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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08-02-25 12:38 조회3,5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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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제안순서 - 미술 안식일학교


◈ 주제 : 성화를 감상하고 느낌을 자유롭게 발표한다.
◈ 준비물 :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컴퓨터 기기를 설치한다.

◈ 진행방법
1) 미술적 감각이 있는 성도가 순서를 진행하게 한다.
2) 자료 CD의 성화를 보며 작품 설명을 해 주고 그림에 대한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유도한다.

◈ 순서자료

슬라이드 1~2. 천지창조 -미켈란젤로, 프레스코, 1512년,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일을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 작업의 프로그램을 짜고 거기에 따라 일을 진행해나갔다.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에 물감을 칠해나가는 고된 작업이었다. 이로 인해 목과 눈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혼자서 4년 만에 이 대작을 완성하였다. 미켈란젤로가 활동하던 르네상스 시대에 모든 건축물에 들어가는 벽화는 '프레스코'로 그려졌다. 프레스코는 이탈리아어로 신선하다는 의미이다. 건물의 벽돌을 쌓고 그 위에 회반죽으로 벽을 마감하면 벽면이 다 마르기 전에 프레스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것이다. 선생은 그림을 그리고 제자는 뒤에서 절구에 물감을 갈아대고… 요즈음과 같이 다양한 페인트가 발명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화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그림재료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다빈치 등 당대의 예술가들은 모두 이러한 기법으로 벽화를 그렸다.

3.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사람의 본래의 행복한 집을 상상하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현재의 가혹하고 들떠있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열망하는 생명의 충만함과 풍부함, 그리고 평화로 채웠다. 플랑드르 사람인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낙원”에 대한 묘사

4. 인간의 타락에 대한 묘사 가운데, 아담과 하와와 뱀은 모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가까이에 있는 장면에 나타난다. 이것은 타락의 연속적 사건들을 완전히 한 그림에 나타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독일의 한스 부르크마이어(Hans Burgkmair, 1473~1531)의 목판화

5. 플로렌스인 토마소 마사치오(Tomasso Masaccio, 1401~1428)는 플로렌스의 산타 마리아 델 까르미네의 교회를 위해 여러 개의 커다란 역사적 그림을 그렸다. 그 중에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추방되는 이 그림도 들어 있다. 이 그림을 통하여 마사치오는 타락으로 인한 깊은 후회와 절망을 매우 현저하게 그려 내는데 성공했다. 스칼라, 피렌체

6. 영국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9~1827)는 성경의 주제들을 몇 개의 작고 강하게 극화된 수채화와 스케치로 그렸다. 이 그림들은 그 강렬한 표현력을 통하여 이 사건에 함축된 내적 의미를 나타낸다. “아담과 하와가 아벨의 시신을 찾음”이라는 그의 그림에서, 그는 그 살인자의 죄책감과 하나님의 노여움이 검은 구름과 같이 그를 누를 때 도망하는 가인이 느꼈던 영혼의 고통을 그렸다.

7. 아브라함 시대의 어느 애굽 행정관. 크넴-호텝의 BC 19세기 무덤에는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하여 온 팔레스틴 남자와 여자들을 나타내는 프레스코가 있다. 여기 나타난 인물들은 아브라함의 식구들이 아닌 팔레스틴의 왕자가 이끄는 무역상인들이었지만, 이 그림의 주제는 아브라함의 애굽 방문과 흡사하다. 그러나 이 그림은 부족시대의 가나안 거주자들을 나타내는 알려져 있는 유일한 그림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 두 장면은 이 그림의 두 부분이다. 윗 그림은 수행원단의 앞쪽 끝부분을 보여준다. 맨 앞에는 거무스름한 피부색의 애굽인이 군중을 지휘하고 있다. 그를 따르는 팔레스틴 사람들은 그와 달리 밝은 피부색에 “로마인들의”코를 가졌다. 또한 남자들의 머리와 수염 모양과 의복도 다르다. 그의 맨발은 분명히 연설을 하는 고위 관리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다.

8. 왼쪽, 렘브란트 작, “이삭을 제물로 바침.” 오른쪽, 엘 그레꼬 작 “십자가상의 그리스도” 이삭을 희생 제물로 드리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에 대한 굉장한 시험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고통을 느낄 때,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자기희생적 사랑에 대해 더욱 깊은 이해를 갖도록 해주었다. 또한 이것은 당신의 독생자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실례였다. 인간이 이것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돕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 가운데 이 사건들이 장소로써 서로 연관을 갖도록 허락하셨다.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의 현장이 모리아산 부근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산은 예루살렘 성전 건축 이전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바로 그 곳이다. 아브라함의 희생은 갈바리에서의 하나님의 위대한 희생의 상징이었다.

9. 롯은 소돔에 정착함으로 삶의 즐거움과 물질적 이득을 구했다. 그러나 소돔의 타락한 생활을 롯의 가족들도 따르게 되었다. 그는 소돔의 멸망으로 인하여 그의 아내와 재산을 잃었으며, 그의 딸들의 품성은 타락하였다. 소돔성으로부터의 롯과 그 딸들의 탈출에 대한 독일인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ϋrer, 1471~1528)의 그림, 워싱턴 D.C. 국립미술관 소장.

10. 네덜란드의 화가 G. 플링크(G. Flinck, 1615~1660)는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던 순간의 긴장된 분위기를 그렸다. 리브가는 이 의식을 흥분과 호기심으로 지켜보고 있으며, 야곱의 얼굴에는 그가 축복을 받을 것인지를 기다리며 불안해하는 마음과 또한 그의 속임수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감이 나타나있다.

11. 얍복강가의 야곱과 천사와의 싸움은 곧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싸움이다. 렘브란트의 이 그림은, 이 싸움의 성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 준다. 우리는 천사가 야곱이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선하시사 그를 뒤쫓고 계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함을 볼 수 있다.

12.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창 42:6). 여기서 요셉의 형제들은 지배자에게 복종과 존경을 표시하는 옛 동양의 관습을 따랐다. 위의 BC 1410년경의 애굽의 무덤 그림은 아마도 아메노피스 2세(AmenophisⅡ)나 투트모세 4세(Tuthmoses Ⅳ)인 새 바로에게 일단의 시리아인들이 선물을 하는 것을 보여준다.

13.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이주한 그의 가족은 66명의 그의 후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더욱이 거기에는 그의 아들들의 아내들도 있었다(창 46:26). 야곱의 모든 종들도 야곱의 가족과 함께 여행했기 때문에 이 집단은 상당한 크기의 대상을 이루었다. 그림은 야곱이 애굽으로의 이주를 나타내는 네덜란드인 화가 아드리엔 반 드 벨델(Adriaen van de Velden, 1636~1672)의 그림이다.

14. 영국인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그림은 “모세와 불타는 수풀”이라는 그의 그림에 모세가 양을 치는 중 불타는 수풀을 보았을 때의 그의 감정을 적절히 나타냈다. 모세의 자세는 여전히 훌륭하게 반듯했지만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능력이 있는 유능한 지도자가 될 모든 생각을 오래 전에 버렸음을 볼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굴복한 겸허한 사람이 되었다.

15. 렘브란트는 그의 그림 “모세가 십계명의 돌판을 보여 줌”에서 모세가 확연히 알아볼 수 있는 히브리어로 쓰인 십계명의 돌판을 높이 들고 있는 것을 그리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현대의 음성문자의 선조이며, 가장 오래된 히브리 문서에 쓰여진 자음 문자는 BC 15세기 중엽, 대략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여행할 때에 지중해 근방의 동쪽 어디엔가에서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성경 기록에 따르면 처음 두 돌판에 쓰였던 십계명은 명백히 현대 음성 문자의 선조로 쓰여진 가장 오래된 문학적 산물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16. 렘브란트의 초기 작품인 이 “천사와 예언자 발람”은 초기 바로크 시대의 이상(理想)들을 반영한다. 색채는 따뜻하고 밝으며, 구성은 바로크 양식에 전형적인 운동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발람의 인물 표현에서, 렘브란트는 이미 그의 후기 양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기법을 깊이 드러내었다. 화가 난 신경질적이고 성급한 선지자는 불행한 나귀를 때리고 있으나, 발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천사가 나귀의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뒷켠에서는 발락의 사자들이 반은 무관심하였고, 반은 놀란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17. 삼손은 맨손으로 사자를 갈가리 찢을 수 있었을 만큼 초인적인 체력을 소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삿 14:6). 그러나 그는 도덕적으로는 연약했으며, 이것이 그를 파멸로 이끌었다. 피터 파울 루벤스(1577~1640)가 그린 이 그림은 사자와 싸우고 있는 삼손을 보여준다. 스톡홀름 국립 박물관 소장.

18. 스노르 폰 카롤스펠트(1749~1872)는 자신의 판화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을 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주하는 블레셋을 쫓아 돌진하고 있다.

19. 렘브란트의 이 그림에는 수소와 나귀는 등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복음서의 기술을 기초로 해서 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대 기독교이후 마굿간에는 수소와 나귀가 그려있는 것이 통례였다. 캔버스. 유화. 런던 국립미술관 소장.

20. 환자를 고치는 그리스도:렘브란트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의 소묘와 동판화이다. 소묘는 그때까지만 해도 하나의 초벌 그림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렘브란트의 그것도 그 범주를 벗어나는 것은 못 되었으나 그 독특한 필치는 일단 인정하더라도 그의 동판화는 고금을 통해서 알브레히트 뒤러, 고야와 함께 동판화의 3대 거장의 한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21. 최후의 만찬:이 그림은 레오나르도의 작품으로서는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이다. 원래 이 테마는 수도원의 식당에 그려지는 수가 많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수도원의 식당 벽화로서 그려졌다. 화면 전체의 손상이 심해서 레오나르도 자신의 필치는 20내지 30%밖에 남아 있지 않으나 구도, 공간 처리, 각 인물의 배치, 색채 같은 것에서 레오나르도의 흔적이 역력하다. 제작 연대는 1493년부터 1497년에 걸쳐 있다. 이 장면은 신약성서 요한복음 13장 22절부터 30절에 이르는 내용을 조형화하였다고 한다. “너희들에게 고하노니 너희 중의 하나가 나를 팔게 될 것이다.”라며 그리스도께서는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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