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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인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질문, 대답, 설명)0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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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9-02-02 08:19 조회2,4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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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인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2월 9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4분

 

● 연구 범위 : 계 7장, 벧후 3:9~14, 신 8:11~17, 계 14:4~5, 12, 계 17:5, 롬 3:19~24

● 기억절 :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우리는 일곱 인의 개봉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이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든지 아니면 불신실함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을 것임을 본다. 처음 네 개의 인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적인 혼수상태에서 깨우고 승리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징계의 도구들을 묘사한다. 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복음에 적대적인 세상에서 불의와 압제로 고통을 받기도 한다. 여섯째 인을 뗄 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해롭게 했던 자들을 다룰 준비를 갖추신다.

계시록 7장은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 삽입된 막간과 같다. 여섯째 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안내한다. 심판을 맞이하여 ‘누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설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 악인들의 질문에 계시록 7장은 ‘하나님께 인을 받은 십사만 사천 인이다’라고 대답한다. 십사만 사천 인의 특징은 계 14:1~5에 요약되어 있다.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도 막간이 있다(계 10:1~11:14). 2차 대각성과 재림 운동의 태동으로 시작하는 이 막간은 계시록 7장이 그리는 장면들과 시대적으로 상응하며 마지막 때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험과 임무에 초점을 맞춘다.

 

학습목표

 

깨닫기 : 하나님의 인의 의미와 인을 받은 백성들의 특징을 이해한다.

느끼기 : 우리가 입은 의의 옷이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흠 없고 깨끗하게 보존되기를 소망한다.

행하기 : 구원의 모든 공로를 하나님께 돌리고 어린 양의 인도를 충실하게 따르기로 결심한다.

 

➋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의 이마에 그분의 소유를 나타내는 표시를 합니까?

※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

➌ 하나님은 왜 인 치는 사업이 끝날 때까지 재앙을 억제시키십니까?

※ 인치는 일에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➍ 그대는 144,000인들과 환난에서 나오는 큰 무리가 어떻게 구별된다고 생각합니까?

※ 나는 동일인으로 보지만, 교과는 각각 다른 무리로 가르친다. 큰 무리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이라고 하고 144,000인은 특별한 시대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➎ 144,000인들의 특징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기를 배우자.

➏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을 반사할 수 있을까요?

※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진정으로 거듭나야 한다.

 

결론 :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이마에 인치시며 영적인 싸움에서 그들을 보호하십니다. 그들은 어린 양의 편에 굳게 서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말과 행실에 흠이 없고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와 구원의 경험을 새 노래로 표현합니다.

 

 

첫째 날 2월 3일(일) 바람을 억제함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계 7:3).

 

계 7:1~3을 벧후 3:9~14과 함께 읽어보라. 요한은 무엇을 보는가? 천사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바람을 붙잡도록 명령을 받았는가? 인치는 작업이 마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계7:1~3]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밷후3:9~14]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답: 사방 바람을 잡고 있는 천사를 보며,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인치는 것이 마칠 때까지 바람을 붙잡는다. 그 일이 마치면 재림이 있을 것이고 의인의 구원과 악인의 소멸이 있게 된다.

 

구약성경에서 바람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심판을 집행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파괴적인 힘들을 상징한다(렘 23:19~20, 단 7:2).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간의 격정이라는 거센 바람을 막아주지 않으면 각종 투쟁의 요소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14). 하나님의 백성들이 인을 받는 동안에 이러한 파괴적인 힘들은 거룩한 개입에 따라 억제되고 있다.

고대에 인침의 주된 의미는 소유권에 관한 것이었다. 신약성경에서도 인침의 상징적인 의미는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딤후 2:19)는 뜻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아시며 그들을 성령으로 인을 치신다(엡 1:13~14, 4:30).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그분의 신실한 백성들은 이마에 인을 받는다(계 14:1, 12). 그것은 실제로 눈에 보이게 이마에 찍히는 표시가 아니다. 엘렌 G. 화잇이 설명하듯이 그것은 “지적으로 영적으로 진리 안에 안착함”을 의미하며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요동하지 않게 된다(참고, 마지막 날의 사건들, 220). 반대로 끝끝내 짐승의 편에 서는 자들은 짐승의 표를 받는다(계 13:16~17).

하나님의 인을 받은 백성들의 믿음은 각 시대마다 시험을 받아왔다. 그러나 마지막 위기의 때에 닥칠 믿음의 시험은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느냐의 여부가 될 것이다(참고 계 12:17, 14:12). 특히 넷째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계 14:7). 성경 역사의 각 시대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표징이었기 때문에(겔 20:12, 20, 히 4:9~10) 마지막 위기의 때에도 그것은 하나님께 충성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징이 될 것이다.

 

<부가설명> 우리가 계시록의 바람을 잡는 장면을 연구할 때 먼저 바람을 잡아주는 목적으로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바람은 전쟁이라는 일반적인 해석으로 여기 바람 잡는 것도 같은 것이라고 하면 목적을 생각하지 않고 해석하는 것이 된다. 바람을 잡아주는 목적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그분의 백성들의 이마에 인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인치는 것과 관련하여 바람을 잡아주는 것이기 때문에 인 치는데 방해 되는 것을 붙잡아 인을 잘 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바람잡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전쟁이 인치는 것을 돕는 일이라면 전쟁이 발생하는 것을 그냥 둘 것이고, 어쩌면 전쟁이 일어나도록 도울 수도 있을 것이고, 전쟁이 인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전쟁을 저지할 것이다. 

  성경에 이런 예가 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 다니는 중에 한 번은 다윗 일행이 사울의 군사들에게 완전히 포위당하였다. 그들이 피할 길이 없었다. 그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였다. 사울은 그 침공을 물리치는 일이 급했기 때문에 다윗 포위를 풀고 돌아갔고 다윗은 안전하게 되었다.(삼상23:19~29) 다윗을 그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고 이름 했다. 뜻은 ‘분리의 바위’이다. 다윗 일행과 사울의 군사들을 분리시켜서 다윗을 보호했다는 의미이다.

  루터의 종교개혁 때에도 독일 황제가 개혁운동을 저지하려고 힘을 모을 때마다 천쟁이 일어났다. 아마도 다섯 번인가의 전쟁이 있어서 마침내 병력 충당을 위해서도 개신교 세력과 화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개신교를 인정하고 개혁운동을 국가적으로 저지하는 일을 그치게 하였다. 이런 때는 전쟁하도록 두는 것이 바람을 잡는 것이었다. 마지막 때에 천사가 바람을 붙잡는 것은 하나님의 인 맞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분리하는 작업의 하나인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재앙의 요소를 억제하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그분께 충성하는지를 지켜보신다.

 

 

둘째 날 2월 4일(월) 하나님께 인을 받은 백성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계 7:4).

 

1. 계 7:4~8을 읽어보라. 하나님의 인을 받은 백성은 몇 명인가? 그 숫자의 의미는 무엇인가?

[계7:4~8]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5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답: 144,000명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완전성을 표상한다.

 

인 맞은 자들의 숫자를 선포했다는 것은 인치는 사업의 완성을 의미한다. 요한은 그들의 숫자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따라 십사만 사천이라고 들었다.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문자적인 숫자가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어떤 것이다. 144,000은 12×12×1,000이다. 열둘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한다.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였고, 교회도 열두 사도의 토대 위에 건설되었다(엡 2:20). 따라서 십사만 사천은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들의 총체성, 즉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포함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며, 죽지 않고 변화를 입게 될 “모든 이스라엘”을 상징한다(롬 11:26, 고전 15:51~53).

계시록 7장에 열거된 열두 지파는 확실히 문자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북방과 남방 왕국을 포괄하는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방 이스라엘을 이루던 열 지파는 앗시리아의 지배 기간에 포로로 끌려가서 다른 민족들과 섞였다(왕하 17:6~23). 따라서 오늘날의 유대교는 열두 지파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계시록 7장이 열거하는 열두 지파의 명단은 성경에서 제시하는 명단과 같지 않다(비교 민 1:5~15, 겔 48:1~29). 심지어 유다는 르우벤 대신 첫째 지파로 열거되었다(비교 민 1:5). 그리고 단과 에브라임 지파는 민수기 1장과 에스겔 48장에는 포함되었지만 계시록 7장의 목록에서는 누락되었고 반면 레위와 요셉이 포함되었다(계 7:7~8). 계시록 7장의 목록에서 에브라임과 단이 빠진 이유는 구약시대에 두 지파가 배도와 우상숭배를 자행했기 때문이다(왕상 12:29~30, 호 4:17).

계시록 7장에 나열된 지파의 목록은 역사적이라기보다는 영적이다. 단과 에브라임의 배제는 이 두 지파와 같은 불충실함은 인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는 발붙일 곳이 없다는 뜻이다. 또한 신약시대의 교회가 마치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처럼 언급되기도 한다(약 1:1). 따라서 계시록 7장에 등장하는 열두 지파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여 마지막까지 인내하는 하나님 백성 전체를 상징한다.

 

<부가설명> 인 맞은 사의 수가 실제 수인가? 상징 수인가? 상징 수라면 또 어떤 상징인가? 이런 문제는 아직도 교단 안에 통일 되지 않는 논의 중에 하나인 것 같다. 한 때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 야곱의 환난을 통과한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의인들의 실제 수라고 주장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 지금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상징 수라고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교과 저자도 지적했듯이 이것이 실제 수가 되려면 이스라엘 사람도 실제적으로 민족적 이스라엘이 되어야 합리적이다. 그런데 12지파 이스라엘 민족은 없다. 이스라엘 지파 이름을 일일이 열거한 것 자체가 상징적인 숫자임을 나타낸다. 이스라엘 12 지파가 상징이기 때문이다. 또 12는 선택수이다.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이 12지파이고 선택된 예수님의 제자도 12명이다. 그래서 선택된 수 x 선택 수는 완전한 선택 수라고 이해된다. 즉 구원받아 완전케 된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은 원래 13지파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야곱의 아들 12명과 요셉의 아들 둘이 한 지파씩 차지하고 요셉의 이름을 빠졌고, 레위지파는 땅을 상속받지 않았기 때문에 12지파 이름에 들지 않았다. 12지파는 이스라엘 민족의 국토 분배의 숫자이다. 쉽게 말하면 12지파는 열두 도(道)가 된다. 경기도, 강원도 하듯이 지파는 도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야곱의 열한 아들과 요셉의 두 아들이 각각 한 도씩 차지했으니 모두 13도가 되어야 하는데 레위에게는 땅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레위 도가 없다. 그러나 12지파(도) 안에 레위 지파의 상속이 48성이 있다. 레위 자손들은 각 지파(도)에 흩어져서 그 지방의 종교와 신앙교육을 담당했다. 14지파이지만 레위가 빠지고 요셉의 이름이 빠지고 아들들이 한 지파씩 차지했기 때문에 모두 12지파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12지파 안에 다 있다. 그러므로 12지파라고 하면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뜻하는 말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파와 에브라임지파 이름이 빠져도 12라는 숫자는 동일하다. 나는 이 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름이 들어있든지 빠졌든지 12지파라고 하면 이스라엘 민족 전체라고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신학자들은 이 두 지파가 빠진 이유를 찾느라 고심한다. 내 생각은 그것은 쓸데없는 노력으로 본이다. 12지파 하면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을 뜻하니까. 그러면 이 144,000명은 구원받은 사람 전체인가? 화요일 부가설명에서 생각해보자.

 

교훈 : 하나님께 인을 맞은 십사만 사천 명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며 그들의 소속을 나타내는 열두 지파 역시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셋째 날 2월 5일(화) 큰 무리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계 7:10).

 

1. 계 7:9~10을 읽어보라. 이 시점에서 요한은 어떤 성도의 무리를 보는가? 그들은 어떻게 묘사되었고 어디에서 나온 자들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무엇을 외치고 있는가?

[계7:9,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답: 흰옷을 입은 셀 수 없는 무리들을 봤는데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왔고 보좌 앞에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외친다.

 

요한은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를 보았다.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계 7:14)다. 그들은 어떤 환난이 닥치더라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킨 특별한 백성의 무리이며 그들이 입은 옷은 어린 양의 완전한 의를 통해 나타난 그들의 신실함을 상징한다. ‘환난’이라는 단어는 신자들이 믿음 때문에 겪는 일들을 가리키기 위해 성경에서 매우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다(예, 출 4:31, 시 9:9, 마 24:9, 요 16:33, 롬 5:3). 따라서 어떤 재림교회 주석가들은 이 무리를 십사만 사천의 또 다른 표현으로 간주할지라도, 우리는 이 “큰 무리”를 각 시대에 믿음 때문에 고통을 당했지만 구원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했던 요한의 설명 가운데서 은혜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이라는 성경의 위대한 진리를 볼 수 있다. 구원을 받은 자들이 영생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은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의’뿐이다.

“보좌 가장 가까이에는 한때 사탄의 사업에 열렬했으나 지금은…깊고 열렬한 헌신의 마음으로 구주를 따르는 자들이 있다. 그다음에는 거짓과 불신 가운데서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한 사람들과, 그리스도교계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폐기되었다고 주장할 때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한 사람들과, 각 시대를 통하여 믿음을 위하여 순교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각 시대의 대쟁투, 665).

 

<부가설명> 계시록 7장에 나오는 144,000명과 셀 수 없이 많은 흰옷 입은 큰 무리에 대하여는 아직도 완전히 통일된 견해가 정립되지 않았다. 이 교과 저자는 구원받은 모든 무리라고 해석하였다. 저자의 표현대로 재림교회 안에 144,000명의 다른 표현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많다. 왜 그럴까? 단지파 에브라임지파가 빠진 것을 그 지파들의 행사들을 열거하여 그런 성향의 사람들은 이 무리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설명하는데 이런 설명은 열두 지파 사람들의 이름과 행사를 성도들에게 적용하는 해석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전체로 보면 무리한 해석이라고 여겨진다. 월요일 부가설명에 말했듯이 12라는 숫자 안에 이스라엘 전체가 포함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지면이 제한되어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다. 그리고 흰옷 입은 무리와 144,000명이 동일인들인가라는 문제도 계시록의 기록 방법이 듣게 하고, 보게 하는 패턴이다. 들으니 144,000인데 보지 셀 수 없이 많은 무리다. 이것은 현실적으로도 그렇다. 144,000을 한꺼번에 보면 셀 수 없는 무리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하늘에서 숫자를 들려주면 세지 않아도 그 수를 알 수 있다. 들려준 다음에 요한이 보니 셀 수 없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동일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인데, 그들은 계시록 기록의 패턴이 그렇게 때문에 이 이해가 옳다고 말한다. 또 인치는 사업이 역사적 특정 시기에 있는 특별한 사업인가? 아니면 아담이 타락한 이후 모든 시대에 대한 것을 여기 기록했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또 이 무리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있어서 밤낮 하나님을 섬긴다.(계7:15)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는가? 전 역사를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이 밤낮 성전에서 사는가? 신천지가 된 지구의 다른 지역은 비어있는 것인가? 이런 문제들을 종합해서 보면 흰옷 입은 무리와 144,000명은 동일인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 아닐까? 필자는 그렇게 이해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적으로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 있는 사건이다. 바로 이 시대의 사건이다. 이 시대의 남은 자들에 대한 상징적 숫자라고 믿는다. 연구해 보시라.

 

교훈 : 계시록은 십사만 사천 인 다음에 흰 옷을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난에서 나오는 셀 수 없는 규모의 구원 받은 자들을 소개한다.

 

 

넷째 날 2월 6일(수)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4~5).

 

1. 계 14:1~5을 읽어보라. 십사만 사천 성도의 주요한 세 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그 특징들은 계 14:12에서 말하는 마지막 때의 성도들에 대한 설명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계14:1~5]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여자와 더럽히지 않았다. 정절이 있다. 어린양이 인도하는 대로 따른다. 입에 거짓이 없다. 흠이 없다.(성구에 기록된 것은 5가지이다.) 이런 특성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 있는 특성이다. 

 

계 14:4~5은 십사만 사천 인에 대한 설명인데 그것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계 14:12) 자들의 노선과 같다. 비록 마지막 위기의 때에 사탄의 분노를 최대치까지 겪어야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 때문에 굳세게 남았다.

 

2. 계 17:5에 비추어볼 때, 십사만 사천 인이 여자들과 더불어 더럽혀지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품성의 순결함은 그들이 땅에서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구속함을 받았다는 사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계 14:4)

[계17: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답: 정치적 종교단체에 가입하는 일이 없는 순수한 성경적 신앙을 지킨 것을 뜻한다. 또 이 땅에 있는 교회 중에 정치적인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가장 좋은 믿음의 상태를 상징하는데 특히 환난의 시대에 그 순결을 잘 지킨 것을 암시한다.

 

성적인 부도덕함은 하나님께 대한 불충성의 상징이다. 계 17:5은 세상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간음을 저지르게 하는 종말 시대의 음녀 바벨론과 그 딸들에 대해 말한다(참고 계 18:3).

그러나 십사만 사천 인은 바벨론 및 타락한 교회와의 부정한 관계를 거부하고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계 14:4)들이기 때문이다.

십사만 사천 인은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계 14:4)이라고 묘사된다.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 첫 열매는 하나님께 바쳐지는 수확물 중에서 가장 좋은 열매였다(민 18:12).

“처음 익은 열매”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 중에서 구원을 받은 두드러진 백성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계시록에서 십사만 사천인은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를 입을 특별한 무리라고 할 수도 있다(고전 15:50~52 참고). 따라서 그들은 각 시대로부터 구원을 받은 거대한 수확 중에서 ‘가장 좋은’ 열매들이다(계 14:14~16 참고).

 

<부가설명> 교과는 144,000명을 특별한 무리로 규정하고 있는데, 예수님 재림하실 때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서 구원받는 무리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견해를 좋아한다. 또 특별부활에 참여한 무리들도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초기문집에 재림하실 무렵 살아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약속의 음성을 듣고 기뻐하는데 그들이 144,000인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 중에는 특별부활에 참여한 의인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사실을 자세히 몰라도 괜찮다. 우리는 매일매일 예수님 안에서 정결한 믿음으로 생활하면 되기 때문이다.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항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재림하실 때 아직도 살아있는 상태라면 그때 죽음을 보지 않고 재림을 맞을 것이며, 주님 안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특별부활에 참여하여 재림을 맞을 것이며, 첫째 부활에 참여해도 재림하시는 광경을 보지 못하는 것 외에는 재림을 맞이하는 것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죽음을 보지 않은 자들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교훈 : 십사만 사천 인은 음녀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고 순결한 믿음을 지키며, 어린 양께 충성을 다하고,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를 입은 처음 익은 열매이다.

 

 

다섯째 날 2월 7일(목)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5).

 

1. 계 14:5을 벧후 3:14, 유 24~25과 함께 읽어보라. 계시록은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들을 흠이 없는 자들로 묘사한다. 우리는 어떻게 그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까?

[계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유 24,25]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답: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십사만 사천 인의 마지막 특징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계 14:5)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사탄의 거짓말을 믿기로 선택하는 동안 언행에서 거짓이 없는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들은 진리의 사랑을 받아 구원을 받을 것이다(참고 살후 2:10~11).

‘흠이 없다’(그리스어로 ‘아모모스’)는 말은 그리스도께 대한 십사만 사천 인의 충절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해지라는 요구를 받는다(레 19:2, 벧전 2:9). 아브라함(창 17:1)과 욥(욥 1:1)은 흠 잡을 데가 없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하며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이 살라는 요구를 받는다(엡 5:27, 빌 2:15).

 

2. 롬 3:19~24을 읽어보라. 우리는 왜 항상 이 중요한 진리를 마음에 간직해야 하는가?

[롬3:19~24]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답: 우리의 의와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상 역사가 마치는 즈음에 십사만 사천 인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반영할 것이다. 그들의 구원은 그들 자신의 경건이나 행위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그들 안에서 행하신 일들을 반영할 것이다(참고 엡 2:8~10). 십사만 사천 인은 어린 양의 피로 그들의 두루마리를 씻어서 하얗게 빨았기 때문에(계 7:14) 하나님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벧후 3:14)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 구주의 형상을 반사하게 되기까지 모든 세속에서 정련되고 정결케 되어야 하며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생애의 투쟁이 끝날 때, 무기를 예수님의 발 앞에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성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 그때에야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며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3권, 355~356).

 

<부가설명> 의와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에 속한다.(사45:8)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노력으로 의롭게 되거나 구원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창조주의 영역에 자기를 들여놓으려는 것이 된다. 그것이 바로 루시퍼가 한 짓이다. 구원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사람이자,(고후5:17)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이다.(엡4:18, 요일3:9 참조) 하나님께서 심판 때에 그리스도인을 살필 때 그는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에는 예수님이 보인다. 그분은 점도 없고 흠도 없으신 분이다.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 안에 있지 않고, 예수님이 그 안에 계시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점도 없고 흠도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흠도 없고 점도 없이 즐거움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조사심판의 때에 이 세상에 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살피셔도 아무리 봐도 예수님만 보인다. 그렇게 온전히 정결한 상태를 우주 앞에 제시하며 하나님이 하신 공의를 드러내실 것이다. 예수님 안에 있자. 그것을 날마다 확인하자. 

 

교훈 : 십사만 사천 인의 성품에 흠이 없게 된 이유는 그들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음으로 그분의 성품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날 2월 8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가려 뽑은 기별 3권>, 353~357 ‘죄 없음과 구원’을 읽어보라.

 

십사만 사천 인의 정체는 뜨거운 논란거리이다. 계시록에서 그들은 지구 역사가 마쳐지는 시대에 사는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들이 환난의 때를 지나고 일곱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을 안다(시 91:7~16 참고). 그리고 그들의 충성심은 이전의 세대가 겪어보지 못한 시험을 받게 될 것도 안다.

정확히 누가 그 무리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는 우리에게 계시되지 않았다. 그들의 정체는 하나님이 은밀하게 감추시는 것 중 하나이다(신 29:29). 나중에야 구원받은 이 성도 중에 누가 포함될지 드러날 것이다. 이 비밀에 관하여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가 주어졌다.

“하나님께서 웅대하고 고상하며 고결케 하는 진리를 주셔서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보물 창고에 언제나 그것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셨건만 교회 안에 허탄한 이야기들과 가설적인 이론들을 가르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이 이론 혹은 저 이론을 선택하며 그들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하여 알고 싶은 호기심을 갖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일이 아니다. 그분의 백성들이 상상의 힘을 빌어야 하고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들을 증언※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계획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십사만 사천 인에 속하게 될 것인가 하는 등의 영적으로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문제들을 가지고 신자들이 논쟁을 벌이게 되는 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잠시 후에 틀림없이 알게 될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17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우리는 어떻게 144,000인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러한 소망은 우리의 매일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충성하는 사람들이다. 이 소망은 우리가 날마다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부를 확인하게 한다.

 

➋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볼 때, 현재의 영적인 생활은 하나님과의 신선한 경험의 노래에 어떻게 반영이 됩니까? 만약 그대의 노래가 현재 이루어지는 헌신의 증거가 아닌 과거에 하나님이 동행하셨던 묵은 이야기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까요?

※ 우리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한 것을 깨닫고 그의 나라와 그의 구하는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며 성령의 인도로 순간순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 경험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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