설명이 언약 형식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설명했다.

  “먼저 머리말이 나왔다.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수 24:2)로 제시하신다. 그다음 긴 역사 서문이 이어진다. 여호수아는 과거에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상기시킨다(수 24:2~13). 역사 부분이 끝나면 조항과 율법이 나열되고(수 24:14~15, 23) 축복과 저주가 언급된 다음에(수 24:19~20), 증거들이 제시되고(수 24:22, 27), 특별 단서가 진술되었다(수 24:25~26).”

 

여호수아로 말미암아 수립된 언약의 갱신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머리말이 나왔다.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수 24:2)로 제시하신다. 그다음 긴 역사 서문이 이어진다. 여호수아는 과거에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상기시킨다(수 24:2~13). 역사 부분이 끝나면 조항과 율법이 나열되고(수 24:14~15, 23) 축복과 저주가 언급된 다음에(수 24:19~20), 증거들이 제시되고(수 24:22, 27), 특별 단서가 진술되었다(수 24:25~26). 여기서도 이스라엘 백성과 소통하기 위해 언약의 기본 형식이 사용되었다. 그것은 과거에도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들이 언약의 목적을 옹호하려는 것임을 알려준다.

 

<부가설명> 교과는 성경의 언약들이 어떤 형식을 취하는지 즉 그 당시 문화적 형식을 사용한 사실을 긴 장(章)들을 통하여 분명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가장 간단하면서도 이 언약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십계명이라고 부르는 말씀이다. 번역된 성경에는 십계명이라고 했지만 히브리 원어에는 십계명이라는 말이 없다. 원어는 ‘언약의 열 말씀들’이다.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출34:28) 이 구절에서 ‘곧 십계명’이라고 번역된 원문은 ‘곧 언약의 열 말씀들’이다. 이 언약의 말씀들도 구조가 교과에서 말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출20:1~17까지 기록된 말씀은 1절이 서문이면서 또 그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기록했다. 2절부터 17절까지 조문들인데, 둘째 계명과 다섯째 계명에는 축복과 저주가 기록되어 있다. 단 증거와 부록들이 이 열 말씀들 안에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서론부터 끝까지 기록한 언약의 말씀들에는 증거가 있다. 넷째 계명에 창조하신 사실이 증거로 제시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경배 받아야 할 이유를 분명히 증거한 것이다. 아울러 이 넷째 계명은 언약서에 친 하나님의 인이다. 교과에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언약을 체결하면서 고대 사회에 행하던 방법을 사용하신 것이다. 그래야 그들이 확실히 알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왕국 간에 언약을 체결하면 종주국 왕의 인을 언약서 한가운데 찍었다. 그처럼 언약의 열 말씀들의 가운데가 되는 제4계명에 창조주의 인을 치신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언약에 대한 전문 연구학자인 미시간 대학 교수인 멘덴홀(George E. Mendenhall)이 찾아낸 결론이다. 십계명은 율법이기 전에 언약서이다. 

 

교훈 : 하나님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 당시의 문화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사용하신다. 성경 속의 언약들도 그런 방법으로 수립되었다.

 

 

11월 20일(수) 맹세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느 10:39).

 

1. 느 10:30~39을 읽어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갱신한 언약의 일환으로 어떤 4가지를 실천하기로 맹세했는가?

[느10:30~39] 우리 딸은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 아들을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31 혹시 이 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화나 식물을 가져다가 팔려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사지 않겠고 제 칠 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하였고 32 우리가 또 스스로 규례를 정하기를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 일을 수납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쓰게 하되 33 곧 진설병과 항상 드리는 소제와 항상 드리는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에 쓸 것과 성물과 이스라엘을 위하는 속죄제와 우리 하나님의 전의 모든 일을 위하여 쓰게 하였고 34 또 우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들이 제비뽑아 각기 종족대로 해마다 정한 기한에 나무를 우리 하나님의 전에 드려서 율법에 기록한 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에 사르게 하였고 35 해마다 우리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 36 또 우리의 맏아들들과 생축의 처음 난 것과 우양의 처음 난 것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 37 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에 두고 또 우리 물산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이 레위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물산의 십일조를 받는 자임이며 38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하나가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 곧 곳간에 두되 39 곧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 바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기명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및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답: 아래 교과 기록이 답이다. 

백성들은 다음의 4가지를 맹세했다.

1. 잡혼 금지(우상숭배로 이끌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음)

2. 진정한 안식일 준수(상업적인 거래 때문에 느슨해지지 않음)

3. 빚을 면제하고 안식년을 준수해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자유를 줌

4. 첫 소출, 초태생, 십일조를 바쳐서 성전과 그 예배와 그 봉사자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참예배의 지속성을 보장함

처음 3가지 맹세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결혼, 채무 면제)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안식일)와 관련이 있는 반면 마지막 맹세는 성전 규례를 다루고 있다(느 10:32~39).

백성들은 자신들이 언약에 헌신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그들 사이의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들을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비록 그들이 언약을 항상 완전하게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올바른 관습과 행위들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이해했다. 만약 이스라엘 민족이 계속 옳은 길로 갈 것이라면 그들은 자신이 가기 원하는 곳까지 전파될 수 있는 관습과 행위들을 수립해야 했다. 그들이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안식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성전을 돌보는 것은 그 방향으로 가는 중요한 단계였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마지막 장들에 나타나듯이 그들은 맹세를 잘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모두가 맹세를 지키지 못했을지라도 일부 또는 상당수의 사람이 그것을 지켰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계속 그분만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바른 습관을 기르고 옳은 길을 고수할 수 있다.

 

<부가설명> 맹세는 최후 확정이다.(히6:13) 맹세로 확정된 것은 지켜야 한다. 맹세에는 벌칙이 포함되어 있다. 성경에는 저주가 포함되었다고 교과는 말했고 실제로 그렇다. 그것은 벌칙의 다른 표현인데 당시 문화풍습을 따른 표현이다. 언약은 그 구속력이 율법보다 강력하다. 지극히 작은 글자 하나라도 언약에 기록된 문자는 효력을 가진다. 이 언약은 상방이 체결하여 확정한 후에는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갈3:15) 그런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하나님의 동의 없이 사람이 마음대로 고치거나 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강력한 효력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일점일획이라도 폐하지 않고 다 이룬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십계명이라고 부르는 언약의 열 말씀들은 이런 효력이 있는 언약의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이 침례로 서약한 것은 스스로 폐할 수 없다. 하나님께 서약대로 충성하는 것이 옳다. 이 언약을 우리 스스로 지키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성령을 보내신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자아를 굴복하고 성령의 역사로 능히 이것을 수행할 수 있다. 아멘.

 

교훈 :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는 단 하나의 맹세도 제대로 지킬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면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 옳은 길로 행할 수 있다.

 

 

11월 21일(목) 성전

 

1. 느 10:32~39을 다시 읽어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느 10:39)고 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 관습이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성전이 그들의 신앙에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히 8:1~7 참고)

[느10:32~39] 우리가 또 스스로 규례를 정하기를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 일을 수납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쓰게 하되 33 곧 진설병과 항상 드리는 소제와 항상 드리는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에 쓸 것과 성물과 이스라엘을 위하는 속죄제와 우리 하나님의 전의 모든 일을 위하여 쓰게 하였고 34 또 우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들이 제비뽑아 각기 종족대로 해마다 정한 기한에 나무를 우리 하나님의 전에 드려서 율법에 기록한 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에 사르게 하였고 35 해마다 우리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 36 또 우리의 맏아들들과 생축의 처음 난 것과 우양의 처음 난 것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 37 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에 두고 또 우리 물산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이 레위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물산의 십일조를 받는 자임이며 38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하나가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 곧 곳간에 두되 39 곧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 바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기명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및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히8:1~7]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3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6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답: 성전에서 행해지는 모든 예식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구원의 복음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복음 해설 시청각교재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돌보겠다고 맹세했다. 비록 그들이 왕들로 말미암아 재정적인 압박을 받는 작은 집단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성전이 단지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할 수 있도록 그들이 가진 적은 것이라도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율법이 명령한 대로 인구조사가 없는 해마다 삼분의 일 세겔을 성전에 바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율법의 요구 이상을 행할 필요성을 느꼈다. 게다가 가문마다 번제단에 쓸 화목을 공급할 책임을 할당했다. 왜냐하면 체계가 없으면 성전 관습이 약화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첫 소출, 초태생, 십일조와 헌물들은 성전 예배의 일환으로서 그것으로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사역을 부양했다.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은 레위인들에게 가야 했다. 또한 장자를 속량하기 위한 돈도 레위인들이 받는 분량에 더해졌다. 그리고 레위인들이 받는 십일조의 십일조는 제사장들에게 갔다.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심장 박동과 같은 역할을 했다. 그것이 그들의 신앙에 너무도 중요했기 때문에 느부갓네살이 성전을 파괴하고 성전 기물들을 옮겨갔을 때 그것은 그들에게 엄청난 비극이었다.

성전이 바르게 운영되었을 때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영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양의 죽음을 통해 볼 수 있는 죄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 곧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마련하실 해결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롬 5:5~10). 그뿐 아니라 백성들은 매년 돌아오는 속죄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죄와 불행을 영원히 제거하실 계획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요컨대 성전은 백성들에게 구원의 전체 계획을 보여주는 무대의 역할을 했다. 성전 예배를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은 무궁무진하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더 큰 그림으로 보고 구원의 계획을 환하게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부가설명> 성전구조와 봉사는 구주께서 구원을 이루는 절차를 잘 가르쳐주는 실물교훈이었다. 즉 구원의 역사(役事)를 배우는 시청각교재였다. 히브리서는 성전이 비유라고 가르친다.(히9:9) 비유는 어떤 사실과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자료이다. 성소와 성전은 예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복음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치는 자료이다. 그 안에는 속죄가 있고 죄를 처리하는 방법이 계시되어 있고 죄의 장본인인 루시퍼 사탄을 처리하는 절차가 계시되어 있다. 우리가 그냥 예수님의 구원에 대한 것을 공부하는 것보다 성전봉사를 통하여 가르치신 것을 연구하면 더 분명한 구원의 방법과 진행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다 깨달았는지는 모르지만 예수께서 오셔서 구원을 이루신 후에 옛 성소성전봉사가 바로 예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모든 절차를 계시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성소봉사의 여러 국면들을 말하고 있고 히브리서는 집중적으로 성소의 기능과 역할을 설명해 주고 있다. 느헤미야 시대의 유대인들이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만큼 성소의 진리를 알았는지 모르지만 지도자들의 인도로 성소를 잘 관리하고 봉사할 것을 언약하고 맹세한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남긴 것이다. 오늘 역사의 종말에 남은 자들은 하늘성소와 그 봉사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고 몸 성전을 올바르게 관리하는 지혜를 얻어야 할 것이다. 아멘.

 

교훈 :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과 구원의 큰 계획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11월 2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정로의 계단>, 43~48 ‘헌신’을 읽어보라.

 

“지상 성소의 봉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제사장들은 매일 성소에서 봉사하였고, 대제사장은 매년 한 번씩 성소의 정결을 위하여 지성소에서 특별한 속죄의 봉사를 행하였다. 죄를 뉘우치는 죄인은 날마다 그의 제물을 성막의 문으로 가지고 와서 희생 제물의 머리 위에 자기의 손을 얹고, 그의 죄를 고백함으로 그 죄는 상징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흠 없는 희생제물에게로 옮겨졌다. 그런 다음에 그 짐승은 죽임을 당하였다. 사도 바울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고 말한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레 17:11). 하나님의 율법은 범죄자의 생명을 요구하였다. 죄인의 빼앗긴 생명을 나타내는 피, 곧 죄인의 생명을 대신하는 그 희생 제물의 피는 제사장으로 말미암아 성소로 옮겨져서 그 휘장 앞에 뿌려졌는데, 그 휘장 너머에는 그 죄인이 범한 율법을 넣어둔 법궤가 있었다. 이러한 의식을 통하여 죄는 피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성소에 옮겨졌다. 또 어떤 경우에는 피를 성소로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모세가 아론의 아들들에게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레 10:17)고 한 지시대로 제사장이 그 고기를 먹었다. 그 의식들은 모두 죄가 회개한 자에게서 성소로 옮겨지는 것을 상징하였다”(각 시대의 대쟁투, 41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우리가 지키지 못했던 맹세에 대해 생각해보십시오.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그대는 무엇을 배웠습니까? 그것이 그대로 하여금 비슷한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어떻게 도움을 주었습니까?

※ 각자가 대답해 보자.

 

➋ 우리는 언약을 깨고 우리의 의무를 소홀히 여기지만 하나님은 항상 자신의 의무를 다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에 대한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며 그분이 바라시는 대로 살 수 있을까요?

※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언제나 자아를 굴복하는 은혜를 구하며 말씀에 순복해야 한다.

 

➌ 우리가 새 언약 아래에서도 얼마나 자주 하나님과의 언약에 불충실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왜 우리는 새 언약을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의 희생과 그것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죄 사함의 약속과 구원의 계획을 꼭 이해해야 할까요?

※ 자기가 믿는 도리를 올바르게 깨닫고 충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흡이 멈추는 날까지 항상 주님의 구원의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충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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