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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시편과 잠언에 나타난 자비와 공의 (질문, 대답, 설명) 07/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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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9-07-20 01:23 조회2,0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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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시편과 잠언에 나타난 자비와 공의

 

7월 27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45분

 

● 연구 범위 : 시 9:7~9, 13~20, 82편, 101편, 146편, 잠 10:4, 13:23, 25, 30:7~9

 

● 기억절 :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시 82:3~4).

 

시편과 잠언은 단지 예배나 신앙적인 활동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경험을 묘사한다. 잠언이 관계와 가족부터 사업과 통치에 이르기까지 실천적인 지혜를 폭넓게 제공하는 반면 시편은 탄식과 찬탄 사이의 다양한 정서와 영적인 경험들을 다룬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모든 측면을 돌보시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이 삶의 모든 영역과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이 타락한 세상의 삶을 묘사하면서 인간의 상황에 너무도 깊게 스며든 불평등의 문제를 모른 체할 수는 없다. 사실 불평등은 우리 하나님이 관심을 기울이며 해소하시려는 문제로 계속 언급된다.

이번 주에 우리는 시편과 잠언이 이 주제에 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간단히 살펴보려고 한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주변에 있는 가난하고 억눌리며 잊힌 자들의 필요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사회의 불공정함을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 자비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에게 필요함을 절감한다.

행하기 :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사를 나의 관심사로 삼고 그분의 일에 동참한다.

 

➋ 세상에 더 이상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면 그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오직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할 수밖에 없다.

➌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회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교회가 사회의 올바른 본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회가 정의를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➍ 하나님의 통치 원리가 적용된다면 이 세상의 불공정은 어떤 방식으로 해소될까요?

※ 사랑과 나눔과 공평과 평등으로 해소될 것이다. 

➎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한 사역과 봉사가 왜 신앙생활에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할까요?

※ 그것이 주님의 마음을 실천하며 주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 : 하나님은 불공평한 세상에서 고민하며 시름하는 힘없는 자들을 주목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공의로 우주를 다스리는 그분의 통치 원리가 인간 사회에도 적용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그런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은 큰 모순입니다.

 

 

7월 21일(일) 억눌린 자들을 위한 희망의 노래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시 9:9).

 

주지했다시피 하나님은 곤경과 근심 중에 있는 자들을 아시고 그들의 소리를 들으신다. 시편에는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공의가 이행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자들의 절규가 자주 들린다. 시편의 음성은 불공평과 억압의 경험에 주목한다. 시편 기자의 관점에는 그것들이 선과 정의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노래하는 자들의 노래가 시편이다. 그들의 삶과 믿음은 꺾이지 않는다. 여전히 소망이 있다. 너무 늦기 전에, 악이 승리하고, 억눌린 자들이 불행의 무게로 무너져버리기 전에 하나님이 나서실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시편 기자는 믿음의 확신과 이생의 시련과 비극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한다.

 

1. 시 9:7~9, 13~20을 읽어보라. 그대는 이 시편을 기록한 다윗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그의 믿음과 현재의 경험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을 느낄 수 있는가? 그대는 극심한 시련을 당할 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시9:7~9, 13~20]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9 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 /13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미워하는 자에게 받는 나의 곤고를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그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17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하리로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목전에 심판을 받게 하소서 20 여호와여 저희로 두렵게 하시며 열방으로 자기는 인생뿐인 줄 알게 하소서.

 

답: 다윗은 악한 자의 위험에서 구원받은 상태에서 구주 하나님께 감사한다. 다윗은 공위로운 심판장이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평안을 누렸다.

 

이런 긴장에 대해 반복적으로 주어진 시편의 해답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의로운 심판에 대한 소망과 약속이다. 지금은 불의와 불공평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행악자들과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은 형벌을 받을 것이고 그들이 상처를 주고 억압했던 자들은 회복되고 새로워질 것이다.S. 루이스(Lewis)의 <시편사색>을 보면 그는 시편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심판에 대한 흥분과 열망에 처음에는 놀랐다고 한다. 오늘날 성경의 독자들이 심판을 공포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데 반하여 그는 그것에 대한 유대인들의 원래 관점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소유한 모든 것을 잃고 오직 기도할 권리만 남은 수많은 자들의 기도가 결국에는 응답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실 뿐 당장 응답이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심판하러 오실 때 마침내 그들의 기도는 응답을 받을 것이다.”—C. S. Lewis, Reflections on the Psalms (New York: Harcourt, Brace and Company, 1958), p. 11. 시편을 보면 고난과 실망을 경험하는 이 순간에도 억눌린 자들에게 소망이 있다.

 

<부가설명> 시편에는 형벌과 복수에 대한 내용을 가진 시편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이런 시편을 읽으면서 보복하시는 하나님의 이미지로 하여 하나님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루이스’의 관점이 옳다. 이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해 있고 그에게 부속된 악인들이 많다. 그들에게 심판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은 의와 선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악이 주장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시련을 당하는데 하나님은 그들을 방치하시지 않는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 환난을 당한다.(요16:30) 그러나 심판의 날에 그들은 신원될 것이다. 악을 없애고 의인을 신원하는 심판은 먼저 심리심판이 있고 모든 것이 확정되었을 때 재판장 하나님은 공의를 선포하시고 악인이나 의인이나 방청객이나 다 심판이 공의롭고 선하고 참되다고 시인할 때 내용대로 집행될 것이다. 환난 중에 긴장하고 사는 의인들에게 이 심판은 소망이며 복음이 아닐 수 없다. 다윗은 이런 심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나타내었다. 

 

교훈 :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의를 신뢰하는 자들은 비록 이생의 불의와 불공평을 경험하더라도 마침내 그분이 세상을 심판하시리라는 소망으로 기뻐할 수 있다.

 

 

7월 22일(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소서!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시 82:8).

 

1. 시편 82편을 읽어보라.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기별은 무엇인가?

[시82:1~8] 하나님이 하나님의 회 가운데 서시며 재판장들 중에서 판단하시되 2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3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4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 5 저희는 무지무각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7 너희는 범인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같이 엎더지리로다 8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판단하소서 모든 열방이 주의 기업이 되겠음이니이다.

 

답: 세상의 재판장들이 불의와 불공평을 자행할지라도 하늘의 하나님은 절대로 공의롭게 그 모든 자들을 심판하시니 그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라는 기별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사회 질서와 규범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역사 속에서 그분의 계획대로 살아가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그들은 쉽게 주변 민족처럼 되었고 불공평과 압제의 본을 따라 살았다. 지도자들과 재판관들은 자신들만 돌보았고 뇌물에 매수되었다. 법적인 보호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서민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시편 82편은 그 같은 상황에 대한 반응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할을 최고 판결권자로 묘사한다. 하나님은 백성의 지도자뿐 아니라 재판관들까지 심판하신다. 시편은 사회에서 그와 같은 소임을 맡은 자들을 “하나님 아래서 재판관으로 일하도록 지명된 자들”(선지자와 왕, 198)이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표자와 신하로서의 지위를 받고 직임을 수행해야 했다. 시편 기자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지상의 공의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모형이었으며 그것은 또한 공평이든지 불공평이든지 그것을 조장하는 자들이 받게 될 심판의 기준을 제시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이 행동하고 개입하셔서 그 나라에 편만한 불공평을 막아주시기를 바라는 간청으로 마친다(시 82:8). 여러 다른 시편과 마찬가지로 이 시편은 발언권이 없고 억압을 받으며 삶의 현장에서 불공정한 사회 제도로 말미암아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시 82편은 온 우주와 모든 민족의 통치자로서 하늘 재판정에 앉으신 하나님께 호소한다. 그러한 간청을 받아줄 더 높은 법정이나 권위는 없다. 확신하건대 지상의 법정에서는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의 절규를 듣고 옹호하지 않을 때가 너무도 많지만 하늘의 법정에서는 도움을 호소할 수 있는 명백한 기회가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는 종종 불공정의 희생자가 되기도 하지만 간혹 불공정을 행하거나 그것으로부터 이득을 보는 자가 되기도 한다. 억압을 당하는 자든지 또는 억압하는 자들이든지 우리는 시편 82편과 같은 말씀에서 지혜와 통찰을 얻는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장들을 염려하며 그들을 그분의 자녀로 묘사하고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선택하기를 바라신다(시 82:6). 따라서 억압의 편에 있는 자일지라도 변화되기를 바란다면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심판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려고 한다. 이유는 그 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없다는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재림교인들은 특히 조사심판이라는 말을 엄청 싫어하는 것 같다. 그 문제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재림교회 역사에 여러 명이 있다. 화인 여사가 살아있을 때부터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과 자비를 강조한다. 그것은 다 잘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판을 무시하는 것은 엄청 잘못된 것이다. 이유는 이 세상은 악이 주관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 악은 교회 안에도 아주 깊이 침투해서 선을 가장하고 활동하기 때문이다. 가라지는 세상 끝에까지 있다. 그냥 두고 자비와 사랑만 강조해도 되겠는가? 교회 안에서 악이 척결되어야 하고 악에 물든 교인들도 그 악을 아주 말갛게 씻든지 아니면 그 자신이 제거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성도들에게 심판은 신원이 되는 것이다. 악이 완전히 제거하려면 그것이 악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우주가 그것을 옳다고 절대적으로 시인해야 한다. 제거되어야할 악 자체도 그것을 시인해야 한다. 제거되는 것이 당연하고 결코 억울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인정하고 스스로 굴복해야 한다. 그때 악이 완전히 제거된다. 그것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모습이다. 그래서 모든 의인에게 심판은 소망이 되는 것이고 복음이 되는 것이다.

 

교훈 : 불공정한 세상의 법정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약자들도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는 도움을 구하며 공의로운 심판을 기대할 수 있다.

 

 

7월 23일(화) 왕의 약속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시 101:6).

 

1. 시편 101편을 읽어보라. 이것이 비록 지도자들을 위해 기록되었지만 사회적인 지위와 상관없이 우리는 여기서 우리 자신을 위해 어떤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시101:1~8] 내가 인자와 공의를 찬송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2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리니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3 나는 비루한 것을 내 눈 앞에서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니 이것이 내게 붙접지 아니하리이다 4 사특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 5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 6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7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 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8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죄악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답: 신자들은 완전한 길을 충성으로 걸어가야 한다. 그 길은 예수님이시고 그 안에서 충성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시편 101편은 지도자들을 위한 말씀이다. 이것은 다윗 왕 통치 초기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윗은 왕이 될 때 했던 서약을 여기에 담았다. 그는 사울의 장수와 도망자로서의 삶을 경험하면서 방향을 잃은 왕이 어떻게 그 민족과 가족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그래서 다윗은 다른 종류의 지도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우리 중에 정치인이나 국가의 지도자가 된 사람은 거의 없지만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거나 그들을 고무시킬 수 있는 기회와 역할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러한 역할을 발휘할 곳은 우리의 직장, 지역사회, 가정 또는 교회가 될 수 있다. 엘렌 G. 화잇은 이러한 지도력의 환경을 언급하며 “시편 101편에 기록된 다윗의 서약은 곧 가정의 감화를 보호할 책임을 진 모든 자의 서약이 되어야 한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119)고 권면했다.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 우리를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이러한 원칙들을 제시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지도력과 영향력을 가진 위치에 있는 자들은 다윗의 원칙들을 적용해서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할 기회를 선용해야 한다.

다윗은 처음에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로 인하여 그분께 영광을 돌린다(시 101:1).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는 다윗이 지도자로서 옹호하고자 하는 모든 것의 토대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생애와 사업에서 이와 동일한 특성들을 배우고 연마하고자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과오와 타락과 부정직 등 권력과 지위를 가진 지도자들에게 특별히 올무가 될 수 있는 모든 유혹에 저항해야 했다.

자신이 옳은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 훌륭한 조언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기 때문에 그는 신뢰할 만한 모사들을 발굴하고 정직한 관리들을 임명하겠다고 서약했다. 공의와 자비는 다윗 자신뿐 아니라 그와 함께 또는 그를 위해 일하는 자들이 행사하는 지도력의 특징이 되어야 했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서도 의와 공평의 도를 걸어야 한다. 비루한 것을 눈앞에 두지 않고 완전한 길을 걸으려고 자신을 주님께 굴복시켜야 한다. 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는 공평과 의로움으로 세상의 사표(師表)가 되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 교과는 가르친다. 다윗은 왕이 되어서 101편에 고백한 대로 걷고 통치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밧세바 사건 외에 언제나 하나님 앞에 온전하였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다.(왕상15:5) 그리스도인은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들이다.(벧전2:9) 자기 자신에게 이 약속이 시행되어야 하고 가정에서 시행되어야 하면 이웃에게 이런 마음을 나타내야 한다. 우리의 성정으로는 가능하지 않지만 성령께 전적으로 맡기면 성령께서 이루실 것이다. 

 

교훈 :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지도력의 기초로 삼아야 하며 각자 삶의 영역에서 공의와 자비의 정신을 나타내야 한다.

 

 

7월 24일(수) 하나님과의 동행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시 146:7).

 

시편의 끝에 이를수록 찬양의 탄성은 점점 더 고조되는 것처럼 보인다. 시편의 마지막 다섯 편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단순하면서도 직접적인 명령으로 시작한다. 그중 146편은 특별히 그와 같은 찬양의 주된 이유로서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에 초점을 맞춘다.

 

1. 시편 146편을 읽어보라.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기별은 무엇인가? 특별히 시 146:5~9에서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시146: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3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8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10 시온아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답: 사람과 사람 지도자들을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기별이다. 그는 공평하시며 가난한 자와 비천한 자를 돌보시고 일으키시며 과부와 고아를 붙들어 주시는 분이시다. 그의 백성도 그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 길을 기어이 가려는 악인은 그 길을 가도록 그냥 두신다.

 

하나님이 분명하게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것처럼(시 146:6 참고) 이 시편은 재판장, 공급자, 해방자, 치료자, 조력자와 보호자로서 이 세상에서 지속적으로 이행되는 하나님의 사역을 묘사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특별히 그런 종류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지역사회와 세상에서 무엇을 행하시며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지에 대한 영감적인 비전이다.

때로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위한 돌봄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시편 146편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미 그 일을 행하고 계시며 우리는 그분의 일에 참여하도록 초대를 받고 있다. 우리가 빈곤과 억압, 질병에 맞서 일할 때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과 협력하며 그분의 목적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 146편에서 독려하는 사업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과 동반자가 되는 것보다 더 큰 특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그것은 우리에게도 유익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하나님을 찾고 그분과 더 가까운 관계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시 146:7~9처럼 성경은 하나님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그분이 행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시편 146편이 말하듯이 그분이 가난하고 병들고 억눌린 자들을 일으키기 위해 일하신다면 우리도 그분과 같이 일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한 자들과 고통 받는 자들 사이에서 일하셨다. 그들은 그분의 관심을 가장 크게 받았다. 오늘날도 그분은 그분의 자녀의 모습으로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방문하셔서 불행을 제거하고 고통을 덜어주신다”(교회증언 7권, 226).

 

<부가설명> 우리는 이 번 기에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위한 사역(事役)이라는 총 제목으로 공부하고 있다. 4과는 시편과 잠언에서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 대하여 계시한 말씀을 배우는 중이다. 오늘은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로서 성도들이 가정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며 자기 자신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을 제시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이웃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는지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고 공평하고 의로운 길을 걷도록 순간마다 타이르고 말씀에 굴복해야 한다. 길 되신 예수님 안에서 한 발짝도 나가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해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이웃에게 섬기는 지도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런 중에 특별히 소외된 사람들을 예수님이 돌보시듯이 돌보는 마음과 또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한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가? 믿음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잘 실현하는 것이 소외되고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을 생활로 실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분명히 예수님 오른편 양무리 가운데 있을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돌보시기 때문에 더욱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 우리가 그분을 만나기 원한다면 그분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면 된다.

 

 

7월 25일(목) 잠언 : 궁핍한 자들에 대한 긍휼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22:2).

 

일종의 지혜의 명언집인 잠언서는 다양한 주제와 인생의 경험들을 다루는데 그중 가난, 부, 만족, 정의, 불공정 등의 주제들을 다른 각도에서 비춰본다. 인생이 항상 쉽고 간단하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일지라도 잠언은 삶의 방식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상황과 선택들에 대하여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1. 잠 10:4, 13:23, 25, 14:31, 15:15~16, 19:15, 17, 30:7~9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들은 부, 빈곤, 궁핍한 자들을 돕는 일에 관하여 뭐라고 말하는가?

[잠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13:23,25]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하므로 양식이 많아지거늘 혹 불의로 인하여 가산을 탕패하는 자가 있느니라/ 25 의인은 포식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리느니라.

[잠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잠15:15,16]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19:15,17]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해태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잠30:7~9]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8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답: 그들을 돕는 것이 여호와를 존경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잠언은 가난하고 곤궁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와 관심을 강조한다. 때로 사람들은 어떤 상황과 잘못된 선택 또는 착취 때문에 가난해진다. 그러나 그 상황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창조주이시며(잠 22:2 참고) 옹호자로 묘사된다(잠 22:22~23 참고). 과거에 어떤 실수를 했든지 그들은 억압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

잠언은 지혜로운 길을 선택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제안하지만, 그렇다고 부가 항상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결과는 아니다. 하나님께 신실함이 항상 물질적인 이득보다 더 중요하고, 궁극적으로 더 큰 보상을 보증하는 덕목으로 간주된다.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잠 16:8).

잠언의 또 다른 관심사는 사업, 정부, 사법 기관에서의 정직과 공정한 절차이다(잠 14:5, 25, 16:11~13, 17:15, 20:23, 21:28, 28:14~16). 잠언은 개인의 삶을 다룰 뿐 아니라 전체 사회가 모두, 특별히 보호가 필요한 자들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밝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통치와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렇게 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잠 8:15~16). 따라서 그들은 궁핍한 자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대리자처럼 행동해야 한다.

<부가설명> 세상은 죄와 사망으로 엉망이 된 장소이다. 사망이 왕 노릇하며 육체의 생명으로 한 번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억압한다. 이기심을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호흡하는 동안 호강을 누리려는 욕심이다.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기려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과 부자들은 백성들을 착취하는 것이 역사적 현실이었다. 그것이 사망의 속성이고 썩어져가는 구습의 모습이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공평과 평등과 의를 실천하라고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실패했고 그 왕들도 이방 왕들과 다를 것이 없게 되었다. 때가 되었을 때 평강의 왕께서 세상에 오시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시고 권력가진 사람들과 부자들에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돌보도록 요청하시고 몸소 실천하여 보이셨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윽박질렀다. 예수께서는 이런 현상을 제자들이 잘 보고 예수께서 보시는 눈과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라고 본을 보이셨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도 해당된다. 한국교회들은 대형화해서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사회 다른 계층과 다를 바가 없다. 재림교회와 재림성도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적 태도로 일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이 인도하시고 복주시기를 바란다.

 

교훈 : 하나님은 불우하고 억압을 당하는 자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시며 그분의 대리자인 우리가 그분처럼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기를 기대하신다.

 

 

7월 26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조와 선지자>, 746~755 ‘다윗의 말년’을 읽어보라.

“다윗의 시편은 고범죄와 양심의 가책의 깊은 구렁에서부터 최고의 신앙과 하나님과 교통하는 최고의 위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경험을 총망라하고 있다. 그가 남긴 생애의 기록에 따르면 죄는 수치와 괴로움만을 가져올 뿐이나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가장 깊은 구렁에까지 도달할 수 있어서 하나님은 믿고 회개하는 영혼을 높이사 그분의 양자가 되게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포된 모든 보증 가운데서 이것이 충실과 공의와 자비의 언약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 중에 하나이다”(부조와 선지자, 754).

“사회의 복리, 곧 세속 단체와 종교 단체의 복리는 모두 이런 원칙들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는 것은 이런 원칙들이다. 세상 사람들이 신뢰와 협력의 관계를 유지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제시된 그분의 율법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거의 잊히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다”(교육, 13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그대는 어떤 의미에서 자신이 지도력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대는 어떤 측면에서 정의의 대행자가 될 수 있을까요?

※ 가장들은 가정에서, 교회의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그 직분으로 주님의 뜻을 행하여 영향을 미치고 정의의 대행자로 봉사할 수 있다. 특히 진리를 전하는데 그렇게 해야 한다.



➋ 어떻게 하면 그대가 살고 있는 사회 구조 안에서 궁핍한 자들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요?

※ 혼자서는 힘 드는 일이다. 교회가 연합하여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면 아주 적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➌ 정의와 공정함의 원칙이 건전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어떤 사람도 소외되었다는 인식을 하지 않을 때 건전한 사회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요약 : 시편과 잠언은 일상적인 삶과 시련 속에서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도전 과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책을 통해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구상과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에 대한 그분의 특별한 관심을 들여다봅니다. 시편과 잠언은 하나님이 무시당하고 착취를 당하는 자들을 주목하시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하실 것이라고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라면 우리도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분명해집니다.


김명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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