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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3기 11과 재림의 소망을 따라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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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19-09-09 19:35 조회2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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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교할동반 시간>

 

*반장은 반원들이 한주일 동안 TMI를 실천한 사항들을 나누도록 하며, 계속 실천하도록 장려한다.(안교교과 시간은 단지 말씀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삶속에서 실천하도록 장려하는 실제적인 시간이 되어야 한다. 배우기만 하는 것은 능력이 없다. 실천하는 데 능력이 있다.)

 

<핵심>

 

참된 재림의 소망은 오늘 여기에서부터 삶을 변화시키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핵심어 : 소망, 현재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 귀한 손님을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할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가?

 

.1. 하나님의 백성들과 선지자들이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호소한 것은 어떻게 해달라는 것일까?

2. 하나님이 속히 개입하셔야만 할 불의한 상황은 예를 들면 어떤 경우라고 생각하는가?

 

.1.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면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2. 진정으로 재림을 소망한다면 나의 현재 삶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

 

.1.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2. 예수님의 부활은 나에게 얼마나 용기를 주는가?

 

.1. 심판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될 수 있을까?

 

2. 심판은 나에게 어떤 면에서 복음인가?

 

.1. 21:5의 회복된 낙원에서 하나님이 구원받은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

2. 이런 소망을 가진 나는 다른 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적용, 결심>

 

이 주에 배운 교훈 중에 내가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하겠는가?

 

<답을 위한 도움>

 

.1. 하나님이 속히 공의를 세워달라는 간구.

 

하나님의 백성들과 선지자들은 무죄한 사람들이 불의와 압제로 불이익과 고통을 당하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답답해 하며 하나님이 속히 이러한 상황에 개입하셔서 공의를 세워달라고 부르짖는다. 혹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로생활과 같은 징계를 받는 것은 당연할지라도, 적국의 지나친 무자비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멸절되는 듯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의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간구한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백성을 위해 공의를 실현하시려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불의한 상황은 더 참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행동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께 또 다른 인내심으로 요구한다. 그래서 선지자들의 입에서 다급한 질문이 새어나온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1:2).

신약 성경에도...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6:10) 하며 부르짖는 탄원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순교를 당한 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억눌리고 박해를 당하는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이 개입해주시기를 요청하는 동일한 절규이다.

갈수록 악해져가는 이 세상을 볼 때 우리도 이런 기도에 동참해야 한다.

 

.1.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함

 

건전한 소망은 사람을 현실도피로 이끌지 않는다. 현실을 도피하며 저멀리 소망을 바라만보는 것은 개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꿈은 꿈을 꾸기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꿈을 위해 노력할 때 이루어진다. 소망은 현재의 삶을 변화시킨다. 먼 미래에 이루어질 아름다운 세상을 오늘부터 한걸음씩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할 때 소망은 더 확실해진다.

25장에서 재림의 소망을 품은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재림으로 이루어질 공의와 자비의 세상을 이 땅에서 맛보기 위해 힘썼다. 주인에게 받은 달란트를 열심히 활용하여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돌보아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우리가 미래에 대해 믿는 것들은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세상의 미래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는 건전한 신앙은 적극적인 참여의 기폭제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풍요롭고 심오한 삶의 불꽃이 되어야 한다.

 

.1. 담대하고 헌신적이 됨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믿었고 그분의 수많은 기적을 바로 옆에서 보아왔던 제자들도 그분의 죽으심으로 용기가 꺾이고 메시야왕국에 대한 희망도 무너져버렸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그들을 전혀 새로운 사람들로 변화시켰다.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단지 밝은 미래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은 재림의 약속에 확고한 현실성을 부여했다. 누군가는 직접 목격했던 것처럼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수 있다면 분명히 죄와 그 영향력을 제거하고 세상을 새롭게 하겠다는 계획도 완성하실 것이다(고전 15:22~23 참고).

죽음의 권세와 공포에서 벗어난 초기 신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다(고전 15:30~31 참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재림도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을 알 수 있으므로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며, 공의와 자비가 지배하는 그분의 나라 건설에 위해 더욱 헌신적이 될 것이다.

 

.1. 심판으로 공의가 승리함

 

재림의 소망은 곧 심판의 소망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이 오셔서 불의한 자와 의로운 자를 심판하심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통치자들과 법관들이 재판으로 억울함을 풀어주고 범법자를 처벌하긴 하지만 그것은 매우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재판을 굽게 할 때도 많이 있다. 억울한 사람들은 넘치지만 그들의 호소를 다 들어주지도 못하고 주변 사람들도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아무리 뛰어난 통치자라도 억울한 사람이 전혀 없는 세상을 만들진 못한다. 그래서 최후의 심판이 필요하다.

고난과 억압, 비극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무의미하거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처와 모욕은 더 감당하기 힘들다. 슬픔이 무의미해지면 이전의 짐보다 더 버거워진다. 증거와 최후의 심판이 없는 세상은 잔혹함과 불합리함의 극치이다.

선하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고 탄식했던 전도서의 희망은 마지막 말씀에 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12:14)

세상의 온갖 불행을 감수해야 했던 자들 곧 소외되고,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억눌리고, 수탈을 당한 자들에게 심판의 약속은 진실로 복음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억울하거나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심판의 기별도 반드시 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죄로 인해 받았던 상처가 치유됨

 

의인이나 악인이나를 물론하고 우리는 모두 죄의 피해자이다. 그러나 새하늘과 새땅에는 더 이상 죄가 없으므로 죄로 인해 흘릴 눈물도 없어질 것이다. 진정한 회복이 여기에 있다.

불행과 불의의 세상에서 죄의 삶을 살면서 수많은 이유로 죄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계시록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치유의 과정을 엿본다. 요한은 생명나무를 묘사하면서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22:2)고 설명한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죄악을 느끼고, 경험하며, 목격하고, 심지어 참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이해하고 동정하신다. 그리고 이 세상을 재창조하시는 그분의 계획 속에는 우리 각 사람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일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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