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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우주적인 쟁투(질문, 대답, 부가설명)0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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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8-03-30 22:50 조회6,5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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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 연구 범위 : 겔 28:1~2, 11~17, 창 3:1~7, 계 12:1~17. 롬 8:31~39, 계 14:12

● 기억절 :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계 12:17).

 

대쟁투라고 불리는 우주적인 쟁투는 성경이 제시하는 세계관이다. 그것은 이 세상과 우주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의 배경을 형성한다. 죄, 고통, 죽음, 민족의 흥망성쇠, 복음의 확산, 종말의 사건 등 이 모든 것들이 우주적인 쟁투의 맥락에서 발생한다.

이번 주에 우리는 완전한 존재였던 루스벨의 마음에서 불가사의하게 시작된 그 쟁투의 몇 가지 중심점을 살펴보려고 한다. 루스벨은 또 다른 완전한 존재,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통해 반역을 지상까지 끌고 왔다. 대쟁투는 루스벨의 타락과 인류의 첫 조상의 타락이라는 이 두 개의 중심점에서 기원하여 그 이후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 우리 각자는 이 우주적인 드라마의 일부분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드라마는 언젠가 끝난다. 그것도 사탄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로 막을 내린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는 그 승리에 동참할 수 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약속된 모든 것을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은 그 승리의 일원이 될 우리를 지금 믿음과 순종으로 부르신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쟁투와 인류와 관련된 비극의 범위를 깨닫는다.

느끼기 : 매일 죄와 씨름하는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한다.

행하기 : 사랑의 동기로 하나님께 헌신하며 그분의 계명에 순종한다.

 

➋ ‘대쟁투’라는 개념은 성경을 이해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까?

※ 생명과 사망의 투쟁을 바르게 알아야 복음의 본질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임을 안다.

➌ ‘대쟁투’라는 개념이 없다면 기독교는 어떤 종교가 될까요?

※ 그냥 도덕적 선을 지향하는 다른 고등종교과 동일하게 된다. 

➍ 그대는 성경이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데서 시작했다. 

➎ 그대는 성경이 죄와 불행을 없애기 위한 해결책을 무엇이라고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 사망과 그 세력을 영원히 없이하는 것이라고 제시하며 예수께서 그 일을 이루셨다.

➏ 우리는 이 큰 쟁투 가운데서 어떻게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할까요?

※ 성경의 복음을 바르게 깨닫고 날마다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께 굴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론 :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우주적인 문제의 해결책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와 삶의 방식은 바로 그 세계를 가리켜야 합니다.

 

 

4월 1일(일) 완전한 존재의 타락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5).

 

만약 우주적인 쟁투가 성경이 제시하는 세계관의 배경을 형성한다면 이는 여러 가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 중 하나는 ‘어떻게 그것이 시작하게 되었는가?’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우리는 당연히 창조 세계에 죄와 폭력, 쟁투 같은 것이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본래의 창조와는 별개로 쟁투가 일어났다. 그것은 창조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현재 실재하는 쟁투에 개입되어 있다.

 

1. 겔 28:1~2, 11~17과 사 14:12~1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루스벨의 타락과 죄의 발생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겔28:1,2, 11~17]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2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16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사14:12~14]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답: 루시퍼가 교만하여 하나님과 동등하려고 시도한데서 죄가 발생한 것을 알 수 있다.

 

루스벨은 하늘에 사는 완전한 존재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와 같은 환경에서 죄악이 생길 수 있었을까? 우리는 모른다. 그래서 성경이 “불법의 비밀”(살후 2:7)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지능을 가진 모든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 외의 다른 이유로는 루스벨의 타락을 설명할 수 없다. 엘렌 G. 화잇은 그 내용을 매우 심오하게 다루었다.

“죄악의 시작은 그 존재 이유와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죄는 하나의 무단 침입자이다. 그것이 나타나게 된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죄는 오묘한 것이며,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그것을 옹호하는 것이다. 만일 죄의 원인과 그 존재 이유를 밝힐 수 있으면 죄는 죄가 될 수 없다”(각 시대의 대쟁투, 492~493).

죄를 악으로 바꾸어도 의미는 같다. 악의 시작은 그 존재 이유와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악은 하나의 무단 침입자이다. 그것이 나타나게 된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악은 오묘한 것이며,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그것을 옹호하는 것이다. 만일 죄의 원인과 그 존재 이유를 밝힐 수 있다면 죄는 죄가 될 수 없다.

 

<부가설명> 루시퍼가 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생각이나 욕망이 생겼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것은 불가사이한 일이다. 그러나 죄가 발생한 원인은 성경이 밝히고 있지 않는가? 루시퍼가 하나님과 동등하겠다고 한 것이 원인이다. 그런데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하면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루시퍼가 지혜가 온전하고 모든 것에 완전했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만큼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예레미야 23:18절에는 여호와 회의가 있다고 계시했다. 북극 집회의 산은 여호와 회의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루시퍼가 그 자리에 앉겠다고 한 것은 자기가 여호와와 동등하겠다는 것을 실천에 옮기려는 태도인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죄를 도덕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결코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게 된다. 죄는 도덕적 문제 이전에 존재와 생명에 관한 것임을 깨달으면 대쟁투를 바르게 이해하는 길이 보일 것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마귀 루시퍼는 시험의 광야에서 예수님께 도전했다. 그가 도전한 내용은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인 것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의 말에 걸려들지 않으니까 마지막으로(마태복음에 의하여)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이며 자기에게 절하라고 했다. 이것을 보면 하늘에서 루시퍼가 대결하려고 한 상대가 말씀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말씀하나님이나 루시퍼 자기는 동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고 실천에 옮기려고 집회의 산에 보좌를 놓으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국 그는 말씀하나님께 완전히 패하여 존재를 마침내 상실하게 될 것이다. 

 

교훈 : 죄는 하나님의 창조와 상관없이 루스벨의 마음속에서 생겼으며 그 기원과 존재 이유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이다.

 

 

4월 2일(월) 머리로 아는 지식 이상이 필요함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창 3:1).

 

우리는 죄가 생긴 이유와 그 존재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없지만 성경은 하늘에 있던 루스벨의 마음속에서 그것이 시작되었다고 밝힌다. 물론 우리가 엘렌 G. 화잇의 글(예를 들면 <각 시대의 대쟁투>의 ‘죄의 기원’)에서는 흥미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지만 성경은 그것이 어떻게 하늘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어떻게 지상에서 발생했는지에 대하여 매우 분명하게 설명한다.

 

1. 창 3:1~7을 읽어 보라.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아담과 하와의 과실은 무엇이었는가?

[창3:1~7]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답: 뱀이 여자를 찾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도록 유혹했고 아담 부부는 그 유혹을 받아들여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고 사망의 존재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하와는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그 말씀을 반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3)고 하였다. 성경에 따르면 그것을 만지지도 말라는 말씀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자 사탄은 대놓고 뻔뻔하게 그 말씀들을 부정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얼마나 극명한 차이인가? 처음에 사탄은 교묘하게 하와에게 접근했다. 그가 그녀의 주의를 빼앗았을 때 그녀가 저항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는 공공연히 여호와의 명령에 도전했다. 비극적이게도 그녀의 행동은 무지한 상태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그녀는 ‘저는 몰랐어요. 정말 몰랐어요!’라고 주장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잘못을 저질렀다. 에덴이라는 완전한 환경에서도 지식이 하와의 범죄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지식이 우리를 구원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명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러한 지식과 더불어 말씀이 명하는 것을 따르겠다고 하는 굴복의 태도가 필요하다.

 

<부가설명> 안다는 것과 아는 대로 실행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성경을 많이 기억하고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을 생활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태초의 여자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알고 기억하고 있었으나 뱀의 말을 따르고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다. 우리는 성경을 공부할 때 그 말씀이 자신의 인격과 생활이 되도록 마음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성령께서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굴복해야 한다. 그런데 에덴동산의 하와와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상태에 있다. 하와는 완전하고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죽은 존재들이다.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성령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따라서 살아야 한다. 죽은 자는 썩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을뿐더러 굴복할 수도 없다.(롬8:7) 그러므로 생명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바울처럼 날마다 내가 죽어야 한다. 그것이 아는 것 이상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교훈 :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를 알고 있었지만 뱀의 유혹에 넘어갔다. 머리로 아는 지식은 우리를 보호하거나 구원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4월 3일(화) 하늘과 땅에서의 전쟁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계 12:7~8).

 

우리의 첫 조상의 타락으로 인해 세계는 죄와 악과 죽음으로 내던져졌다. 사람들은 어느 한 사람의 잘못으로 그런 일이 생기리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혼돈, 폭력, 격변 그리고 갈등의 실재를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우주적인 쟁투와 갈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좋다. 맞는 이야기이다. 이 쟁투의 우주적인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문제는 그것이 지금 이 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에덴에서의 타락부터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일어날 종말의 사건들까지 성경 역사의 대부분은 대쟁투에 대한 성경의 주석이다. 우리는 이러한 쟁투 속에 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그 배후는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 말해 준다.

 

1. 계 12:1~17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하늘과 지상에서 전개되는 어떤 전투들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가?

[계12:1~17]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답: 하늘이나 지상이나 다 용과 미가엘의 싸움이고 현실로는 땅에서는 성도와 죄의 세력과의 싸움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늘의 전투도 보고 지상의 전투도 본다. 첫 전투는 용(사탄, 계 12:7~9)과 미가엘(히브리어로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라는 뜻) 사이에 벌어진다. 반역자 루스벨은 피조물 주제에 영원하신 창조주 예수님(히 1:1~2, 요 1:1~4)과 대결하는 사탄(반대자)으로 알려졌다.

루스벨은 자신의 창조주에게 반역했다. 대쟁투는 결투를 벌이는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창조주에게 반역하고 창조 세계까지 유혹하여 그러한 반역을 드러내고 있는 한 피조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늘에서 그리스도와의 전투에서 패배한 사탄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시자마자 땅에 있는 그분을 뒤쫓았다(계 12:4). 그러나 지상에서도 그는 광야에서 그리고 갈보리 십자가에서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당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리스도의 백성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나아간다. 이 전쟁은 기독교 역사 내내 벌어졌고(계 12:6, 14~16) 사탄이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또 다른 패배를 맞이할 때까지, 즉 끝까지 계속될 것이다(계 12:17).

 

<부가설명> 성경은 하늘에서 미가엘과 그의 사자(천사=앙겔로스)들과 용과 그의 사자(천사=앙겔로스)들 사이에 전쟁이 있었다고 계시하였다. 일요일 부가설명에서 말한 것처럼 루시퍼는 말씀하나님께 도전한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가엘은 예수님이시다. 미가엘이 예수님이신 것은 창세기 3장 15절과 계시록 12장 1~6절을 대조하면 분명해진다. 각각 등장인물이 동일하다. 여자와 여자의 후손과 뱀(용)과 뱀의 후손이 전쟁할 것을 보여주는 계시록에도 여자와 여자가 낳은 아들과 뱀이 여자의 아들을 삼키려고 하지만 여자의 아들은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하늘의 전쟁 장면을 계시한다. 뱀과 싸우는 분이 미가엘이다. 여자의 후손이 뱀과 싸울 것이라고 한 말씀은 이미 하늘에서 루시퍼와 말씀하나님 사이에 있었던 전쟁의 연장을 보여주신 것이다. 선악간의 대쟁투는 말씀하나님과 루시퍼간의 대쟁투인데 결국 피조물인 루시퍼가 말씀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집회의 산에 보좌를 놓으려고 한 것이다. 하늘에서 패배하고 땅으로 와서 아담부부를 정복하여 아담으로부터 생육하고 번성할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을 잃게 하였고 아담 한 사람이 그 생명을 잃게 되자 그의 모든 후손은 생명이 없는 사망의 존재로 태어난 것이다. 이 지구는 사망의 골짜기이고 아담의 후손은 썩어질 씨로 태어나서(벧전1:23)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엠4:22)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의 모든 후손이 다 사망의 존재가 되었고 사망의 성질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도덕적 죄악들이다. “우리의 첫 조상의 타락으로 인해 세계는 죄와 악과 죽음으로 내던져졌다. 사람들은 어느 한 사람의 잘못으로 그런 일이 생기리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교과 저자는 이렇게 썼다. 죄를 각 사람의 도덕적 행위로 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도덕적 죄들은 썩어져가는 구습의 모습이라는 것을 성경이 너무도 분명히 계시하고 사람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며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분명히 계시하는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죄와 구원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쟁투는 생명과 사망 간의 싸움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교훈 : 대쟁투는 창조주와 대결하려는 한 피조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루스벨은 하늘과 땅에서 그리스도에게 모두 패하고 그분의 백성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4월 4일(수) 너희와 항상 끝까지 함께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 역사의 상당 기간 동안 마주하게 될 박해를 예언했다. 계 12:6에 나오는 1,260일의 예언은 1,260년 동안 교회에 가해질 박해를 가리킨다(계 12:14 참고).

“바울은 네로 황제 때 순교를 당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박해는 그 정도에 있어서 다소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 후 몇 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무서운 죄목으로 거짓 고소를 받았고 기근, 질병, 지진 등의 재난도 그들 때문에 생긴다는 원망을 들었다. 그들이 일반 사회의 미움과 의심의 대상이 되자 밀고자들은 이(利)를 얻기 위하여 무죄한 사람들을 무고(誣告)하였다. 그들은 로마 제국의 반역자, 종교의 적, 사회에 해를 끼치는 자로 정죄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원형 극장에서 짐승의 밥이 되기도 하고, 화형에 처해지기도 하였다”(각 시대의 대쟁투, 40).

그 기간에 그 여자(교회)는 광야로 피신했다(계 12:6). 그녀는 독수리처럼 두 날개를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날아가는 장면을 그린다. 그녀가 광야에서 돌봄을 받는 동안 뱀 또는 사탄은 그녀를 괴롭힐 수 없었다(계 12:14). 하나님은 큰 핍박의 시기에도 항상 남은 자를 보존해 오셨으며 마지막 때에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종말의 위기에도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1. 제자들이 대규모로 순교를 당할 것을 내다보시고 주신 주님의 이 놀라운 약속을 그대는 어떻게 이해하겠는가?(롬 8:31~39, 마 10:28 참고)

[롬8:31~39]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답: 이 세상은 전장(戰場)이다. 그리스도인은 루시퍼 무리들인 사망의 세력과 무기를 마주대하여 싸우는 병사들이다. 병사들은 완전한 승리를 얻기 전에는 전사하는 사람도 있고 부상당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병사들은 그날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게 된다. 예수님의 부할이 이것을 보증한다. 전쟁 중에 있는 병사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 모든 날이 환난이다. 그러나 승리를 위하여 싸우며 전진한다. 부상당하기도 하고 지치고 굶주리고 피곤하고 떠날 수만 있다면 전장을 떠나 도망병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대장 예수께서 죽기까지 하시면서 이미 사탄을 제압했다. 사탄은 패배했지만 자기가 완전히 죽을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서 성도를 공격할 것이다. 이 공격에 성도들이 겁을 먹고 항복하면 안 된다. 그 공격의 상태가 핍박일 수 있고 명예와 부귀와 안일의 유혹일 수도 있다. 계시록 12장에 순결한 여자가 광야로 나간다. 광야는 모래와 자갈과 잡풀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날 동안 오직 하늘을 쳐다보는 것 말고는 아무 도움이 없었다. 우리는 광야에서 양육 받는 존재들이다.(계12:6) 그 양육은 오직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만 바라보는 훈련이다. 승리는 예수님이 이루신 것이다. 거기서 말로 할 수 없는 사랑과 넘치는 은혜가 쏟아질 것이다. 만나처럼. 믿음으로 굳게 서자.

 

박해와 기근과 죽음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지금이든 종말이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은 우리가 고통과 시련과 죽음을 모면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면제를 약속 받은 적이 없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러한 시련 중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약속과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을 얻으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어떤 일을 겪든지 우리는 그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기에 바울처럼 이렇게 확신할 수 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우리도 이 소망과 약속을 주장할 수 있다.

 

교훈 :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핍박과 고통을 가하지만 그런 시련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영생을 주시리라는 약속을 품고 살 수 있다.

 

 

4월 5일(목) 율법과 복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라는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을 잘 담고 있다. ‘제칠일안식일’이라는 부분은 하나의 계명만이 아니라 의미상 십계명 전체에 대한 우리의 신념을 가리킨다. ‘예수재림교’라는 부분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가리킨다. 물론 그분의 재림은 초림 때에 이루신 대속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준비되었다. 요컨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라는 우리의 명칭은 현대 진리에서 중요하고도 뗄 수 없는 요소인 율법과 복음을 가리킨다.

 

1. 다음의 말씀들은 율법과 복음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가?

[렘 44:23] “너희가…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과 법규와 여러 증거대로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난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일어났느니라”

[롬 3:20~26]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답: 율법은 아담 안에서 죽은 우리의 본질적인 상태를 나타낸다. 복은 이런 상태를 깨닫고 예수께 나오는 자들이 이런 상태에서 용서받고 예수 안에서 생명을 회복한다는 기별이다. 

 

복음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우리의 죄가 용서될 수 있다는 소식이다. 또한 우리는 그 율법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

그래서 대쟁투가 더욱 맹렬하게 일어나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2. 계 14:1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율법과 복음 사이의 관련성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가?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성도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다. 이 둘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온전한 복음을 이루지 못한다. 

 

<부가설명> 대표적인 율법은 십계명이다. 사람들이 이 계명의 표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은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에 계명의 정신에 이를 수 없다. 정신은 빼고 형식을 따를 수는 있다. 예수께서는 계명의 형식을 수행하는 것은 잔과 대접의 겉을 깨끗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하셨다. 그러나 속에는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그래서 속을 깨끗하게 할 때에 참으로 겉도 깨끗하게 된다고 가르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23:25,26) 예수님은 겉이 깨끗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셨다. 도덕적으로 선하게 사는 것은 겉이 깨끗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없다. 속에는 여전히 썩어져가는 사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지 않으면 복음의 능력을 모르는 것이다. 복음은 겉을 깨끗하게 할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속을 깨끗하게 하여 계명의 정신이 생활이 되게 하는 능력이다. 계명과 복음의 관계이며 결과이다. 

 

교훈 : 대쟁투에서 승리하는 신앙은 율법과 복음을 조화시킨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지만 하나님은 죄에 대한 용서와 율법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4월 6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계 12:9~12과 <부조와 선지자>, 33~43 ‘죄가 용납된 이유’를 읽어 보라.

“모든 피조물이 사랑의 충성을 인정하는 동안 하나님의 온 우주에는 완전한 조화가 있었다. 창조주의 목적을 성취하는 일이 하늘 천사들의 기쁨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고 그분을 찬미하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있는 동안에는 상호간의 사랑도 믿을만하였고 무아적이었다. 하늘의 조화들을 파괴할 불협화음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 행복한 상태에 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허락하셨던 자유를 악용한 자가 있었다. 하나님께로부터 그리스도 다음가는 최고의 영광을 받았고 하늘 거민들 가운데 가장 높은 권세와 영광을 가졌던 자로부터 죄가 시작되었다”(부조와 선지자, 35).

“사랑의 충성”이라는 표현을 주목하라. 심오한 의미가 담긴 이 구절은 사랑이 충성과 신실함으로 이어짐을 가리킨다. 자기 배우자를 사랑하는 사람은 충성을 통해 사랑을 나타낼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존재들이 나타내야 할 태도였으며 지상의 우리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타내야 할 태도이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사탄의 존재와 대쟁투에서 그의 역할을 증명하는 성경절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탄이 단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불의의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인격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계12:7~17에 계시되어 있고, 요13:2에도 있다. 특히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은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말 보여준다. 사탄은 타락한 하늘에서 쫓겨난 천사이다. 성경에서 그의 존재가 인격적 존재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➋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방대한 양의 성경 지식을 접하는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지식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 우리는 진정으로 말씀대로 사는 결단과 말씀에 전적으로 굴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예수님의 승리하는 생명이며 생명력이다. 

 

➌ 그대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그러한 경험은 고난을 겪을 때마다 그대에게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

※ 각자가 대답해보자.

 

➍ “사랑의 충성”이라는 개념은 율법과 은혜 또는 믿음과 순종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 그것은 사랑이라는 큰 개념에 내재해 있는 자유에 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우리는 “사랑의 충성”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요?

※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의 본질은 하나님의 생명과 그 생명력이다. 예수 안에서 이 생명을 얻으면 그 생명이 사랑의 충성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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