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지혜롭게 살라(질문, 대답, 설명) 08/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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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3-08-19 01:52 조회5,399회 댓글0건본문
제9과 지혜롭게 살라
(8월 26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11분)
연구 범위: 엡 5:1~20, 고전 5:1~11, 계 16:1~16, 골 4:5, 잠 20:1, 잠 23:29~35, 행 16:25
기억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5~17).
영국에서 한 수정 항아리가 경매에 나왔다. 경매회사는 이 항아리를 "19세기 프랑스제 자색 항아리"라고 설명하며 그 가치를 26만원(200달러)으로 추정했다. 안목 있는 두 명의 입찰자는 이 항아리를 매우 희귀한 이슬람식 물병으로 보았다.
낙찰 후 실제 감정가는 84억(650만 달러)이었다. 그 입찰자가 횡재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그 입찰자는 경매회사가 몰랐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엡 5:1~20에서 바울은 이교도와 신자가 각기 소중히 여기는 것을 대조한다. 이교도들은 저속한 농담(엡 5:4, 쉬운), 술 취한(엡 5:18) 연회, 음행(엡 5:3, 5)을 인생의 큰 보물로 여겼다.
그러나 신자들은 모든 것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날(엡 5:5, 6) 궁극적인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신자들은 연회와 술에 취하는 대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안에서 "선함과 의와 진리"(엡 5:9, 흠정역)를 소중히 여긴다. 바울은 그들에게 영원의 문턱에서 살아가면서(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숨겨진 보물을 붙잡으라고 역설한다(엡 5:15~17).
*학습 목표
- 깨닫기: 하나님은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를 성령충만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신다.
- 느끼기: 성령은 우리가 인간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따를 수 있게 돕는다.
- 행하기: 죄로 죽었던 삶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기회를 붙잡는 지혜로운 삶을 산다.
TMI 위로
2.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엡 5:2)
*답: 예수님 안에서 사랑으로 생활하라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은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어떻게 다릅니까?(엡 5:8~10)
*답: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4. “잠자는 자여 깨어라”는 권면은 신자들의 어떤 역할을 요구하는 것입니까?(엡 5:14)
*답: 사랑으로 활동하는 삶을 요구한다.
5. 지혜롭게 행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까?(엡 5:15~17)
*답: 주님을 위하여 허락된 시간을 올바르게 사용하라는 뜻이다.
6. 이교의 예배와 달리 그리스도교 예배는 어떤 모습을 보입니까?(엡 5:18~20)
*답: 성령 충만한 예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와 감사와 기도가 있다.
7. 규모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엡 5:2, 18~20)
*답: 예수님의 희생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이다.
결론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숨겨진 참된 보화를 찾기를 원한다. 진노의 자녀였던 자가 빛의 자녀로 변한 것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으로 격발된 것이다. 성령은 우리를 영적인 잠에서 깨어 변하게 하고 세상에 열매를 드러내게 돕는다. 재림을 바라보고 때를 아끼는 자는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여 하나님께 성령충만한 예배를 드릴 것이다.
8월 20일(일) 오히려 감사가 있게 하라
바울은 어떤 의미에서 신자들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의도하였는가?(엡 5:1, 2)
[엡5:1,2]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답: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근거로 말하였다.
바울은 에베소 신자들에게 사랑 안에서 행하라고 촉구한다(엡 5:8, 15). "사랑 가운데서 행"(엡 5:2)하는 것은 그분의 속죄 희생으로 표현된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엡 4:32)을 본으로 삼는 것이다. 바울은 그 희생에 대해 네 가지를 강조한다. (1) 그 희생의 원동력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엡 5:1)과 그리스도의 우리를 향한 사랑(엡 5:2)이다. (2)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대속적인 희생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다. (3) 구약의 성소 제도의 표상에 따라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물이며, (4) 그 희생은 "향기로운 제물"(엡 5:2, 출 29:18, 레 2:9, 빌 4:18 비교)이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이후 엡 5:3~5은 성 윤리에 대한 염려를 표현하고 있다. 에베소의 젊은 개종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거스르고 그들의 부르심을 부정하는 음행에 다시 빠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전 5:1~11, 고전 6:12~20, 고후 12:21 비교).
1세기 그리스-로마 세계의 도덕적 타락과 방탕은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고전 6:9, 갈 5:19, 엡 4:17~19, 골 3:5 참조). 부유층의 연회에는 바울이 엡 5:3~14에서 비난한 술 취함, 저속한 언행, 음란한 오락, 부도덕한 행위가 자주 일어났다. 에베소의 타락한 도심에서는 부도덕한 성관습을 용인하는 익명성을 보장해 주었다.
다른 한편의 많은 사람들은 고결한 삶을 살았고 엄격한 도덕성을 실천했다. 신약성경의 기자들이 다루는 악행 또는 미덕의 목록과 가정 규범을 통해(엡 5:21~6:9, 골 3:18~4:1) 우리는 당시 그리스-로마 시대 전체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방탕함과 고결함이 공존하는 상황을 헤아려 보면 신자들이 행동에 신중을 기하여 이방인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얻으면서 이방인들이 행하는 부도덕한 행동은 피하라는 바울의 권고를 이해할 수 있다.
<교훈> 사랑 가운데서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으로 삼아 따르는 것이다. 신자들은 이를 따르며 세상 가운데서 높은 도덕성과 고결한 삶을 보여야 한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생명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서 거듭난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그들이 얻은 생명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에 삶이 사랑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3:14). 이 구절은 믿음으로 얻은 생명이 사랑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 증거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계시하였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가 사망에 거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삼위일명 여호아 하나님은 생명 자체이시다. 그래서 삼위 여호와는 사랑이시다. 그리스도인이 도덕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은 그들이 사는 생명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도덕적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지게 되는 것이다. 늑대가 참으로 양이 된다면 더는 늑대의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양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은 그들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것을 에베소 4:22~24에 기록하였다. 그 근거를 5:1,2에 밝힌 것이다.
8월 21일(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바울은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라고 썼다(엡 5:6).
바울은 부끄러워하거나 회개하지 않고 여러 가지 죄를 행하는 사람들을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엡 5:5)로 규정했다. 바울의 말은 단호하다. 그리스도 안에 있고 다가올 그의 왕국에 참여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엡 5:5). 이어서 그는 신자들이 노골적인 말에 속아 성적인 죄가 금기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스스로 그러한 죄에 빠지게 하는 "헛된 말"의 영향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엡 5:6). 그렇게 속는 것은 하나님의 종말적 심판, 즉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위험이 있다고 그는 경고한다(엡 5:6).
"하나님의 진노"라는 구절은 사람의 생각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나님의 진노, 분노라는 표현은 일반적이고 변덕스러운 인간의 정서와는 다른 것을 의미한다(엡 4:31). 이는 오래 참으시며 의로우신 하나님의 악으로 치우친 완고한 범죄에 대한 공의로운 반응이지, 사소한 위반에 대한 광기어린 폭발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언급은 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영감 받은 성경적 경고의 맥락에서 나타난다(계 6:12~17, 계 16:1~16, 계 19:11~16).
인간은 그러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가오는 (은혜를 베푸시는) 심판에 대해 알려주신다.
바울은 왜 신자들에게 죄인들의 "동반자" 또는 "동참자"가 되지 말라고 권고하는가?(엡 5:7~10)
[엡5:7~10]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답: 빛은 어둠과 함께 하지 못한다. 빛을 끄면 어둠이 되고 빛이 밝아지면 어둠은 사라진다. 어떻게 동반자와 동참자가 될 수 있겠는가?
바울은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엡 5:10, 쉬운성경)라고 연이어 권면한다.
이교도는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엡 5:3)을 통해 쾌락을 추구한다.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완전히 다르며,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롬 12:1, 고후 5:9, 히 13:21; "기쁘다" 또는 "받으실 만한"이라는 동일한 헬라어 단어인 에우아레스토스[euarestos]를 사용). 신자는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을 본받으려고 노력한다("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버리사]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엡 5:2).
<교훈> 바울은 세상의 교묘한 말에 속지 않고 빛의 자녀로 행하며 자신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그리스도의 모본을 배우고 따르기를 권면한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동반할 수 없는 것은 빛과 어두움이 함께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성경이 그리스도인에게 권고하는 것은 빛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 때문에 더는 썩는 구습을 따르는 예사람일 수 없다. 당연히 새 생명으로 새사람의 삶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설교할 때나 성경을 가르칠 때 아직도 어둠에 있는데 노력해서 빛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권고하면 성경을 제대로 깨닫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울의 권고대로 이미 빛이기 때문에 그 빛을 꺼지지 않도록 하라고 권고해야 성경적 권고가 된다. 우리가 빛이 되었어도 그 빛이 등경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등경 위에 있으면 되는데, 때때로 말아래 감추어질 수 있다는 것도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마5:15). 많은 그리스도 인이 예수님이 주신 생명 빛을 먹고 사는 문제 아래 감춘다. ‘말’은 곡식을 되는 도구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먹고 사는 문제의 도구로 만들어 제대로 빛을 드러내지 않으면 말아래 두어 빛을 감추는 것인데 그렇게 잠시 지내면 빛이 꺼진다. 조심하라고 권고하는 것이 바울의 권고이다.
8월 22일(화) 잠자는 자여, 깨어라
엡 5:11~14을 읽어 보라. 바울은 어떤 강력한 경고를 하고 있으며, 이것은 현재 우리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엡5:11~14]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답: 빛이지만 자고 있으면 빛을 비칠 수 없다. 깨어 일어나서 생명으로 빛을 생활하라고 권고한다.
엡 5:11~14을 이해하기 위해 바울이 (1) "빛의 자녀"(엡 5:8, 엡 5:1, 2, 4, 9~10, 11, 13, 14 참조)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생활 방식으로 살라, (2) "열매 없는 어둠의 일"인 성적으로 부도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생활 방식을 살지 말라는(엡 5:11, 엡 5:3~8, 12 참조) 두 가지 권고를 번갈아 가며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엡 5:11을 이해하기 위해 병행 권면인 엡 5:8~10을 살펴볼 수 있다. 신자는 불신자 앞에서 "주 안에서 빛"이요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한다(엡 5:8). 이는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엡 5:9)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기 위한 바울의 전략이다. 신자들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의로운 대안을 보여줌으로 열매 없는 어둠의 일을 드러내야 한다.
엡 5:13, 14의 시적이고 도전적인 표현은 신자들이 "성령의 열매"(엡 5:9)를 보여줌으로써 세상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끌 수 있다는 바울의 담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성령은 빛과 같아서 숨겨진 것을 드러낸다.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엡 5:13, 14). 퇴폐적인 삶이 빛에 노출될 때,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지(드러나) 보게 되며, 미래가 없고 진노에 사로잡힌(엡 5:5, 6) 모습을 발견하고, 에베소의 신자들이 경험한 바로 그 변화를(어둠에서 빛으로의 변화, "드러나게 하는 것은 다 빛이니라," 흠정역) 보고 경험하게 된다(엡 5:8).
엡 5:14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변화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하라는 이 노래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찬송에 바울이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사 60:1~3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처럼, 엡 5:14의 찬송/시는 어두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선교사로서의 그리스도인 신자들의 역할을 일깨우도록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다(빌 2:14~16, 마 5:16과 비교).
<교훈> 그리스도인은 빛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보여줌으로 열매 없는 어둠의 일을 드러내고 세상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부가설명> 바울은 이 구절에서 빛과 부활한 생명을 일치시킨다. 부활한 생명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이며 영원한 생명이다. 이 생명은 그 본질이 사랑이라고 앞에서 밝혔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 부활을 경험하는 것이다(요5:24). 이 부활은 참으로 거듭날 때 예수님의 부활한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렇게 된 사람은 바울이 갈라디아 2:20에서 고백한 삶이 이루어진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께서 그 사람 안에서 생활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갈 수밖에 없고, 예수님이 가지 않는 곳에 가지 않으며 예수님이 잡숫지 않는 음식을 먹지 않고 예수님이 하시지 않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를 요한은 ‘우리가 세상에서 주님의 어떠하심과 같이 그렇다’라고 하였다(요일4:17). 바울은 부활한 생명의 성질이 이렇다고 가르친 것이다. 진정으로 부활했는가? 문제는 우리가 아직도 말(斗)같은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지체 가운데 있는 죄의 법이라고 했다. 이것은 자주자주 빛을 끄려고 말을 뒤집어 씌운다. 우리는 그때마다 자기를 닞추어서 말 밖으로 속히 나와야 하는데 그 일을 성령께서 하신다. 기도, 회개의 방법으로 그렇게 하신다.
8월 23일(수) 기회를 잡아라
바울은 엡 5:1~20을 엡 5:15~17과 엡 5:18~20의 두 가지 권면으로 마무리하면서 성적 순결에 대한 지속적 주의를 기울인다. 첫 권면은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엡 5:15)라는 권면으로 시작하여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7)고 재차 강조한다. 그 사이에는 "세월을 아끼"라는 요청이 자리잡고 있다(엡 5:16).
기도하고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엡 5:15~17)라는 바울의 권고를 생각해 보라. 어리석게 행하는 것과 "지혜롭게" 행하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또한 시간을 “구속”(흠정역, 세월을 아끼라 - 참조)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엡5:15~17]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답: 그 차이는 세월을 아끼는 것이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삶의 방식을 “걷는 것”으로 표현하는 구약의 은유를 반복해서 사용한다(엡 2:2, 10, 엡 4:1, 17, 엡 5:2, 8). 여기서 그는 의도적인 제자도를 장려하기 위해 이 은유를 사용한다. 험하거나 어두운 길을 걸을 때 "발걸음을 조심"해야 하는 것처럼, 신자는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야 한다(엡 5:15). 엡 5:15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평행구인 엡 5:17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지혜를 내면에서 찾지 않는다. 지혜롭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넘어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다(엡 5:17).
바울은 또한 생생한 장면들로 적극적으로 제자도를 장려한다.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엡 5:16, "기회를 잘 붙들라" 쉬운성경)는 구절에서 동사 엑사고라조(exagorazō, 골 4:5와 비교)를 사용한다. 시장에서 사용되는 이 단어는 "사다"라는 동사의 강조형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제공되는 "기회를 잡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 "세월(시간)"은 기회의 때를 묘사하는 헬라어 카이로스(kairos)이다. 이 “세월”은 마지막 때가 오기까지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는 가치 있는 기간이다.
또한 "때가 악하"(엡 5:16, 엡 6:13, 갈 1:4 비교)며 "이 세상의 풍조"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에 지배되기 때문에 도전적인 시기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위험하지만 기회가 남아 있는 시장으로 묘사한 어려운 때를 살고 있다. 그들은 꼭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파격적인 할인을 제공하는 깜짝 세일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남은 시간을 주의 깊게 사용해야 한다. 비록 우리가 구원을 살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때에 맞게 취하라는 권면은 여전히 적절하다.
<교훈> 세월을 아끼라는 것은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며 우리에게 제공되어있는 기회를 잘 잡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부가설명> 지혜 있는 삶은 시간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담이 생명에서 사망으로 떨어지자 모든 것이 변질이 되었다. 아담에게 주신 생명은 영생이었고 아담은 생령이었는데, 그가 선악과를 먹고 영생이 사망이 되었고 생령은 육체가 되었다(창2:7, 6:3 대조). 영원함은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사망이 된 사람들은 시간의 종이 되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시간을 구원하라’라고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거듭난 성도는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사람이다(고후4:16). 날로 새로워지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에덴동산으로 올라가는 삶이다. 이것이 시간을 구원하는 삶이다. 시간을 정복하는 삶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시간을 정복하는 삶을 산다. 그래서 사람들을 생명으로 이끌어들이고 빛을 비춰서 어두움을 밝혀 사람들이 생명의 길을 찾게 한다. 이렇게 생활하는 것이 빛이요 생명이 된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이다. 그렇게 되도록 호흡마다 순간마다 기도하면 말씀에 굴복하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시기를 간구하자.
8월 24일(목) 성령 충만한 예배
엡 5:18~20에서 바울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바울은 그들의 예배를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가?
[엡5:18~20]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답: 성령충만한 모습으로 예배하라고 권고하며 그런 상태를 상상한다.
엡 5:1~20까지의 마지막 논증에서 바울은 신자들에게 정신을 마비시키는 술을 사용하지 말고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라고 촉구한다. 바울은 술 취함을 금지하는데, 이는 술 사용을 금지하는 지혜서(잠 20:1, 잠 23:29~35)의 명령을 염두에 둔 것이다. 술에 취하면 무례함, 성적으로 노골적인 말, 무분별함, 부도덕, 우상 숭배 같은 악한 것들이 따라온다(엡 5:3~14). 이러한 것들은 사려 깊고, 성령 충만한 하나님을 향한 예배로 바뀌어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엡 5:19~21에 나오는 일련의 동사("말하기," "노래하고 화답하기," "감사하기," "복종하기")들로 설명할 수 있다.
바울은 여기서 자기중심적인 이교도의 행위, 예배와 대조되는(엡 5:1~18), 하나님에 대한 성령 충만한 예배로 신자들이 연합하여(엡 4장) 모이는 모습을 생각하며 공동체를 향해 "성령으로 충만하라"(엡 5:18)고 권면하고 있다.
초기 기독교 예배를 그린 이 모습에는 찬양의 선율이 가득하다. 골 3:16과 함께 이 구절은 교회는 찬양에서 탄생했다는 주장에 대한 가장 좋은 근거를 보여준다(행 16:25, 약 5:13 비교).
찬양에는 예배의 "수평적" 요소가 있다. 우리가 찬양할 때 교회 구성원들은 어떤 의미에서 "서로 화답하"(엡 5:19)기 때문이다.
그러나 찬양의 구체적인 대상은 엡 5:20에 "주 예수 그리스도"로 명시된 바와 같이 오직 주님이시다(골 3:16 비교). 엡 5:20의 감사는 엡 5:19의 음악적 찬양과 병행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신령한 노래"라는 문구에서 "영적인"(pneumatikos, 헬라어)이라는 형용사는 성령의 영감을 받거나 성령으로 충만한 노래를 묘사하는 용어로 예배에서 성령의 역할을 강조한다. 따라서 초기 기독교 예배에 대한 바울의 묘사는 신격의 삼위 모두가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훈> 술 취함과 그에 연관된 악행들을 금하고 대신 성령 충만하라는 것은 성령의 임재가 가득한 예배와 찬양에 함께하는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한 권면이다.
<부가설명> 예배에 성령이 충만하려면 사람이 성령 충만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라고 했는데 개정판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번역했다. 이 번역이 원어를 직역한 것이다. 예배는 영이 된 사람이 진리대로 예배해야 한다는 뜻이다. 영이 되었다는 말은 거듭났다는 뜻이다(요3:6, 롬8:9).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므로 예배해도 없는 사람이 예배하니 하나님께 상달될 수 없다. 성령 충만은 거듭난 사람의 영생 충만이다. 또 이것은 말씀 충만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시는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요6:63). 거듭나는 것도 말씀으로 나는 것인데(벧전1:23), 그것이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다(요3:3~6).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구체적으로 말씀이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거듭난 성도는 그 양식이 생명의 말씀이다. 말씀을 읽고 듣고 행하는 사람이다. 날마다 말씀을 먹어야 한다. 그 말씀이 영양이 되고 힘이 되어 생활하게 된다. 성령 충만 하나님 말씀 충만 이런 경험이 재림성도 모두에게 넘쳤으면 얼마나 좋으랴!
8월 2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엡 5:1~20까지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바울이 죄와 악, 특히 성적 부도덕과 나쁜 말의 형태에 대해 단호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타락한 행동이 존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에베소 신자들의 행동에 높은 표준을 요청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이자 "성도," 즉 거룩한 자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라고 권한다(엡 5:1~10). 바울은 공동체 속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행할 때 어둠에 빛을 비추며 이웃들을 자기 파괴적인 생활 양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이끌어낸다고 확신한다(엡 5:11~14).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빛의 자녀로 행"하겠다는 새로운 헌신으로 힘을 얻고(엡 5:8, 엡 5:15, 16 참조), 그리스도의 임재에 의해 복을 받으며(엡 5:14), 예배를 위해 함께 모이는 교회를 그리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의 지위와 그들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엡 5:1, 2, ESV)에 동기를 부여받고 성령으로 충만한(엡 5:18) 그들이 나누는 예배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찬양을 드리는 열정과 기쁨이 넘치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은 하늘의 실체를 굳게 붙잡고,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셨고, 역사하고 계시며, 완성하실 언약에 뿌리를 둔 미래의 소망을 찬양한다(엡 5:18~20).
이렇게 이해하게 될 때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규모있게 하고 실천하게 하는 명령이 된다. 이것은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헌신, 공동체, 마지막 시대의 예배에 관한 예언적 부름이며,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으라"는 애정 어린 초대장이다(엡 5:1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일 년 365일, 24시간 내내 셀 수 없이 많은 미디어를 통해 그 가치관을 반복 재생하는 전염성 높은 문화 속에서 신자들은 어떻게 바울의 높은 표준을 적용할 수 있는가?
*답: 말씀이 24시간 내내 마음을 주장하게 하고 실행하게 함으로 가능하다.
2. 오늘날 신자들은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분별"(엡 5:10)하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엡 5:17)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답: 말씀을 읽고 깨닫고 기도하여 성령께서 주장하도록 해야 한다.
3. 어떤 사람은 바울이 신자들 사이에서 성적 부도덕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지한 것(엡 5:3, 4)이 우리가 성적 비행과 학대 문제를 다루지 말라는 의미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것은 왜 부적절한 결론인가?
*답: 성경에 기록한 주제와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4. 바울이 언급한 이교도의 관습 중 지금도 우리가 직면하는 것들은 어떤 것인가?
*답: 특별히 언어생활과 감정생활이 직면하는 습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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