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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바벨론과 아마겟돈(질문, 대답, 설명)06/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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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06-15 23:10 조회6,1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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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57분

 

● 연구 범위 : 계 14:8, 16:9, 사 52:9, 계 18:1~10, 16:12~16, 왕상 18:1~40, 고전 15:1~2

● 기억절 :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 17:5).

 

앞서 살펴보았듯이 계시록은 구약 성경에서 사용하는 이미지와 언어로 가득차 있다. 예를 들어 바벨론이라는 이름도 계시록에서는 6번이나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세상 역사에서 사라진 느부갓네살의 왕국이 아니다. 요한은 구약의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진리를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에 바벨론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억압했던 거대한 정치·종교 세력이었기 때문에 그 말은 마지막 때에 동일한 일을 행할 거대한 종교·정치 세력이 존재할 것임을 뜻한다.

‘아마겟돈’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그 말은 성경에서 오직 계시록에서만 등장하며 ‘므깃도 산’이라는 의미의 히브리 어구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아마겟돈에 대하여 무수한 추측이 존재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세상 끝에 므깃도에서 엄청난 전투가 벌어지리라고 예상한다.

이번 주에 우리는 바벨론, 므깃도에 대해 살펴보면서 이러한 이미지들을 통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자 한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하나님의 진영과 바벨론 진영이 서로 대치하게 될 최후의 전투에 대해 알아본다.

느끼기 : 영적인 전쟁의 본질을 알고 그것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시한다.

행하기 :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원수와 대항하여 싸우며 마지막 결전에 대비한다.

 

➋ 예루살렘과 비교했을 때에 만국을 ‘진노의 포도주’로 취하게 한 바벨론의 정체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계 14:8)

※ 그것은 용의 도시이며 재앙의 진원지이다. 

➌ 성경에 따르면 바벨론 세력은 정치와 경제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까?(계 18:2~3)

※ 정치와 경제를 총괄하는 영향을 행사한다. 

➍ 갈멜산에서 벌어진 영적인 대결을 통해서 우리는 아마겟돈 전쟁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왕상 18:1~40, 계 16:12~16)

※ 참 하나님과 거짓 하나님을 경배하는 문제가 중심 문제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➎ 왜 그때에 옷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까? 그것이 시사(示唆)하는 바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끝까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옷을 더럽히지 않고 벗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한다.

 

결론 : 아마겟돈 전쟁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때 악의 세력과 하나님 나라의 진영이 서로 겨루게 될 것입니다.

 

 

6월 17일(일) 진노의 포도주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계 18:3).

 

계시록에서 바벨론을 언급하는 6개의 성경절을 읽어 보라(계 14:8, 16:19, 17:5, 18:2, 10, 21). 구약 성경에 나오는 바벨론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볼 때 마지막 사건의 문맥에서 등장하는 바벨론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계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계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계17: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계18:2,10,21]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10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21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답: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세력이며 만국을 진노의 포도두를 먹이며, 미혹하는 세력이며, 마침내 멸망한 존재이다. 

 

성경은 두 도시 곧 예루살렘과 바벨론의 이야기라는 말이 있다. 예루살렘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과 언약의 백성들이 머무는 도성을 상징하는 반면(시 102:21, 사 52:9, 65:19, 계 3:12) 바벨론은 억압, 폭력, 거짓 종교, 하나님께 대한 노골적인 반역을 상징한다.

예를 들어 바벨탑을 생각해 보라(창 11:9). 히브리어로 ‘바벨’이라는 말은 바벨론 왕국을 칭하는 말과 동일하다. 벧전 5:13에서 베드로는 ‘바벨론’에 있는 교회에 안부를 전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 말이 현재 이라크 지역에 위치한 고대 왕국의 폐허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조만간 교회를 박해할 로마 제국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계시록과 거기서 설명하고 있는 로마의 역할에 비춰볼 때에 흥미로운 명칭이다.

 

2. 계 14:8과 18:3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에 따르면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입힐 바벨론의 악영향은 무엇인가?

[계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계18: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답: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모든 나라에 먹이는 자요 만국을 무너뜨리는 자이다.

 

바벨론이 상징하는 세력은 계시록이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전 세계에 확장되어 있는 하나의 거대하고 부패한 영향력이다.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계 14:8)라는 구절은 명백하게 거짓 교리, 거짓 교훈, 타락한 행위들뿐 아니라 그것들에서 비롯된 최종적인 결과에 대한 언급이다. 바벨론은 만국으로 번진 악의 세력이다(계 18:3).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그것과 같이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부가설명> 계시록의 바벨론은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는 존재이다. 이 특정인이나 단체에게 먹이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이 포도주를 먹인다. 먹인다는 것은 억지로 먹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진노의 포도주가 무엇인가? “바벨론은 유독한 교리들 즉, 오류의 포도주를 육성해왔다. 이 오류의 포도주는 거짓 교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러한 것들로는 영혼의 본질적인 불멸성, 악인의 영원한 고통, 베들레헴 탄생 전의 그리스도의 선재성에 대한 부인, 하나님의 거룩하고 성별된 날보다도 주일 중 첫날을 옹호하고 높이는 것 등이다. 이것들과 및 유사한 오류들이 여러 교회에 의하여 세상에 전파되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계 14:8)라고 한 성경 말씀이 성취되었다. 진노는 거짓 교리에 의해 야기된다.”(TM=목사들에게 보내는 증언, 61.3) 여기 열거된 네 가지 내용은 구체적인 증언의 말씀이다. 유사한 오류들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해준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롬1:18) 진노의 포도주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다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는 것이다. 재림교회에도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도 진노의 포도주가 된다. 우리는 정말 말씀 앞에서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2:17)

 

교훈 :성경에서 바벨론은 하나님에게 반역하는 세력을 상징한다. 바벨론은 마지막 때에 온 세상을 미혹하는 거대한 종교·정치 세력을 의미한다.

 

 

6월 18일(월) 바벨론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2).

 

계시록에 따르면 바벨론은 그 영향력이 아무리 지대할지라도 심각하게 타락했기 때문에 언젠가 멸망할 수밖에 없다.

 

1. 계 18:1~10을 읽어 보라. 큰 성 바벨론은 어떤 성인가?

[계18:1~10]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답: 음란하고 사치하며 불의하여 하나님께서 그 불의를 기억하는 단체이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며 여황으로 군림하는 자인데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하는 존재이다. 

 

바벨론이 멸망할 것이라고 선포한 둘째 천사의 기별(계 14:8)이 계 18:2에서 다시 반복된다. 이 말씀은 그 체제가 얼마나 타락하게 됐는지를 설명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사탄이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활동할 것인데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할 자들은 ‘미혹의 역사’를 따라 ‘거짓 것을 믿게’(살후 2:9~11)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상태가 이루어지고 모든 그리스도교국의 각 교회들이 세상과 완전히 연합할 때 바벨론의 타락은 절정에 이를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 진행 중에 있으며, 요한계시록 14장 8절의 완전한 성취는 아직 장래에 속한 일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389~390).

그 “완전한 성취”가 지금 이루어지는지 아닌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다만 이 말씀에 따르면 영적인 바벨론은 언젠가 자신의 큰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계 18:5). 이러한 표현은 고대 바벨론에 대한 구약의 언어를 반영할 뿐 아니라(렘 51:9 참고) 심판 때가 반드시 온다는 뜻을 나타낸다.

물론 심판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고대 바벨론도 심판을 당했다(단 5장 참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바벨론뿐 아니라 각 사람이 언젠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날이 올 것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그 심판의 날에 우리를 대변하여 주실 중보자가 계심을 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가(요일 2:1, 단 7:22).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운명도 바벨론의 그것과 나을 게 없을 것이다.

 

<부가설명> 무너졌다는 것은 망했다는 뜻이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할 존재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사탄의 대리자이다. 아주 교묘한 것은 그것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로 나타나 군림한다는 사실이다. 교회로 조직되어서 불의로 진리를 막는 일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도덕적으로 보이고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처신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런 활동에 대하여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3~15)고 경고했다. 세상은 이런 조직을 하나님의 교회라고 믿는다. 그들은 성경이 계시한 대로 성경의 진리를 따르지 않고 신학과 전통과 인간의 풍습을 교묘하게 섞으며 성경의 명백한 기록을 왜곡시키고 억지로 해석하고 사람들을 인간의 해석과 설명을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보다 더 믿도록 미혹한다. 이것이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기록된 말씀에 의지하고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면서 진리의 반석에 굳게 서야 할 것이다.

 

교훈 : 타락한 바벨론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겠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그날에 중보자로부터 옹호를 받을 것이다.

 

 

6월 19일(화) 아마겟돈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4).

 

그리스도인 다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시록은 잘 모르지만 아마겟돈이라는 말에는 익숙해져 있다(계 16:16 참고). 대중문화 속에서조차 그 말은 지구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시점에 벌어지는 최후의 대결을 상징한다. 지구를 멸망시킬 거대한 소행성의 접근을 다룬 <아마겟돈>이라는 할리우드 영화도 있다. 지구 종말이라는 개념은 일반 사람들의 생각에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다.

계시록을 알고 예언을 믿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아마겟돈 전쟁을 지구 종말 직전에 실제로 중동지역에서 벌어질 군사적인 충돌로 이해한다. 어떤 해석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약 2억 명의 군대가 이스라엘 북부로 침공해 들어간다. 또 어떤 이들은 중동지역에서 벌어지는 여러 군사적, 정치적 충돌에 주목하며 그것들이 결국 므깃도에서 일어나는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의 무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성경은 완전히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성경은 아마겟돈을 옥신각신 다투는 민족들 사이의 전쟁이 아닌 우주적인 대쟁투의 마지막 결전으로 제시한다. 물론 경제와 정치적인 요인들이 어느 정도 작용하겠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전쟁이다.

 

1. 계 16:12~16을 읽어 보라. 우리는 여기서 아마겟돈에 대하여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계16:12~16]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16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답: 아마겟돈은 악의 세력들이 결집해서 하나님과 대적하는 영적 싸움을 나타낸다. 아마겟돈은 상징적 표현이다.

 

먼저 이곳의 언어가 얼마나 상징적인지 주목하라.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개구리같이 생긴 영들이 나온다. 이것들은 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세력들로 거짓 선지자는 땅에서 올라온 짐승을 가리킨다(계 13:11). 여기서도 대쟁투가 펼쳐진다. 마귀의 영들이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으로 나아간다(계 16:14). 아마겟돈 전쟁이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와 사탄의 세력 사이에 벌어지는 전 세계적인 격돌이다.

그것은 계시록의 바벨론이 오늘날 이라크 일부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관한 것이 아니듯이 므깃도 지역에서 벌어지는 국지적인 전쟁이 아니다.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계 16:15).

 

<부가설명> 아마겟돈은 므깃도의 산이라는 뜻이 있다. 수, 목요일 공부에 이 사실을 자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이야기하기는 일찍은 것 같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악의 군대와 하나님의 군대가 무기를 들고 어떤 지리적 지역에서 맞붙어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마겟돈이라는 말을 어떤 사람들은 히브리어 ‘하르 모에드’를 헬라어로 그러게 표현했다고도 한다. ‘하르 모에드’는 ‘집회의 산’이라는 뜻이다. 이사야 14:13에 있는 말이다. 루시퍼가 집회의 산에 자기 보좌를 높이겠다고 한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 위에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전쟁을 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므깃도의 산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나 상징적이라는 데는 동일하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항하여 온 세상이 연합해서 공격하는데 물리적인 충돌이 아니고 신앙적 사상적 교리적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세상의 권력이 연합해서 성경 진리대로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무리들을 못살게 굴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의 군대가 승리하고 루시퍼의 군대는 멸망할 것이다. 우리는 진리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교훈 : 아마겟돈 전쟁은 실제로 나라들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에 벌어지는 최후의 영적인 격돌이다.

 

 

6월 20일(수) 아마겟돈과 갈멜산 1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왕상 18:18).

 

아마겟돈의 큰 전쟁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선, 그 명칭은 ‘므깃도의 산’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므깃도로 알려진 지역에는 산이 없다. 대신 인근에 갈멜산이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므깃도의 산’이라는 구절이 갈멜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더욱이 성경 연구자들은 갈멜산에서 벌어진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 간의 대결을 계시록 13장에서 전개되는 사건의 표상과 상징으로 간주해 왔다.

어제 본 것처럼 용, 짐승, 거짓 선지자를 언급하는 계 16:13은 계시록 13장의 사건들과 거짓 삼위일체를 상기시킨다(9과 참고).

계시록 13장의 쟁점들이 13~14절에서 최고조에 이를 때 둘째 짐승은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13절)는 이적을 행한다. 이 사건은 곧장 하나님과 사탄 사이 그리고 하나님의 참예배자들과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 사이의 직접적인 대결로 이어진다(14절).

 

1. 왕상 18:1~18을 읽어 보라. 여기서 벌어지는 일들은 계시록이 묘사하는 마지막 사건들의 문제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왕상18:1~18]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2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3 아합이 궁내대신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4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일백 인을 가져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었더라 5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러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6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7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저를 만난지라 저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 8 대답하되 그러하다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9 가로되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붙여 죽이게 하려 하시나이까 10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주께서 사람을 보내어 당신을 찾지 아니한 족속이나 나라가 없었는데 저희가 말하기를 엘리야가 없다 하면 그 나라와 그 족속으로 당신을 보지 못하였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거늘 11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니 12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신이 나의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고하였다가 저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13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일백 인을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께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14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니 그리하면 저가 나를 죽이리이다 15 엘리야가 이르되 내가 모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날 아합에게 보이리라 16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고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려 하여 가다가 17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18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답: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대결 사건은 역사의 종말에 성경을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며 그분의 법대로 사는 자들과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여 올바르게 성경의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자들의 대립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여러 측면에서 우리는 이 일화로부터 대쟁투의 적나라한 모습을 본다. 18절에서 엘리야는 사안을 매우 단순하게 진술한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저버리고 거짓 신들을 섬기며 따르고 있었다. 역사의 각 시대마다 그 죄악이 드러나는 형태와 방법의 차이가 있었을 뿐 문제는 항상 동일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계 14:7) 경배하든지 아니면 다른 이 또는 다른 것에게 경배한다. 계시록 13장을 보면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있다.

중간 지대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편 아니면 사탄의 편이다. 사안이 매우 엄중하다. 지금, 특별히 아마겟돈의 전쟁에서 우리는 갈멜산의 이야기처럼 그 구분이 매우 분명해지는 것을 볼 것이다.

 

<부가설명> 엘리야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다. 이 시대는 아합이 바알을 신으로 섬기는 시돈의 공주를 왕비로 맞으면서 왕권을 배경으로 바알 종교와 바알 신앙을 강요하여 온 이스라엘이 바알 숭배에 빠지게 된 시대였다. 민중은 바알을 ‘엘로힘(하나님)’으로 경배하였다. 이런 때에 시골인 디셉에 사는 사람이 ‘엘리야’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였다. 그 이름은 바알이 ‘엘로힘’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가 엘로힘’이라는 뜻으로 바알종교와 바앙 신앙을 책망하고 대적하는 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잡아 가두고 죽였기 때문에 드러내어 자신이 여호와의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다 숨고 없었다. 그때 엘리야가 혼자 고군분투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투사로 등장한 것이다. 1:850의 대결로 갈멜산에서 참 하나님(엘로힘)이 여호와냐? 바알이냐? 담판을 하였고 바알은 참패를 당하고 그 선지자들은 다 죽임을 당하였다. 이것이 바로 므깃도의 산에서 일어난 전쟁이다. 무기를 들고 싸운 전쟁이 아니다. 기도와 예배로 싸운 전쟁이다. 이 전쟁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 때는 그 절정을 이룰 때인 것이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교훈 : 경배의 문제가 갈멜산 사건의 원인이었던 것처럼 아마겟돈 전쟁도 하나님과 사탄의 사이에서 결국 누구에게 경배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6월 21일(목) 아마겟돈과 갈멜산 2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계 19:20).

 

1. 왕상 18:18~40을 읽어 보라. 어떤 사건이 벌어졌으며 그 이야기는 어떻게 끝나는가?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한다면) 이 이야기는 대쟁투가 절정에 다다르는 마지막 때에 대규모로 발생할 사건들을 어떻게 예고하는가?

[왕상18:18~40]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19 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보내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이로다 23 그런즉 두 송아지를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저희는 한 송아지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며 나도 한 송아지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 26 저희가 그 받은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저희가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깐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오정이 지났으나 저희가 오히려 진언을 하여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를지라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두 돌을 취하니 이 야곱은 여호와께서 옛적에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 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단으로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용납할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 그리하라 하여 세 번 그리하니 35 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더라 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 엘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저희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답: 엘리야의 승리로 끝난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아가 참 하나님(엘로힘)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입으로 고백하였고 바알 제사장드은 다 죽임을 당하였다.

 

갈멜산의 결투는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한 명과 수백 명에 이르는 바알의 선지자 사이에서 벌어졌다. 악한 자가 선한 자의 수를 압도한다. 이것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과 ‘용’의 다른 모습 또는 용이 세상을 미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른 도구 중에 누가 참하나님인가를 가려내기 위한 시험대였다(계 12:9 참고).

바알의 제사장들은 불을 보내서 황소 제물을 불살라 달라고 바알에게 기도했다. 그들은 아침부터 정오까지 외쳤다. 엘리야는 “큰 소리로 부르라”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 같다고 조롱하였다(왕상 18:27). 제사장들은 광란의 수준까지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피가 줄줄 흐를 때까지 칼로 자신들의 몸을 베었다. 지치고 피곤해진 그들은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이 되자 포기했다.

엘리야는 자신의 제물을 3번 물로 적셨다. 물이 고랑에 넘쳐흘렀다. 그는 하나님께 짧은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은 즉시 돌제단과 그 밑의 흙까지 모든 것을 불사르셨다. 이제 바알과 대조적인 참하나님의 능력을 혼동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2. 계 16:13, 19:20~21을 읽고 이 성경절들을 바알 선지자들의 운명과 비교해 보라. 무엇을 볼 수 있는가?

[계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계19:20,21]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답: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망할 것이고 그들을 따르던 자들도 함께 망할 것이다. 

 

아마겟돈에 관하여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있지만 적어도 그 결과만큼은 확실하다. 즉 하나님의 원수들은 멸망하고 하나님과 그의 성도들은 옹호를 받는다.

 

<부가설명> 아마겟돈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잘 간과(看過)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마지막 일곱 재앙 중에 여섯째 재앙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아마겟돈을 독립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성경의 질서와 맞지 않게 된다. 마지막 일곱 재앙은 은혜시기가 끝난 후에 일어나는 실제적 사건이다. 그 재앙들은 천연계가 반발하는 모습이다. 첫 재앙은 재앙의 대접을 땅에 쏟으니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게 종기가 난다. 그것은 치료되지 않는 종기이다. 치료는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인데 은혜시기가 끝났기 때문에 치료가 되지 않는다. 다음은 바다, 다음은 강과 샘, 다음은 해, 다음은 짐승의 보좌에 직접 쏟아진다. 그 다음이 여섯째 사건인데, 이때는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연합하여 다섯째 재앙까지 겪어도 정치와 종교와 사회 지도자들이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이 가짜 삼위일체의 세력이 나타나서 이적을 행하여 재앙으로 고통 받고 아파서 죽을 지경인데도 죽지 않고 고통만 당하는 사람들과 황폐한 천연계에 이적을 행하여 구세주처럼 군림하는 것이다. 당연히 아주 쉽게 온 세상에 그 세력을 따라서 참 하나님을 대적하는 연합에 힘차게 연합하면서 그들이 참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진리로 입은 의의 옷을 잘 지켜야 한다. 물론 은혜시기가 끝났기 때문에 타락할 수는 없다. 그러나 특별한 부탁을 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우박이 떨어지고 백마를 타고 오는 어린양의 말씀의 능력에 그들이 다 죽게 되는 것이다.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계19:15) 이 상징적 표현은 바로 말씀으로 그들이 죽게 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무기를 들고 싸우는 그런 상태로 생각하면 성경을 오해하는 것이다. 

 

교훈 :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듯이 아마겟돈의 대결에서도 결국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승리하고 사탄과 그 대리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6월 2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아마겟돈 대결의 기사에서는 대부분 흉측한 생물들과 추한 장면들이 뒷 무대를 차지한다. 그러다가 언뜻 개인에게 호소하는 진리가 나타나는데, 앞서 보았듯이 그중 하나가 계 16:15이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실제로 성경이 아마겟돈이라고 이름 지은 장소의 한가운데서 들려온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과 마지막 사건들을 위한 개인적인 준비를 호소하는 신약 성경의 여러 말씀 속에서 메아리친다.

그 같은 말씀은 계 17:14에도 있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여기에 한 백성이 마지막 큰 전쟁에 개입된다. 그러나 그들의 주요 목적은 무기로 상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에 충실하게 남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나라들과 반정부군들이 벌이는 전쟁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전쟁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아마겟돈 전쟁은 생각을 차지하려는 싸움이며, 마음을 차지하려는 싸움이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죽음을 당하신 어린 양께 충성을 다하라고 부름을 받는다(계 5:9~10, 12, 13:8).”—Jon Paulien, Armageddon at the Door (Hagerstown, Md.: Autumn House Publishing, a division of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2008), p. 19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계시록에 묘사되어 있는 여러 사건들이 실제 언급되어 있는 지명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어떤 접근 방식을 사용해서 그러한 해석이 잘못임을 보여 주어야 할까요?

※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원칙을 깨닫게 하여 말씀으로 그 상징적인 내용을 일깨우는 방법이 합당할 것이다. 

 

➋ 바벨론의 감화력은 전 세계에 확장되어 있습니다. 그것의 가르침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식별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피해야 할까요?

※ 오직 기록된 성경말씀으로 식별하고 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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