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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질문, 대답, 설명)1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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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11-23 17:52 조회5,3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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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14분

 

● 연구 범위 : 요 11:51~52, 엡 2:13~16, 고후 5:17~21, 엡 4:25~5:2, 롬 14:1~6, 행 1:14

 

● 기억절 :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요 11:51~52).

 

지난주에 우리는 마지막 시대에 강조되어야 할 성경 진리들을 중심으로 한 공통의 기별과 우리 구주 예수님을 통해서 교회의 연합이 어떻게 가시화되는지를 공부했다.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별과 그것을 세상에 전하라는 부르심으로 결정된다.

이번 주에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표현되는 교회의 연합과 사명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화목의 기별을 단순히 선포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의 연합 자체가 그러한 화목의 본질적인 표현이다. 죄와 반역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능력을 보여주는 가시적인 증거로 서 있다. 공통적인 증언을 통한 교회의 하나 됨과 결속 없이는 세상에서 십자가의 능력은 분명해지기 어렵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은 성도 상호간에 연합하는 접착제를 만드는 것이다. 성도들이 이와 같이 하나 된 모습은 그리스도의 위엄과 덕 그리고 죄를 지고 가시는 그분의 능력을 세상에 보여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이다”(화잇주석, 요 17:20).

 

※ 학습 목표

깨닫기 :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교회의 연합을 보여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임을 이해한다.

느끼기 : 내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의 특성과 영향을 평가할 필요성을 느낀다.

행하기 : 삶 자체가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증거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나를 통하여 일하시기를 기도한다.

 

➊ 화목한 가정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사랑과 연합이다.

➋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고후 4:17~19)

※ [고후5:17~19]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사명이다.

➌ 우리가 교회 연합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우리 안에 있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➍ 초기 교회에서 선교 사명은 그들의 연합에 얼마나 중요한 동기였을까요?(행 1:14)

➎ 초기 교회의 증언과 선교와 봉사에 설득력이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행 2:46~47)

➏ 우리가 어떤 사명과 봉사로 연합할 때 세상은 우리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께 감동을 받게 될까요?

 

결론 : 가시적인 연합은 구원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믿음을 표현할 때 생기는 새로운 정체성으로부터 자라납니다. 우리와 다른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모습은 그 연합의 실체를 보여주며 하나님의 성품과 우리를 변화시키는 그분의 능력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가 됩니다.

 

 

11월 25일(일)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8, 10).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주시는 여러 영적인 복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연합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연합은 인간의 노력과 선행과 계획의 결과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러한 연합을 창출하신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침례를 통해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그리고 우리가 공동체의 친교에 연합하고 세상에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할 때, 우리는 그분과 연합하고 서로와 연합하는 것이다.

 

1. 요 11:51~52과 엡 1:7~10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생애에서 발생한 어떤 사건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가운데 형성된 연합의 기초가 되는가?

[요11:51,52]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엡1:7~10]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답: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다.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요 11:51~52). 하나님이 가아뱌를 사용하셔서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셨다니 얼마나 기이한 상황인가! 심지어 가야바는 예수님에게 사형을 언도하면서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진술에 얼마나 심오한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단지 정치적인 진술을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요한은 그의 진술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이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진리를 드러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언젠가 모여서 하나가 될 것이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로서 우리가 무엇을 믿든지, 우리만 전하는 기별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연합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동일한 믿음에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러한 연합을 침례를 통해서 경험한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6~27). 침례는 재림신자들이 공유하는 또 다른 연결고리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상징한다. 우리에게는 한 아버지가 계신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다. 또 우리에게는 한 구주께서 계신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여 침례를 받는다(롬 6:3~4).

 

<부가설명>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한 사실의 결과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을 때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애가 넘쳐야 한다. 깊이 생각해보면 교회가 연합하지 못하는 것은 가족 중에 사랑으로 연합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일반적인 가족 사이에도 그런 현상이 있다. 그러면 온 가족이 아프게 된다. 무늬만 가족이지 사상이나 사고방식이 가족이 아닌 것이다. 그럴 때에 그런 사람은 가정에서 떠난다. 가정의 분위기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진리교회는 교인 개개인이 확실한 성경진리에 굳게 서야 한다. 그래서 사상이 일치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교회는 순수하게 성경에 입각하여 교리가 정리되어야 한다. 교리에 비성경적 요소가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떤 교리라도 성경으로 분명하게 정립되어야 한다. 교리에 대하여 물을 때 ‘기록되었으되’라는 대답으로 기록된 말씀을 올바르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진리의 교리가 확실히 인식되면 하나가 되는 힘이 된다. 보혈로 형성된 하나님의 권속으로 하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훈 : 구원이 오직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교회의 연합도 인간의 노력이 아닌 그분의 희생에 대한 동일한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11월 26일(월) 화목의 사역

 

우리 세상은 무질서, 소란, 전쟁, 갈등투성이다. 이 모든 요인들은 개인과 사회와 국가 등 모든 차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때로 우리의 삶 전체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불화와 무질서가 세상을 영원히 장악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주적인 연합을 가져오기 위해 일하고 계신다. 죄는 불화를 가져왔지만 화목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평화와 온전함을 가져온다.

엡 2:13~16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신자들 사이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하셨는지를 보여주는 원칙들을 제시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한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들을 분리시키는 민족적, 종교적 장벽들을 제거하셨다. 예수님이 1세기에 살았던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이렇게 하실 수 있었다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나누는 인종, 민족, 문화적인 장벽들도 제거하실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바로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1. 고후 5:17~21을 보면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진술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역은 무엇인가? 하나로 연합한 교회로서 우리는 지역사회에서 어떤 새로운 일을 행할 수 있는가?

[고후5:17~21]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며, 잘 연합된 교회로서 지역사회의 새로운 피조물의 실상을 드러내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된 신자들은 3가지 의미에서 화목의 사역으로 부름을 받는다. ⑴ 우리 교회는 비록 이전에는 하나님과 멀었지만 그리스도의 희생의 은혜를 통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과 연합한 신자들로 구성되었다. 우리는 남은 자로서 세상에 마지막 시대의 기별을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우리의 사역은 아직도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는 자들을 권하여 그분과 화목하게 하고 우리의 사명에 동참시키는 것이다. ⑵ 교회는 또한 서로 화목을 이룬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는 것은 서로 연합했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저 높은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가시적인 실재이다. 서로 화목하고 형제와 자매 사이에 평화와 조화를 이루는 것은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주시며 구원자이심을 보여주는 틀림없는 증거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⑶ 교회는 이러한 화목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진실하며 효과적이라고 세상을 향해 말한다. 대쟁투는 하나님과 그분의 성품에 대한 것이다. 세상은 교회가 연합과 화목을 고취시키는 만큼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로 되는 일들을 볼 수 있다(엡 3:8~11).

 

<부가설명> 성경은 화목할 수 없는 요소들에 대하여 가르쳐준다. 가라지와 곡식, 그리스도와 벨리알, 성령의 전과 우상,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의와 불법, 빛과 어두움(고후6:14~16) 소위 교인이라고 하면서 그들 중에 가라지가 있고, 벨리알이 있고 우상이 있으며 불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말씀이 아니겠는가? 성경 지식은 많은데 성경말씀이 생활에 경험되지 않으면 고등 가라지가 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지식이 표준이 되어 그것을 사람들을 판단한다. 이런 일이 교회 안에 생기면 교회가 연합하는데 엄청나게 방해하게 된다. 또 교회 사업을 하면서 개인의 의사를 관철하려고 할 때도 연합을 해치게 된다. 이기심이 강하게 나타나면 연합이 되지 않는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헌신하는 신자들 사이에 이기심이 끼어들려는 사건이었다. 교인 각자는 이런 문제들을 정직하고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각 신자는 자기 속에 있는 이런 요소들을 성령의 역사로 제거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우리는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하나님과 소원(疏遠)한 자들을 그분께로 화목시키고 우리도 서로 화목하며, 그분의 구원과 성품의 진실성을 증언할 사명이 있다.

 

 

11월 27일(화) 실제적인 연합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엡 5:1).

 

1902년에 엘렌 G. 화잇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이 지상에서 보이신 삶을 본받아야 한다. 흠 없는 순수함뿐 아니라 인내하고, 친절하며, 매력적인 성품에 있어서 그분은 우리의 모본이시다”(Signs of the Times, 1902년 7월 16일). 이 증언은 바울이 빌립보 신자들에게 보낸 호소를 떠올리게 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1. 엡 4:25~5:2과 골 3:1~17을 읽고 다음의 두 질문에 답해 보라. 우리는 특별히 삶의 어떤 영역에서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충절을 보이도록 권고를 받고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각자의 공적인 삶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드러내는 증인이 되어야 하는가?

[엡4:25~5:2]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5:1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골3:1~1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11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답: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때에 예수님께 충절을 드러내어야 한다. 사랑과 용서와 평강의 삶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드러내어야 한다.

 

성경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 보이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유하는 말씀들이 많다.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라고(마 7:12), 서로 다른 사람의 짐을 져 주며(갈 6:2), 외모 대신 내적인 영성에 초점을 맞추어 단순한 삶을 살고(마 16:24~26, 벧전 3:3~4), 건강한 생활 습관을 따르라는(고전 10:31) 권고를 받는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1~12).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성품이 우리를 지켜보는 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분노의 순간 나타내는 인내, 긴장과 갈등 중에 드러나는 통제된 삶, 참을성 없고 거친 언사에 대응하는 온화한 태도는 예수님의 정신이 우리에게 깃들어 있다는 표징들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분이기 때문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고 있는 세상에 그분의 복음을 함께 증언할 때 우리는 선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하나의 세력이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들로서 도덕적인 청렴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우리의 실제적인 관심으로 우리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 우리의 신앙이 진실하다면 그것의 진실성은 그 자체로 드러날 것이며 세상에 감화를 끼칠 것이다. 세상에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신자들로 연합한 교회는 정말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부가설명> 진리를 생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쉽지 않다. 모든 것이 진리를 거슬리는 제도요 사물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가지고 사는 동안에는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 순진하고 정직하게 생활하려면 상처입고 손해보고 억울한 경험들을 하게 되는 세상이다. 그럴지라도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모습으로 이웃과 함께 해야 한다고 성경이 가르친다. 그래서 어렵다. 생활자체가 환난이 되는 세상이다. 교회가 예수님의 생명으로 연합된 사랑의 삶을 나타내면 이런 세상에 함께 살아가는 힘이 된다. 교회가 진리로 굳게 연합하여 공동생활정신을 발휘하면 세상을 이기는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은 이런 사실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 되라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시고 권고하신 것이다. 성도들은 마땅히 예수님께 충성하고 사랑과 용서의 정신으로 이웃에게 봉사하여 예수님의 정신이 어떤 것인지 증거 하는 존재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령께서 이끌어주실 것이고 주님의 생명이 능력으로 작용하실 것이다. 교회가 이렇게 되기를 주님께서 열망하시지 않으시는가!

 

교훈 : 우리가 이웃의 행복을 바라며 실제적인 관심을 기울이셨던 예수님의 정신으로 연합할 때 세상은 우리의 신앙에 감동하며 복음의 진실성을 인정한다.

 

 

11월 28일(수) 다양성 속에서의 연합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롬 14:1).

 

로마서 14~15장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내에 존재했던 뿌리 깊은 분열의 문제를 언급한다. 그는 로마 신자들이 서로에 대해서 관용과 인내를 나타내고 이러한 문제로 교회를 분열시키지 말라고 권유했다. 이런 조언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1. 롬 14:1~6을 읽어 보라. 로마 교인들은 어떤 양심적인 문제 때문에 서로를 정죄하며 교류하지 않았는가?

[롬14:1~6]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5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이 문제들은 유대교의 제의적인 부정함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그것들은 “논란이 있는 문제”(롬 14:1, 쉬운성경)들이었다. 이는 그것들이 구원을 좌우하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양심에 맡겨야 하는 선택의 문제임을 뜻한다(롬 14:5 참고).

이 논쟁의 첫째 주제는 음식의 종류였다. 여기서 바울이 다루려는 사안은 레위기 11장에서 금지하는 종류의 육류가 아니다. 바울의 시대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돼지고기나 다른 부정한 동물의 고기를 먹었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베드로는 그러한 음식은 먹지 않았다(행 10:14 참고). 또한 연약한 자들은 채소만 먹었고(롬 14:2) 그 논쟁에 음료도 포함되었다(롬 14:17, 21)는 사실은 그 사안이 제의적인 부정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가리킨다. 롬 14:14에 사용된 ‘부정한’(코이노스) 또는 ‘속된’이라는 말이 이를 더욱 뒷받침해 준다. 70인역(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 성경)에서 이 말은 레위기 11장에 열거된 부정한 동물이 아닌 ‘더럽혀진’ 육류를 가리키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로마 교인 중 일부가 친교의 식사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그 음식이 제대로 준비됐는지 또는 우상에게 바쳐지지 않았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들을 준수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매주 반복되는 안식일 준수에 관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안식일을 규칙적으로 지켰기 때문이다(행 13:14, 16:13, 17:2). 이것은 유대교의 다양한 절기 또는 금식일에 대한 언급일 가능성이 높다. 바울은 그러한 의식들을 구원의 방편으로 여기지 않는 이상 진지하고 양심적으로 그것들을 준수하는 자들을 너그럽게 이해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이뤄지는 연합은 특히 우리의 신앙에 필수적이지 않은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의 견해가 항상 일치되지 않을지라도 인내와 관용을 나타낸다.

 

<부가설명>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교회를 공격하거나 교회가 말씀을 중심으로 세운 교리를 부인할 때에는, 그렇게 하는 사람에 대하여 심사숙고하여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방법상의 차이나 행사에 대한 견해차이나, 이런 것들로 분열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그런 주장을 할 때에는 진지하게 권고하여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서 징계조치를 해야 한다. 징계는 그가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하는 방편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는 출교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교인들이 해를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2:19) 음식에 대하여 성경이 제시한 것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선동한다든지 안식일에 대하여 폄하하는 사상을 가졌으면 징계 대상이 된다. 여기 말하는 먹는 것과 날짜에 대한 것은 안식일과 성경이 제시한 음식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교훈 :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모든 문제에 대해서 의견의 일치를 강요하기보다 구원에 필수적이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의 차이점을 인내하며 관용한다.

 

 

11월 29일(목) 사명에 있어서의 연합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

 

1. 최후의 만찬(눅 22:24) 때의 제자들 분위기와 오순절 전후(행 1:14, 2:1, 46)의 분위기를 비교해 보라. 무엇 때문에 그들의 삶에 그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는가?

[눅22:24]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행2:1,46]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답: 오순절 전에는 높아지려는 마음으로 서로 경계한 상태였지만 후에는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행 1:14과 2:46에 사용된 “마음을 같이하여”라는 말은 ‘한 마음으로 함께하다’라는 뜻이다. 이런 분위기는 그들에게 보혜사를 보내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도하며 그들이 한 장소에 함께 모여 있던 결과로 이르러왔다.

그들은 기다리는 동안 서서히 서로를 비난할 수도 있었다. 어떤 제자가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의 잘못(요 18:15~18, 25~27)이나 그분의 부활을 의심했던 도마의 잘못(요 20:25)을 지적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님의 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달라고 했던 사실(막 10:35~41), 또는 마태가 이전에 멸시받는 세리였다는 사실(마 9:9)을 들춰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준비의 날들은 깊이 마음을 살피는 날들이었다. 제자들은 영적인 필요를 느끼고 그들을 영혼 구원 사업에 적합하게 해 줄 거룩한 정열을 달라고 주께 부르짖었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을 위한 축복을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혼 구원에 대한 부담에 눌려 있었다. 그들은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능력을 간구하였다”(사도행적, 37).

제자들은 오순절이라는 역사적인 경험에 앞서 친교와 집중적인 기도를 통해서 준비되었다. 그들이 개인적인 차이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가까이 갔을 때에 성령님은 그들을 예수님의 부활을 두려움 없이 대범하게 전할 수 있는 증인으로 준비시키셨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부족을 너그럽게 봐 주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삶 속에서 어떤 일들을 행하셨는지 알았다.

그들은 그분 속에 구원의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나타내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사도행적, 48)이 신자들의 포부임을 알았다. 그 결과 주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엄청난 일들을 행하실 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의 교회가 배워야 할 교훈이 아닌가?

 

<부가설명>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은 생명의 실상을 어렴풋이 깨달았을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그 기간 동안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생명의 실상을 더욱 확실히 보았고 예수님이 생명의 왕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 오순절을 맞이하여 성령께서 오시고 제자들이 성령의 역사로 마음이 하나가 되어 이 생명의 도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완전히 연합하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어도 산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확실히 깨닫고 생명으로 연합하였다. 한 생명 한 몸 한 생활이 된 것이다. 교회가 진정으로 이런 연합이 필요하다. 생명이 하나가 되어 있는 연합이다. 이 연합은 사망의 세상에 생명을 전하는 힘으로 나타났다. 결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으로 생명의 복음이 확산되었다. 우리에게까지 이른 것이다. 우리도 이 생명의 역사로 완전한 연합을 이루어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능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초기 교회의 제자들은 개인적인 차이를 내려놓고 성령이 임하여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연합했다.

 

 

11월 30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복음전도>, 98~103 “다양성 안에서의 연합”을 읽어 보라.

 

아래의 인용문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한 초기 교회가 그들 중에 존재하는 다양성 속에서 어떻게 연합을 유지하였고 그 결과 어떻게 세상에 놀라운 증거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성경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성령이 초기 교회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예증한다. 이는 적어도 상호 관련성이 있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이뤄졌다. ⑴ 계시(예를 들어 성령은 고넬료, 아나니아, 빌립 심지어 제비뽑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말씀하셨음), ⑵ 성경(교회는 성경을 따라 결론에 이름), ⑶ 합의(성령은 은연중에 그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시면서 마침내 교회가 그들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심을 인식할 때까지 대화와 연구를 통해서 합의를 이끌어 내셨음).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문화, 교리, 신학의 문제로 논쟁이 야기될 때 성령께서는 의사 결정 과정에서 합의를 통해 일하시는 듯하다. 우리는 이런 과정에서 단지 지도자들만이 아닌 신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의 적극적인 역할과 분별력을 구하는 기도의 중요성을 본다. 성령의 인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공동체의 이해, 공동체의 경험과 필요 그리고 사역하는 지도자들의 경험을 통해 감지된다. 교회의 여러 결정들은 성령의 지도를 받는 과정을 통해 이뤄지며 성경과 기도와 경험은 신학적인 숙고의 요소가 된다.”—Denis Fortin, “The Holy Spirit and the Church,” in Angel Manuel Rodriguez, ed., Message, Mission, and Unity of the Church, pp. 321, 32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우리는 어떤 것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필수적인 가르침과 행위인지 또는 아닌지를 어떻게 결정할 수 있습니까?

※ 성경과 증언의 지도를 따르고 교리적으로 합당한지 심사숙고할 것이다. 

 

➋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다른 교단의 그리스도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 공통적인 진리를 기반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요약 : 가장 설득력 있는 연합의 증거는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림교인으로서 서로 공유하는 죄 사함과 구원은 우리의 교제에 필요한 가장 좋은 연결고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연합과 동일한 믿음의 증거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일을 하라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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