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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예배를 통한 연합(질문, 대답, 설명) 12/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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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12-07 21:00 조회1,5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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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15분

 

● 연구 범위 : 계 4:8, 11, 마 4:8~9, 단 3:8~18, 계 14:9, 계 14:6~7, 행 4:23~31

 

● 기억절 :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6~7).

 

오순절 이후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2). 구약이 예언했던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이러한 위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특권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그분의 생애와 죽음, 부활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고 그들의 삶에서 이루신 일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원했다. 그래서 함께 기도와 말씀 연구, 친교의 시간을 보낼 필요성을 느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벧전 2:5)이 되라고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예배 공동체이다. 공동체와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때 우리는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품성을 본받게 되며 봉사를 위해 준비된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참예배를 정의하고 대쟁투의 맥락에서 그 의미를 이해한다.

느끼기 :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에 대해 경외심과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

행하기 :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한다.

 

➋ 예배란 본질적으로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 창조와 구속의 주님께 감사하는 정신으로 성도들이 연합하여 경배하는 것이다.

➌ 세 천사의 기별 중 첫째 천사의 기별은 예배의 중요성에 대해 어떻게 강조합니까?(계 14:6~7)

※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에 창조주를 경배하라고 강조한다.

➍ 그대가 배운 성경의 교훈에 따르면 예배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함께 모이는 것, 기도, 성경공부, 찬미, 친교 등등이다. 

➎ 어떤 면에서 개인 예배뿐 아니라 소그룹과 대그룹 예배가 우리의 신앙에 필수적일까요?

※ 교회의 연합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때 성령 안에서 참된 친교를 맛보아야 한다.

 

결론 : 예배는 존경과 경의를 표하며 섬김과 순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구원의 사역을 보고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12월 9일(일) 우리 창조주와 구속주께 예배함

 

우리는 예배에 대해 토의할 때 주로 예배의 요소들 즉 예배에 무엇이 포함되며 순서는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강조한다. 그러나 예배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다윗은 시편 29:2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이 말씀은 예배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바른 방향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그분께 합당한 영광과 존경을 바친다는 뜻이다.

 

1. 요한계시록 4~5장을 읽어 보라. 우주의 거주민들은 어떤 이유 때문에 하나님과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 경배하는가?(계 4:8, 11, 5:9~10, 12~13 참고)

[계4:8,11]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5:9,10,12,13]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답: 창조와 구원이다.

 

하늘 보좌가 있는 곳에서 장엄한 예배의 경관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과 세상의 구주로 소개된다. 세상이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들로 인하여 그분께 경외와 감사의 언어로 반응할 때 예배는 이뤄진다. 즉 예배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에 감사하는 피조물의 반응이다. 세상이 끝나면 구원을 받은 이들은 다음과 비슷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경축하며 예배할 것이다.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계 15:3~4).

따라서 예배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반응이다. 그분은 먼저 우리를 창조하셨고 또한 속량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경배, 경의, 찬양, 사랑, 순종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라고 믿기 때문에 예배를 통해 그것들을 그분께 드린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말씀을 통해 그분이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속주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들은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을 통해 더 온전하게 계시되었다(요 14:8~14 참고).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구주요 구속주로 경배한다. 그분의 희생적인 죽음과 부활은 예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의 예배는 이러한 경외심과 감사함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부가설명> 예배의 기초에는 감사하는 정신이 있다. 우리가 안식일에 예배하든지 가정에서 예배하든지 예배의 기초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정신이 있다. 그 감사의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셨다는 인식과 믿음이다. 첫째는 창조로 우리를 존재하게 하셨고, 사람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김으로 다시 사망이 되었을 때 구속으로 우리를 다시 하나님 앞에 존재하게 하셨다. 그래서 예배에는 창조와 구속의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정신으로 충만해야 한다. 우리를 존재하게 하셨다는 것은 이 세상에 육체의 생명으로 존재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것은 예수님 없이 예배하지 않는 사람들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기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주어진 현재의 처지에서 죽어가는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으로 새로운 영생의 생명을 얻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생활하는 은혜를 받아 누리는 사람들이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은 첫 사람의 씨를 받은 것 같이 하늘로부터 난 둘째 사람의 생명도 가진 존재들이다. 이 사람들이 진정한 존재자들이다. 그래서 구속은 재창조이다. 결국 예배는 창조와 재창조를 해 주신 창조주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께 생명으로 존재하게 해 주신 은혜를 감사하여 경배하는 것이다. 그분이 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얼마나 위대한 깨달음인가!

 

교훈 : 예배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에 대한 피조물들의 반응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로 인하여 감사와 경외심으로 예배해야 한다.

 

 

12월 10일(월) 거짓 예배

 

1. 마 4:8~9을 읽어 보라.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으신 세 번째 시험은 무엇이었는가?

[마4:8,9]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답: 마귀에게 경배하라는 것이다.

 

사탄은 거만과 오만의 태도로 자신이야말로 세상의 진정한 지배자이자 그 안의 모든 부와 영광의 주인이라고 선포하면서 마치 자신이 세상을 창조한 것처럼 그 안에 거주하는 모든 것들의 찬송과 존경을 요구했다. 그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었다. 사탄은 예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것은 우주의 합법적인 주인에게 영광과 존경을 드리는 것이다.

 

2. 단 3장에 나오는 세 명의 히브리인 친구들의 경험과 계 13:4, 14:9~11에 나오는 종말 세력을 비교해 보라. 마지막 때의 쟁점은 무엇이며 두 기사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단3:1~]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왕이 만든 우상에게 경배하라는 시험의 사건이다.

[계13: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계14:9~11]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답: 우상에게 경배하라는 것이다. 

 

가인과 아벨에서부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3명의 히브리 청년들 그리고 ‘짐승의 표’(계 16:2)를 강요하는 마지막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사탄은 백성들이 참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을 경배하도록 교묘하게 거짓 예배 제도를 수립하려고 한다. 심지어 그는 타락 이전부터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했다(사 14:14). 그 세 청년이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죽음의 위협을 감수해야 했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아 죽음의 위험에 처하게 될 수 있다. 참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부름을 받은 우리가 우상에게 절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히브리 청년들이 두라 평지에서 겪은 경험에서 배워야 할 중대한 교훈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있을 고통의 때에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요구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만이 그들의 유일한 예배의 대상이시다. 거짓 예배에 대해 한 치의 양보도 생각할 수 없으며 비록 생명을 바친다 해도 양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여야 한다. 마음이 충성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죄 많고 유한한 사람들의 명령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에 비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은 비록 투옥이나 추방이나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진리를 순종할 것이다”(선지자와 왕, 512~513).

 

<부가설명> 우리가 진리를 올바르게 가지고 있는 교회에 출석하며 진리를 올바르게 안다고 해도 깨달은 진리를 따라 사상과 감성과 태도와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의 예배가 진정으로 창조와 구원의 주님에게 드리는 것이 안 될 수도 있다. 예배에 자기가 들어있으면 올바른 예배가 될 수 없다. 예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뜻이 바로 하나님 앞에 자아가 부인될 때 참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그랬을 때 참된 예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말씀은 예배하는 사람의 정신과 인격에 대하여 가르치신 말씀이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자기가 행한 것을 은연중에라도 내 비치면 그것은 자기 예배가 된다. 우상숭배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순교는 창조주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가장 극대화된 모습이다. 단 3장의 세 청년을 극대화된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건이다. 그들이 순교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살리시고 왕을 감동시키셨다. 왕만이 아니다. 거기 참석한 모든 관리들이 엄청난 감동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찬양하게 하지 않았겠는가. 예재는 순교적 정신으로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상태이다. 

 

교훈 : 사탄은 거짓 예배 제도를 고안하여 자신이 세상의 창조자와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며 경배를 강요하지만 우리의 유일한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뿐이시다.

 

 

12월 11일(화) 첫째 천사의 기별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계 14:6~12에 있는 세 천사의 기별이 예수님의 재림(계 14:14~20) 전에 그들이 이루어야 할 사명과 기별의 핵심을 묘사한다고 간주한다. 세 천사의 기별은 땅의 모든 거주민들에게 ‘큰 소리’로 전해야 할 중요한 기별이다.

 

1. 계 14:6~7을 읽어 보라. 첫째 천사의 기별은 무엇인가? 그 기별에 따르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 기별에서 경배가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계14:6,7]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답: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으니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기별이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하나님이시다. 창조가 경배의 이유라는 것을 나타낸다.

 

세 천사의 기별 중 첫째 천사의 기별은 온 세상에 한 소식을 선포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마 24:14에서 주신 예언의 성취이다. 세 천사와 그들의 사명에 대한 묘사를 보면 일종의 긴박감과 다급함이 느껴진다. 첫째 천사의 기별은 백성들에게 “심판의 시간이”(계 14:7) 이르렀으니 하나님께 집중하라고 촉구한다. 예수님의 재림이 심판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그 천사는 “하나님을 두려워”(계 14:7) 하라고 말한다. 이 기별과 호소는 하나님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자들의 마음속에 진실로 두려움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이 호소가 경외심과 존경을 가지라는 권유가 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우러러보며 그분의 약속이 성취되는 모습을 바라본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경외심이 그들을 압도한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7). 이 성경절의 언어들은 명명백백하게 창조와 관련된 안식일 계명을 떠올리게 한다(출 20:8~11). 창조의 기념으로 안식일을 제정하신 창조의 하나님은 경배와 존경의 대상이시다.

마지막 때에 예배가 인류의 충성심을 가리는 대쟁투의 핵심 쟁점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전 세계적인 이 선언은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호소이다.

“마지막 위기의 때의 핵심 사안은 경배가 될 것이다. 계시록은 그 시험이 예배의 거부가 아니라 예배의 대상에 관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 마지막 때에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영광을 돌릴 자들(계 11:1, 18, 14:7)과 진리를 거부하고 용과 그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만 존재할 것이다(계 13:4~8, 14:9~11).… 만약 마지막 쟁투에서 예배가 핵심 쟁점이라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의 지구 거주민들에게 그분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분을 창조주요 경배를 받을 만한 유일한 대상으로 여기도록 촉구하는 복음을 전하시는 것은 당연하다.”—Ranko Stefanovic, Revelation of Jesus Christ: Commentary on the Book of Revelation (Berrien Springs, Mich.: Andrews University Press, 2002), pp. 444, 445.

 

 

<부가설명> 첫째 천사의 기별은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에 이제는 창조주를 경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긴박감이 있는 기별이다. 이런 표현은 심판과 창조가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지 않았어도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아직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묵인하셨다.(행17:30, 14:16) 그러나 이제는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에 이 기별을 전파하는 것을 미룰 수 없다는 사상이 드러난 것이다. 심판과 창조주 경배가 관련된 것은 몇 곳이 있다. 벧전4:17~19도 같은 맥락이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하실 때가 되었기 때문에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맡기라고 권고했다. 심판과 창조주를 의뢰하고 경배하는 것을 함께 말씀한 곳이다. 창조주를 경배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제4계명이다. 제7일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킬 이유를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창조주께서 안식하신 사실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을 때에 이 기별을 긴박하게 전하도록 계시한 것은 경배의 대상이 창조주인가? 아니면 가짜 하나님인가? 하는 것이 심판에 중요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제7일 안식일에 진정으로 경배하는 정신을 가지고 예배에 임하는가?

 

교훈 : 첫째 천사는 심판을 앞둔 지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경배하라고 호소하며 경배가 마지막 시대의 핵심 쟁점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12월 12일(수) 성경 연구와 교제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행 2:42).

 

1. 행 2:42을 읽어 보라. 초기 기독교 예배의 요소들은 무엇인가?

[행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답: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며, 친교하며 기도하고 떡을 뗐다. 아마도 애찬과 성찬을 했을 것이다.

 

초창기부터 기독교 예배의 핵심적인 특징은 사도들이 가르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성실하게 연구하였다. 그들은 또한 꾸준하게 친교를 나누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은혜를 공유하고 그분과 영적으로 동행하도록 서로를 격려했다. 그들은 말씀 속에서 거룩한 진리들을 찾았고 그것들을 세상에 전할 기별의 토대로 삼았다.

 

2. 다음의 성경절들에 따르면 성도들이 함께 친교를 나누며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왕하 22:8~13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행 17:10~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딤후 3:14~17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답: 말로할 수 없도록 중요하다. 당연한 것이다. 

 

“복음의 진리가 선포되는 곳에는 어디나 정직하고 바르게 살고자 갈망하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하게 된다. 만일 지상 역사의 이 마지막 장면에서 시험하는 진리를 들은 사람들이 베뢰아 사람의 모본을 따라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고 그들에게 전파된 하나님의 말씀의 기별을 비교하면서 연구한다면 오늘날 비교적 소수밖에 없는 곳에 하나님의 율법의 교훈에 충성하는 큰 무리가 있게 될 것이다”(사도행적, 232).

우리는 우리가 선포하는 진리들 곧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은 진리들로 인하여 연합하게 된 백성이다. 초기 하나님의 교회가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말씀 연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경배뿐 아니라 세상에 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도록 부름을 받은 우리의 연합에도 중요한 구심점을 제공한다. 우리가 친교와 예배를 위해 한 가족으로 모일 때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서 우리의 사명과 재림의 준비를 위해 우리의 삶을 안내해 준다.

 

<부가설명> 성경종교의 중요한 내용 중에 하나가 ‘코이노니아’, 곧 친교이다. 성도의 교제, 또는 친교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 친교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하는 것인데 함께 하게 하시는 역할을 성령께서 맡으셨다. 고후13:13에 그 뜻이 기록되어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성령의 교통하심이라고 했는데, 교통이라고 번역된 말이 ‘코이노니아’이다. 요한일서에는 ‘사귐’이라고 번역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성령의 주관으로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진다. 초기 교회에 끈끈한 친교가 계속된 것은 성령께서 그 교회를 전적으로 주관하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교회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진리로 친교가 왕성하게 된다. 예배 시간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적 친교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재림신자들은 마땅히 공중예배에 참석하여 성도들과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친교하는 복된 경험을 결코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교훈 : 교회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경배하고 성도와 친교를 나누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연구했다. 말씀과 진리는 언제나 교회 연합의 구심점이다.

 

 

12월 13일(목) 떡을 떼며 함께 기도함

 

초기 교회는 어떤 난관에 직면하든지 예수님이 세상에 전하라고 그들에게 위탁하신 진리와 그분에 대한 그들의 공동의 믿음 안에서 연합했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가 ‘현대진리(이미 알고 있는 진리)’(벧후 1:12)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들은 진리 안에서 연합했고, 여러 방식으로 그들의 연합을 나타냈다.

“그들이…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2). 떡을 뗐다는 언급은 아마도 신자들끼리 나누는 친교의 식사 또는 정규적인 공동 식사를 가리키는 듯하다. 애찬을 나눌 때는 누군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고 또한 그분의 신속한 재림을 고대하면서 떡과 음료에 특별한 복을 빌었을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삶과 봉사의 의미를 추억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며 친교의 식사시간에 그것에 관해 대화하기를 즐겼다. 그렇게 함께 나누는 식사 시간도 예배의 순간이 되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47).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친교의 시간은 그들이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연합의 정신을 강화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1. 사도행전에서 함께 기도하는 초기 그리스도인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모본을 배우는가? 그들은 무엇을 위해 기도했는가?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행 4:23~31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행 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초기 교회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소통의 기회를 소중히 여겼으며 함께 모여 예배할 때는 반드시 그분께 탄원을 올렸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첫 번째 서신에서 신자들이 함께 모일 때에 기도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딤전 2:1). 에베소서에서도 그는 기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18~19).

 

답: 마음을 같이 하고, 담대히 말씀을 전하도록 해주시기를 기도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교회의 연합에 가장 중요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부가설명> 예배에는 반드시 기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기록들이다. 예배에는 말씀 연구와 기도와 친교가 필수 요소였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친다. 그러므로 예배에는 함께 모인다는 것이 중요하다. 모이지 않으면 친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도들의 연합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전화나 커톡이나 기타 통신수단으로도 친교할 수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진짜 친교는 직접 만나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이루어진다. 교회는 이런 친교의 모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사교클럽이 아니다. 이 친교에는 요한이 말한 대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하는 것인데 성령이 주관하신다. 거룩함이 있고 은혜가 있고 영원한 생명의 약동(躍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쁨이 있다. 요한은 이 사귐에는 기쁨이 충만하다고 했다.(요일1:1~4) 예배에는 이런 충만한 기쁨이 있어야 한다. 물론 엄숙하고 단정해야 한다. 그러나 내면적 기쁨은 충만해야 한다. 복음은 큰 기쁨의 소식이고 이 복음으로 영생의 생명을 얻었으니 기쁨이 충만한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 기쁨은 찬미로 나타난다. 그래서 초기교회 예배에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있었다.(엡5:19) 우리는 거룩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예배에 임해야 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이런 요소들이 질서 있게 진행되어 창조와 구속의 하나님께 감사가 넘치는 정신으로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해야 할 것이다. 세 천사의 기별은 예배적 입장에서는 예배회복의 기별이기도 하다.

 

교훈 :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식사를 나누며 예수님을 기념했고 함께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으며 예배로 모일 때도 기도하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12월 14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가르쳐 준다. 이것이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기초가 된다. 안식일처럼 이 위대한 진리를 가장 감동적으로 가르쳐 주는 제도는 없다. 제칠일의 예배뿐 아니라 모든 예배의 진정한 기초는 창조주와 피조물을 구별하는 데에 있다. 이 큰 진리는 결코 폐기될 수 없을 뿐더러 망각되어서도 안 된다.’ —J. N. Andrews, History of the Sabbath, chapter 27.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진리를 항상 마음에 간직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시므로, 우리가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는 진리가 존속하는 한 안식일도 그 증거와 기념으로 존속되어야 한다. 만일 인류가 오늘날까지 안식일을 지켜 왔다면 그들의 생각과 애정이 창조주께 집중되어 주님께서는 존경과 예배의 대상이 되셨을 것이며 우상숭배와 무신론자와 회의론자가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안식일 준수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참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기별은 인류에게 특별히 넷째 계명을 지키라는 요구가 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437~43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예배, 창조, 구원의 개념은 서로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식일 예배가 어떻게 거짓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계 14:6~7에서 안식일은 어떤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까? 왜 안식일이 첫째 천사의 기별에서 언급됐을까요?

※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확실히 믿는 증거가 된다. 세상에서 소위 교회가 이 날을 폐기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을 때에 이 기별을 긴급히 전하게 하신 것이다. 

 

➋ 어떤 곳의 교회에서는 예배가 조금씩 잊히거나 간과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맞서기 위해 그대의 교회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 예배의 성경적 참 뜻을 깨닫게 하고 실천하고 증거하는 봉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요약 : 예배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의 반응입니다. 그것은 또한 기독교 공동체의 연합과 친교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기도와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성경 연구 없이는 우리의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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